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이 불러온 ‘나비효과’…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2 15: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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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용병’ 러셀의 입단이 불러온 KBO의 변신…재도약 발판 기회 삼으려는 용병 늘 듯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서도 KBO리그는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다. 시즌 초반부터 NC 다이노스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계속 성적이 부진한 한화 이글스와 SK 와이번스를 제외한 8개 팀 모두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어느 시즌보다 중상위권에 많은 팀이 몰려 있다 보니 전체 팀 전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단연 화제가 된 인물은 키움 히어로즈가 전격 영입한 애디슨 러셀이다. 1998년부터 KBO리그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외국인 선수들 중 예전에도 나름 화려했던 메이저리그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유독 러셀에 대해 ‘역대급 용병’이란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는 왜일까?

8월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연장 10회초 키움 이정후의 역전 2타점 적시타로 홈을 밟은 1루 주자 러셀이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전성기 지나고 한국 찾았던 역대 용병들과 달라

일단 러셀에게서 단연 돋보이는 점은 26세라는 나이에 있다. 역대 KBO리그에 선보인 외국인 선수들에 비하면 상당히 어린 축에 들어가는 선수다. 즉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충분히 뛸 수 있는 실력과 나이를 갖춘 선수임에도 전격적으로 KBO리그로 넘어왔으니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실제 러셀은 미국 데뷔 시절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선수다. 2012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1라운드 11번으로 지명하며 프로무대에 발을 내디뎠다. 팀 내 넘버 원 유망주는 물론이고, 2015년에는 마이너리그 전문매체인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전체 마이너리그 선수 중 랭킹 3위로 평가할 정도로 미래 스타로 각광을 받았다.

2014년 겨울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15년 21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며 2루수와 유격수를 오가며 무려 142경기에 출장해 주전으로 바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데뷔 2년 차인 2016년 주전 유격수 자리를 확고히 하며 타율 0.238, 21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며 팀 우승은 물론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 후 2년간 명문 구단인 시카고 컵스의 주전 유격수 위치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2017년 초여름 누군가로부터 러셀이 가정 폭력에 연루됐다는 신고가 있었고, 곧 조사가 시작됐다. 러셀의 전처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세부 조사를 거부했지만, 결국 러셀은 재조사를 거쳐 지난 시즌에 40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게 된다. 그 여파로 러셀은 지난해 82경기 출장에 그쳤고, 소속팀 시카고 컵스는 그를 방출하며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러나 계약을 제시하는 팀을 찾기 어려웠고,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며 무적 선수로 있던 상황에서 키움 히어로즈와 계약이 성사돼 KBO리그에 진출하기에 이른다. 평소 조용한 성격인 러셀은 이런 상황 자체에 큰 실망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전처가 상세 진술을 피할 정도로 억울함이 있었다는 것인데,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 방지에 지나치게 집중한 MLB 사무국과 구단의 선택이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예전에도 미국 현지에서 화려한 경력을 과시하며 KBO리그에 진출했던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카를로스 바에르가와 훌리오 프랑코, 롯데 자이언츠의 카림 가르시아와 펠릭스 호세 등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훌륭한 이력을 보인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전성기를 지나면서 성적 저하로 더 이상 빅리그에서 확실히 뛸 자리를 보장받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벤치를 지키거나 자신이 팀을 힘겹게 찾아다니기보다는, 자신을 더 원하는 팀에서 주전으로 뛰며 선수 생명의 자연스러운 연장을 원했던 것이다.

KIA 타이거즈의 브렛 필이나 OB(두산) 베어스의 타이런 우즈 같은 선수들은 마이너리그에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을 만큼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메이저리그 팀에서는 확실한 자리를 잡을 수 없어 한국으로 넘어온 경우다. 사실 현재도 이런 식으로 KBO리그에 넘어온 선수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추세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 NC에서 뛰었던 에릭 테임스나 SK의 메릴 켈리, 두산의 조쉬 린드블럼 등처럼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미국으로 금의환향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미래가 불투명한 초청 선수로 들어가는 형태가 아닌, 정식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받고 가는 상황이 차츰 늘어나면서 미국 현지 선수들이 바라보는 한국 프로야구 무대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한국을 단순히 선수생활의 연장을 위한 것이 아닌, KBO리그에서의 활약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올 시즌을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도 롯데의 애드리안 샘슨은 현재 컨디션 난조로 고전하고 있지만 불과 지난해까지 텍사스 레인저스의 선발진에서 뛰었다. 그런데 데뷔 1년 만에 KBO리그에 넘어와 관심을 끌었다. KIA의 프레스턴 터커도 나이로 보아서는 빅리그 잔류가 가능해 보였던 선수였다. 이런 선수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미국 현지 선수들이 KBO리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아직 전성기가 지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성장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러셀의 이번 한국 진출 결정은 비슷한 환경에 있는 현지 선수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렇듯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왔는지 신기해”

러셀은 수비 부담이 많은 유격수 포지션이지만 타격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장타력은 물론 찬스에 강한 타점 수도 많다. 물론 수비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손혁 키움 감독은 러셀이 훈련 중 구장의 라이트 위치도 파악할 정도로 모든 플레이에 최선을 다한다며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와 상대했던 두산의 김태형 감독은 “급이 다른 선수”라며 “어떻게 이렇듯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왔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한국 선수 중 최고의 유격수 수비를 자랑하는 김재호(두산)는 경기 전날 비가 와서 그라운드 사정이 엉망이었는데도 침착하게 포구부터 송구까지 이어지는 러셀의 동작이 흠잡을 데가 없다고 극찬했다.

물론 러셀의 기량과 나이를 감안하면, 당장 올 시즌이 끝나고 다시 빅리그에 복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로 인해 향후 KBO리그에서 뛰는 것을 새로운 옵션으로 감안할 미국 현지 선수층이 꽤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올 시즌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26명에 그치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와 그 자리를 노리는 팀 내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6~7배나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정적으로 시즌이 펼쳐지는 한국에서 자신의 기회를 극대화하고 더 나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제2의, 제3의 러셀이 되고자 하는 유망주들이 속속 한국의 문을 두드릴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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