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파 3세대’ 이강인·이승우·백승호, 드디어 본격 시동 건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6 11: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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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이승우·백승호, 감독 교체와 팀 재건 속에 주전 도약 노려
‘벤투호’와 ‘김학범호’도 이들 주목

이강인(19)·이승우(22)·백승호(23)는 대한민국 축구 ‘유럽파’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군 제대 후 20대 중후반에 유럽으로 향할 수 있었던 1세대 차범근과 허정무, 월드컵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20대 초반에 나간 2세대 박지성과 이영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유럽파가 된 2.5세대 이청용·기성용과 달리 이들 3인방은 초등학교 시절 유럽의 빅클럽이 스카우트해 유럽 유스 시스템 안에서 성장한 3세대다. 손흥민도 함부르크SV 유스를 거쳤지만 그가 유럽에 당도한 것은 만 16세 때다. 반면에 세 축구 신동은 10대 초반부터 유럽의 축구 DNA를 흡수하며 성장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유럽파 3세대의 성인 무대 안착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이승우와 백승호는 FC바르셀로나 성인팀(1군)과의 계약에 실패했다. 물론 ‘라마시아(농장이라는 뜻의 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에서 쏟아지는 유망주 중 실제 1군 데뷔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2017년 리저브팀인 B팀으로의 승격을 끝으로 바르셀로나와 작별한 두 선수는 각각 이탈리아의 헬라스 베로나, 스페인의 지로나로 이적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이승우가 벨기에 1부 리그의 신트트라위던으로, 백승호는 독일 2부 리그의 다름슈타트로 이적했다. 

이강인은 만 18세 생일을 앞둔 지난해 1월 자신을 키워준 발렌시아와 1군 계약에 성공했다. 5개월 뒤 열린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남자 축구의 FIFA 주관 대회 첫 준우승을 이끌고 골든볼(MVP)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발렌시아 팀 내부 경쟁은 순조롭지 않았다. 측면을 강조하는 팀 전술과 맞지 않았고, 2018~19시즌 11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9~20시즌을 앞두고 임대를 추진하다가 팀의 설득으로 잔류했지만, 24경기 출전 중 선발은 4경기에 불과했다.

ⓒEPA 연합
ⓒEPA 연합

발렌시아의 삼고초려에 ‘잔류’ 가닥 잡은 이강인

1군 진입 후 두 시즌 동안 출전 시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이강인은 성장이라는 실리를 찾기 위해 팀을 옮길 계획이었다. 지난 시즌 총 700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출전 시간을 기록한 이강인과 달리 레알 마드리드에서 마요르카로 임대를 떠난 일본인 공격수 구보 다케후사는 2300분 넘게 뛰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주목받았다. 

더는 속지 않겠다며 올여름 임대를 포함한 이적을 추진하던 이강인은 다시 발렌시아 잔류 수순을 밟고 있다. 시즌 종료 후 기류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두 차례나 감독 경질을 단행했던 발렌시아는 유망주 육성에 능한 하비 그라시아 감독을 선임했다. 그라시아 감독은 선임 후 첫 공식 석상에서 “이강인은 아주 좋은 선수”라며 활용 의지를 표명했다. 싱가포르 출신의 재벌 피터 림 구단주를 비롯한 구단 수뇌부도 “새 시즌은 다를 것”이라며 이강인 잔류를 위한 세 번째 설득에 나섰다. 

이강인을 향한 발렌시아 구단의 설득은 구체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젊은 선수들의 활용에 적극적인 그라시아 감독 선임부터가 확실한 메시지다. 전술적으로도 이강인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공격형 미드필더 혹은 섀도 스트라이커로 쓰도록 포지션 보장까지 한 상황이다. 

이강인이 잔류로 마음이 흔들릴 가장 큰 요소는 팀 리빌딩 방향이다. 주장 다니 파레호에 이어 프란시스 코클랭이 비야레알로 이적했다. 이강인과 더불어 발렌시아 유스가 키운 특급 유망주 페란 토레스는 맨체스터시티로 떠났다. 토레스는 이적하면서 “주장인 파레호가 라커룸 내에서 나와 이강인 같은 유스 출신 선수들의 활용에 반발하며 따돌림을 주도했다”고 폭로했다. 그것을 중재하지 못해 팀 분위기 컨트롤에 실패한 마르셀리노 토랄 가르시아 감독도 자연스럽게 경질된 셈이다. 

