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깜박이 켜고 ‘검찰 장악’의 길로 가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3 10:00
  • 호수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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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식 검찰 개혁’은 오로지 ‘윤석열 죽이기’로 일관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던 2013년 9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불거졌던 ‘혼외자’ 논란이 이유였다. 하지만 소문들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지휘하면서 정권에 부담을 준 검찰총장에 대한 ‘찍어내기’라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7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한동훈 지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했다. MBC 보도를 통해 불거진 ‘검(檢)언(言)유착’ 의혹 규명이 이유였다. 하지만 소문들은 정권 관련 수사를 해 왔던 검찰총장을 겨냥한 표적 감찰과 수사라고 전했다.

‘채동욱 데자뷔’라는 말이 돌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채동욱 총장이 당했던 일을 지금 윤석열 총장이 당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추미애 장관을 비롯한 집권세력 쪽에서는 오직 검찰 개혁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 검사장이 윤석열 총장의 최측근이었기에 표적이 되었다는 정황은 차고 넘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 관련 수사는 하지 말라’ 메시지

윤 총장을 배제한 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를 받던 수사팀은 “다수의 중요 증거들을 확보했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수사심의위원회를 열어 서로의 패를 꺼내 보니, ‘한동훈-이동재 녹취록’ 이외에는 다른 증거들이 없었다. 수사팀이 유일한 증거로 주장했던 녹취록마저도 심의위원들로부터 ‘공모’의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고 말았다. 녹취록 전문을 읽어본 사람 가운데, ‘한동훈은 반드시 죄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그것을 갖고 공모의 증거로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거짓말을 했던 셈이다.

게다가 서울중앙지검은 KBS의 오보 사태를 낳은 ‘가짜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미 녹취록에 대한 ‘악마의 편집’을 해서 방송사에 흘렸다는 의혹 또한 받고 있던 터였다. 수사팀은 왜 그렇게까지 무리한 것일까.

추미애 장관이 이미 ‘검언유착’임을 단정하고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의 전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진즉에 국회 답변을 통해 이 사건을 ‘검언유착’으로 단정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SNS를 통해 “문제는 검언유착이다. 검언이 처음에 합세해 유시민 개인을 저격했다”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 어떤 장애물도 성역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해 왔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마당에 법무부 장관이 사건의 성격을 단정하는 것은 가이드라인 제시라는 점에서 대단히 부적절한 일임에도, 추 장관은 개의치 않고 그런 행위를 반복했다. 

역시 수사가 진행 중이라 사건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 장관은 한 검사장을 좌천시키고 법무부의 감찰 방침을 밝혔다. 추 장관은 수사지휘서에서도 ”검사와 기자가 공모한 사건”이라며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들이 제시된 상황”이라고 주장했지만,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이 15년 만의 일인데,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예고만 떠들썩하고 실제 결과는 보잘것없음을 비유한 말)이 되고 말았으니, 법무부의 흑역사로 기록되게 되었다.

곧 검찰 인사가 단행될 예정이다. 검찰 인사를 앞두고 ‘신라젠 의혹’과 ‘라임 사태’ 등의 수사를 지휘했던 송삼현 서울남부지검장이 이미 사퇴했다. 여권 인사들의 연루설이 나왔던 수사들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법무부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언론들은 전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상호 지역위원장(부산 사하을) 구속까지는 놔뒀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얘기로 읽힌다. 윤석열 총장과 동기이거나 가까운 지검장들도 잇따라 사의를 표명했다.

이번에 단행될 검찰 인사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정권 관련 수사는 하지 말라’다.  윤석열은 이제 식물 총장이다. 앞으로 정권 관련 인사들의 비리가 있은들, 누가 감히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을까.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검찰 개혁’이라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검찰 장악’이라는 개고기를 파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오로지 ‘윤석열 죽이기’가 시작이고 끝이 되어 버렸다. 윤석열의 힘을 빼고, 윤석열을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 ‘추미애식 검찰 개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부적절한 ‘검언유착’ 단정,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박탈, 무리한 감찰 지시 같은 대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윤석열 한 사람 때문에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드느니 차라리 문재인 대통령이 해임을 하든가, 국회에서 176석의 힘으로 탄핵을 의결하는 게 나을 일이다. 다른 민생 과제들이 산적한 정부일 텐데, 윤석열 한 사람 찍어내는 일이 그렇게도 중점 과제가 되는 광경은 국민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법과 제도를 마구 바꾸었을 때 훗날 그 혼돈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무장관이 지휘하는 검찰이 ‘정치적 중립?’

검찰 인사를 앞두고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총장의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각 고검장에게 분산하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 권고안이 현실화될 경우 법무부 장관이 직접 고검장을 통해 모든 수사 지휘를 하게 되고 검찰총장은 허수아비가 되어 버린다. 법무부 장관이 사실상 검찰총장의 역할을 겸하게 된다. 권력의 외압을 막을 사람이 더 이상 없는 가운데 하명수사는 힘을 받을 것이고, 정권 관련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불가능해진다. 검찰 개혁의 핵심이었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쓰레기통에 던져진 채 검찰은 다시 정권의 하수인이 되고 말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의 깜빡이를 켜고 ‘검찰 장악’의 길로 가고 있다. 모름지기 국가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은 앞날을 생각하며 이루어져야 하는 일인데, 만약 정권교체라도 있게 되면 그 후과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후일 야당에 정권이 넘어갔을 때, 그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좌지우지했을 때, 그때는 뭐라고 할 것인가. 설마하니 그때 가서 다시 검찰 독립을 외칠 것인가. 2020년 7월에 있었던 일들은 가장 정의로움을 자처했던 정권이 만든 가장 불의한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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