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쏘아올린 자동차 혁명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9 10:0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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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파괴로 새로운 시장 생태계 구축…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

아우디는 2018년 4월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지멘스 테스트센터에서 순수 전기차 SUV 모델인 아우디 e-트론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2개의 모터와 95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 테슬라의 급속 충전기기인 슈퍼차저보다 빠른 충전이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른바 섬락(flashover) 시현이었다. 50만V의 전압을 자동차의 지붕 위로 방전하면 케이블 없이 전기차가 충전된다는 개념이었다. 실제로 저주파의 웅웅거림과 함께 2초간 번개를 내려치자 0.22kWh가 충전됐다. 이 차의 배터리 용량이 95kWh인 점을 감안할 때 15분이면 전기차의 충전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기술은 아직 실현 단계는 아니다. 모터쇼에 등장하는 콘셉트카처럼 미래 기술에 대한 일종의 콘셉트 모델이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강병휘 자동차 칼럼니스트 겸 레이서는 “전기차의 경우 가솔린이나 경유차에 비해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가장 큰 단점으로 꼽혔다”며 “아우디 e-트론의 섬락 시현은 무선으로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로 전기차 충전?

그로부터 2년여가 흘렀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 5월 경기도 고양 전시장에서 벤츠의 콘셉트카인 ‘비전 EQS’를 공개했다. 외관은 4도어 스포츠카와 유사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제로백)은 4.5초. 웬만한 스포츠카의 주행 성능을 압도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이 차가 엔진이나 기어가 없는 순수 전기차라는 점이다.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는 700km.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인 테슬라의 모델3 롱레인지의 최대 주행거리가 446km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충전 없이 한 번에 달릴 수 있다. 비전 EQS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주행거리를 모델3보다 60% 가까이 증가시켰다. 배터리 역시 80%를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 기술이 실현되면 전기차를 충전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대폭 짧아질 것으로 소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렇듯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개발 경쟁에 돌입했다. 자동차 업계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볼룸버그ENF(BNEF)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은 매년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5년 45만 대에 불과하던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210만 대로 5배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0.49%에 불과하던 전기차 점유율은 현재 3% 언저리까지 치고 올라온 상태다. BNEF는 “전기차 판매량이 2025년 850만 대, 2030년 2600만 대, 2040년 5400만 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40년이 되면 전기차의 신차 판매율이 기존 내연기관차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한창이던 올 상반기에도 마찬가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6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개발에 목을 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시장을 선점한 곳은 미국의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였다. 시장조사 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1~5월 전 세계에서 12만5800대를 판매해 점유율 1위(17.7%·PHEV 포함)를 기록했다. 2위인 BMW(7%)의 두 배 이상으로, 전문가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다. 이 기간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지만 테슬라의 점유율은 전년 대비 5.2%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량이 30% 전후로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는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아이폰처럼 기존 자동차의 틀을 깨트린 혁신의 아이콘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게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덕분에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 CEO는 순자산 60억7000만 달러(7조26580억원)로 ‘주식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을 제치고 세계 7위 부자가 됐다. 테슬라는 최근 1년에만 주가가 6배 가까이 올랐다. 상장 10년 만에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자동차 회사가 됐다. 머스크 CEO는 현재 21억 달러(2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옵션도 보유하고 있다. 테슬라 시가총액의 6개월 평균이 1500억 달러(약 180조원)를 넘어서는 게 행사 조건이었는데, 미국 현지시간으로 7월21일 이 조건이 충족되면서 머스크 CEO는 또다시 ‘잭팟’을 터트렸다.

하지만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폭스바겐그룹은 2024년까지 330억 유로(45조5000억원)를 전동화 부문(E모빌리티)에 투자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독일 츠비카우 공장을 순수 전기차 공장으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25년까지 200억 달러(23조9000억원)를 전기차 개발에 쓸 계획이다. 마찬가지로 전기차 전용 공장도 준비 중이다.

눈에 띄는 것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동차뿐 아니라 핵심 부품이나 연료 개발과 함께 인프라 구축에도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GM과 LG화학, 테슬라와 중국 CATL, 유럽배터리연합(EBA) 등 흥미로운 조합도 잇달아 탄생하고 있다. 이대로 있다간 시장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겸임교수는 “지금까지 자동차 회사는 차량 제조에 집중했고, 정부와 운송업자는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했다. 이때 필요한 에너지는 정유회사가 공급했다”며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이 영역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폭스바겐, 도요타 등 기존 수입차 브랜드들은 최근 고가의 전기차를 잇달아 선보여 주목되고 있다. 아우디 ‘e-트론 55 콰트로’와 벤츠 ‘더 뉴 EQC 400 4MATIC’, BMW ‘iX3’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강력한 엔진 출력과 고효율 에너지 회수장치 등 신기술을 대거 탑재하고 있다. 가격도 1억원을 호가하지만 전기차 마니아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테슬라 잡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

현대차그룹도 2021년을 전기차 도약을 위한 원년으로 선포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한국판 뉴딜 대국민보고대회’에서 “차세대 전기차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20분 내에 충전하고, 한 번 충전으로 45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며 “이를 통해 2025년까지 23개 차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고, 판매량 100만 대(점유율 10%)를 달성해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잇달아 만난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동으로 재계 1~4위의 ‘토종 배터리 협력체인’이 구성되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체도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 정 부회장이 차세대 전기차 시장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이들 회사의 경쟁을 부추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와 전기차 시장에서 과연 누가 승자가 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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