팀 분위기를 해치는 ‘왕따 논란’의 가해자인 파레호와 코클랭을 내보내는 동시에 이강인의 1년 선배인 토레스를 팔면서 발렌시아는 젊은 팀으로의 리빌딩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중심축에 이강인을 세웠다. 국내에서 짧은 휴가를 보내고 스페인으로 돌아간 이강인은 새 시즌을 위한 첫 소집훈련에서 밝은 모습을 보였다. 8월6일 발표된 발렌시아의 새 유니폼 메인 모델도 이강인이었다. 유스 출신 선배인 카를로스 솔레르, 팀의 에이스인 제프리 콘도그비아 같은 주축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6월만 해도 꾸준히 나오던 이강인의 이적설도 잠잠해졌다. 

(왼쪽)백승호 (오른쪽)이승우 ⓒ신트트라위던 페이스북·EPA 연합
(왼쪽)백승호 (오른쪽)이승우 ⓒ신트트라위던 페이스북·EPA 연합

감독 교체와 함께 이승우 ‘주전 도전’, 백승호 ‘주전 확보’ 

이탈리아에서 2년간 뛰던 이승우는 과감하게 벨기에 무대로 옮겼다. 일본인 구단주가 있는 신트트라위던으로 이적을 감행했다. 중소 리그지만 1부 리그에서 확실한 주전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등번호 10번을 받을 때만 해도 순조롭게 에이스로 자리 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마크 브라이스 감독과의 갈등설이 이어진 것. 성적 부진으로 브라이스 감독은 물러났지만, 이승우는 21라운드에야 후반 교체 투입되며 어렵게 데뷔전을 치렀다.

후반기에 밀로스 코스티치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며 입지에 변화는 있었다. 저돌적인 드리블과 투쟁적인 플레이로 눈도장을 찍은 이승우는 코스티치 감독 체제에서 3경기 연속 출전하며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변수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며 신트트라위던에서의 첫 시즌은 4경기 출전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승우는 K리그 최강 전북 현대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유럽에서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피지컬 강화에 주력하며 새 시즌을 준비했다. 프리시즌 평가전에서 2경기 연속 골을 올린 이승우는 개막전에서도 팀의 첫 번째 교체 카드로 후반에 투입돼 적극적인 슈팅과 돌파로 호평을 받았다. 결승골의 출발점 역할을 맡아 호주 출신의 케빈 머스캣 신임감독의 첫 공식전부터 좋은 궁합을 보였다.

백승호는 지난 시즌 다진 주전 경쟁에서의 우위를 새 감독 아래서도 이어간다는 목표다. 다름슈타트와 함께 독일에서 2년 차를 맞은 그는 마르쿠스 앙팡 감독 체제에서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도전한다. 지난 시즌 5위로 아쉽게 승점 3점이 부족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던 다름슈타트는 2부 리그에서 실력이 검증된 앙팡 감독을 선임했다. 디미트리오스 그라모지스 전 감독 체제에서 중앙 미드필더를 소화했던 백승호는 앙팡 감독으로부터는 윙어를 먼저 주문받았다. 기술과 스피드 모두 뛰어나지만 여전히 신체적으로 조금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백승호의 공격적인 강점을 끌어내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실제로 다름슈타트가 치른 첫 연습경기에서 백승호는 윙어로 나서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지난 시즌에도 후반기 들어 맹활약하며 공격포인트를 올리고, 코너킥 등 세트피스까지 책임질 정도로 높은 신뢰를 받았던 백승호다. 막판에 이적이 결정 나서 프리시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1년 전과 달리 지금은 적응도 끝난 만큼 팀이 더 큰 활약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소속팀에서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하는 젊은 유럽파 3인방의 활약은 A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에도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된 월드컵 2차 예선 잔여 일정과 도쿄올림픽 본선 모두 출전 가능한 선수들이니만큼 이강인·이승우·백승호가 꾸준한 경기 출전과 기량을 유지해야 파울루 벤투, 김학범 두 감독의 계획과 해법에서도 폭이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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