표류하는 균형발전…‘수도권 공화국’의 고착화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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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추진 의지가 있을까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다. 수도인 서울에 더 많은 기회가 존재한다는 뜻일 테다. 그 기회가 더 많은 배움과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넘어 이제는 자산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방은 이미 ‘밀려남’의 공포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과 지역의 자산 격차는 소득이 아닌 부동산이 결정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초 발표한 전국 시도별 표준지 평균 공시지가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은 1㎡당 592만원으로 2위 인천(59만원), 3위 부산(58만원)보다 무려 10배가 높았다. 대구(43만원), 경기(38만원), 대전(26만원), 광주(25만원) 등과는 더 큰 격차가 났다. 충북(4만원), 강원(3만원), 전남(2만원) 등과는 비교하는 게 무의미해 보일 정도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서울과 지방의 자산 격차가 점점 벌어지니 지방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서울-지방’ 간 자산 양극화가 대물림되면서 ‘신분’처럼 고착화된다는 데 있다. 폭등한 서울·수도권 집값은 새로운 현대판 신분제를 만들고 있고,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하위권으로 추락한 신분 서열은 평생 제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크다. 신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사다리는 서울로 가서,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인구 절반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지역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사업체마저 수도권 지역으로 몰리면서 생산액도 역전됐다. 이런 추세는 전환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지역균형개발이 필요하다.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국토는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도 당초 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임기 후반부가 된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다.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이라고 할 350개 안팎의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차일피일 계속 미루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공공기관들의 추가적인 이전 문제 등은 총선을 거치면서 검토하겠다”며 확실한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총선을 치른 지 백일이 다 됐지만,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조금씩 이전 준비는 하고 있지만, 당초 기대했던 속도는 아니다. 

최근 연달아 발표된 부동산 대책에서도 이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 평가받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메가시티’라는 균형발전의 대안적 담론을 제기했지만 역시 실질적인 진전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2019년엔 수도권 공장 총량제까지 풀어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 용지를 경기도 용인에 허용해 주기도 했다. 

 

세종시 대통령 제2집무실 설치 무산 

그사이 청와대는 세종시에 대통령 제2집무실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공기관 이전과 국회 분원의 세종시 설치를 적극 추진하던 상황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국회 세종의사당(국회 분원) 설치 프로젝트도 21대 국회 들어 다시 시동이 걸렸지만, 현 정부 임기 중에는 현실적으로 완성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울-지방 간 격차는 자산 양극화만 문제가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작년 국토 모니터링을 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거지에서 가까운 종합병원까지의 평균 접근거리는 서울의 경우 2.47㎞에 불과했지만 강원(28.04㎞), 경남(27.40㎞), 경북(26.84㎞), 충북(20.63㎞), 충남(17.24㎞), 광주(5.56㎞), 대전(6㎞), 부산(6.11㎞) 등 전국 주요 시도는 모두 서울보다 몇 배 이상 길었다. 공연문화 시설 접근성도 서울은 1.76㎞로 부산(4.28㎞), 대구(5.03㎞), 광주(5.62㎞) 등 전국 주요 도시보다 훨씬 앞섰다. 이 밖에 어린이집, 공원, 교통시설 등 주요 생활 인프라 접근성도 서울과 수도권은 타 지역을 압도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서울로 계속 사람이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 인구가 몰리는 지역에 부동산 수요가 높게 유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고 과연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용산 미군부지에 공원 대신 아파트를, 혹은 극단적으로 한강 일부를 메워 아파트를 올리면 서울을 향한 그 수요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은 서울과 수도권의 수요를 줄여야 한다. 혁신은 도시에서 일어난다고 하지만, 지금 같은 수도권 과밀화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시간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 남은 시간은 이제 정말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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