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간 = 생활습관이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7 14: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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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알콜성 지방간 우습게 보면 안 돼 ⋯유산소운동, 저혈당지수 음식으로 예방해야

35세 직장 여성 배지선씨(가명)는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지방간이라는 진단을 받고 당혹스러웠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몸무게도 평균 체중이기 때문이다. 평소 술이나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어야 지방간이 생기는 것으로 아는 사람은 배씨뿐만은 아니다. ‘지방간=생활습관’이라는 공식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지방간은 말 그대로 간에 지방이 많이 낀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지방이 간 무게의 5% 이상 쌓이면 지방간이라고 진단한다. 간에 지방이 축적되는 원인이 술이면 알코올성 지방간이다. 비만·당뇨·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질환이 원인이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다. 배씨의 경우는 내장 지방이 원인이 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다.

과거에는 알코올성 지방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소량(남자 소주 2잔 이하, 여자 맥주 1잔 이하)만 즐기는데도 생기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전체 지방간의 약 80%에 이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5년 3만3463명에서 2019년 3만1283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는 2만8368명에서 9만9616명으로 250%나 늘어났다.

지방간 방치하면 간경변·간암으로 진행

김형준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일으키는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신체 다른 부위의 잉여 지방이 간으로 운반되고, 지방 대사에 이상이 생겨 많은 양의 중성지방이 쌓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 내 지방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비만, 당뇨, 고지혈증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는 자체만으로는 지방간이 유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에너지로 사용하는 포도당을 세포로 운반하는 건 인슐린이다. 췌장에서 분비된 인슐린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상태를 인슐린 저항성이라고 한다. 체중이 많이 나가면 인슐린 저항성이 커진다. 세포로 흡수되지 못한 포도당은 핏속에 머물러 만성적인 고혈당 상태가 된다. 이것이 당뇨다.

또 혈관에 염증이 발생해 동맥경화증을 악화시키며, 신장의 염분 배설에도 이상이 생겨 고혈압이 발병한다. 이런 증상들이 생기는 상태를 대사증후군이라고 한다. 정인경 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서구화된 식습관과 비만을 비롯한 대사증후군 환자에게서 지방간이 잘 생긴다. 특히 최근 한국인의 비만 유병률이 증가함에 따라 지방간 발생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비만·당뇨·고지혈증이 없는데도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기는 원인은 대부분 내장 지방 때문이다. 2007~08년 사이에 건강검진을 받은 약 2000명을 4년간 추적 관찰한 국내 연구에서 내장 지방량이 증가할수록 비알코올성 지방간 위험이 최대 2.2배까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준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비만, 당뇨, 고지혈증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비만하지 않은 사람도 지방간인 경우가 많다. 복부 지방 즉 내장 지방이 지방간의 더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이 간에 만성적으로 쌓여도 뚜렷한 증상은 없다. 있다고 해도 피로감이 잦다는 정도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우연히 지방간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지방간이라도 염증이 없는 ‘단순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식사와 운동을 개선하면 정상 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방치하면 무서운 결과로 이어진다. 정인경 교수는 “지방간이 생긴 것 자체가 이미 인슐린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 즉 인슐린 저항성일 가능성이 크다.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당뇨, 고지혈증, 심혈관질환으로 진행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단순 알코올성 지방간에는 체중 감량이 주효

만일 지방간에다 염증까지 있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을 진단받았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간세포가 손상되는 시기이므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료받지 않으면 간세포가 파괴되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면서 딱딱하게 굳어지는 간 섬유화로 진행한다. 찢어진 피부가 아물면서 흉터를 남기는 것과 유사하다.

일단 간 섬유화가 생기면 정상조직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간 섬유화가 지속되면 간경변(간경화)으로 이어지면서 간 기능이 떨어진다. 간경변은 간암의 원인이기도 하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의 10~15%는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한다. 신현필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은 예후가 좋지 않아 간 섬유화, 간경변증, 심하면 간암으로 진행할 수 있으므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지방간을 치료하는 특효약은 없다. 그렇지만 지방간은 비교적 원인이 뚜렷한 질병이므로 그 원인만 피해도 예방이 가능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알코올성 지방간은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알코올성 지방간 진단을 받았다면 술을 끊는 게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다. 술을 한 번에 끊는 것이 힘들다면 술을 마시는 횟수나 주량이라도 줄여야 한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에 대한 치료는 지방간 자체보다는 당뇨나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질환에 대한 치료부터 시작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있으면 항산화제나 간세포 보호제 등을 투여해 치료한다. 고도비만인 사람은 비만대사수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

비만이나 대사질환이 없는 ‘단순 알코올성 지방간’일 때는 체중 감량이 가장 중요한 치료법이다. 체중을 줄일 때 유의할 점이 있다. 금식 등을 통한 급격한 체중 감소는 금물이다. 갑자기 체중을 빼면 내장 지방에서 간으로의 급격한 지방산 이동으로 급성 지방간염, 간 부전, 담석이 발생할 수 있다.

체중감량 속도는 일주일에 0.5~1kg 정도가 적당하다. 조수현 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자기 체중의 5%를 감량하면 간 수치를 호전시킬 수 있으며 약 10%를 줄이면 지방간을 개선할 수 있다. 꾸준한 운동과 적절한 식이요법이 체중 감량에 좋은 생활습관”이라고 말했다.

지방간 치료와 예방에 좋은 운동은 걷기, 조깅, 자전거 타기, 수영과 같은 유산소운동이다. 하루 30분씩 일주일에 3일 이상 해야 효과적이다. 근감소증이 생기는 중년 이상에서는 체내 에너지 소비가 감소해 지방간 위험이 2~4배 증가하기 때문에 평소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통 권장하는 식이요법은 섭취하는 총열량을 낮추고 지방질의 섭취를 전체 열량의 30% 이내로 하며 육류와 유제품 같은 동물성 식품에 많이 들어 있는 포화지방산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탄수화물이 많이 든 쌀밥, 떡, 빵 등 음식은 체내에서 쉽게 지방으로 바뀌므로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다. 고등어, 삼치 등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된 식품은 중성지방 감소, 혈당 저하, 간 수치 호전 등에 효과가 있으므로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혈당을 높이지 않는 이른바 저혈당지수 음식을 먹는 것이 지방간 예방에 도움이 된다. 정인경 교수는 “현미밥, 호밀빵, 메밀국수, 잡곡밥, 치즈, 콩, 어패류, 야채 등 저혈당지수 음식은 혈당을 천천히 올려 인슐린 분비에 부담이 적다. 대체로 혀에서 단맛을 느끼는 식품은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이므로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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