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괴물 로하스, 메이저리그 ‘역수출’ 계보 잇나
  • 이상평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7 16: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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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서 도루 제외한 공격 전관왕 도전…2015년 ‘테임즈 신화’ 떠올려

전 세계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KBO리그에서 현재 가장 뜨거운 타자를 꼽으라면 단연 KT 위즈의 멜 로하스 주니어를 들 수 있다. 로하스는 8월12일 기준으로 타율 0.388, 홈런 29개, 타점 74개를 기록하며 꿈의 4할 타율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물론, 도루와 득점을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번 시즌의 압도적인 모습을 통해 로하스는 넘볼 수 없을 것 같던 테임즈(전 NC·2015년 MVP)로부터 역대 최고 외국인 타자라는 칭호를 빼앗아올 것처럼 보인다. 이와 더불어 2010년 이대호(롯데)가 기록한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에도 도전할 기세다.

8월9일 프로야구 KT-한화 경기에서 로하스가 투런 홈런을 치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9일 프로야구 KT-한화 경기에서 로하스가 투런 홈런을 치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로하스 앞세운 KT, 창단 후 첫 가을야구 꿈꿔

그러나 로하스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리그를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로하스는 2017년 조니 모넬의 대체 선수로 KT에 입단했는데, 입단 당시만 해도 중견수를 소화하며 다소 날렵한 체형을 가진 호타준족형 ‘5툴 플레이어’였다. 5툴 플레이어는 야수에게 필요한 5가지 능력을 모두 갖춘 선수를 의미하는데, 보통 정확도·파워·스피드·수비·어깨를 5툴로 꼽는다. 또한 좌우 타석에 모두 들어서는 스위치히터라는 희소성도 갖춘 선수였다. 당시 로하스가 기록한 성적은 83경기 출전에 타율 0.301, 18홈런, 56타점이었다.

반 시즌 동안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재계약에 성공한 로하스는 겨울 동안 철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키우는 벌크업을 해 돌아왔다. 그러면서 기존의 호리호리하고 날렵한 체형에서 큰 근육질의 선수로 변신한 그는 2018년 타율 0.305, 43홈런, 18도루, 114타점을 기록하며 홈런왕 경쟁을 펼치는 등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이를 발판 삼아 메이저리그 무대를 노크했지만 만족할 만한 오퍼를 받지 못하자 KT와 재계약한 로하스는 겨울 동안 다시 한번 몸을 키운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9시즌 공인구 반발력 조정 여파로 홈런이 24개로 많이 감소했지만, 타율을 0.321까지 끌어올리는 등 타격 전반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과도한 벌크업의 영향으로 2019시즌의 로하스는 과거 공·수·주를 모두 갖췄던 선수에서 단순히 공격 능력만 갖춘 선수가 되고 말았다. 중견수를 소화하며 20도루를 노려볼 수 있었던 선수지만 몸이 너무 커지며 수비와 주루에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중견수에서 좌익수까지 밀려나는 굴욕도 겪어야만 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로하스는 지난겨울 벌크업 대신 몸집을 다시 날렵하게 하는 큰 결정을 내렸다. 최적의 몸 상태로 돌아가 잃어버린 수비력과 주력을 되찾겠다는 목표로 내린 결정이었다. 이 결정은 대성공이었다. 올 시즌 배정대가 급성장하는 바람에  중견수 자리로 돌아가진 못했지만, 뛰어난 수비를 보여주던 2017년의 모습을 우익수 자리에서 보여주고 있다. 부상 위험 때문에 도루를 피하고 있지만, 주력 역시 되찾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파워는 유지해 홈런왕 경쟁을 하던 2018년의 모습을 되찾았다.

시즌의 절반도 치르지 않은 현 시점에 로하스는 벌써 지난해의 홈런 개수를 넘어섰고, 정확도도 더욱 발전시켜 1982년 백인천 이후 첫 4할 타율에도 도전하고 있다. 11일 현재 타격 6개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는 득점 면에서도 선두인 김하성(키움)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2010년 이대호의 타격 7관왕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2015년 창단 이후 한 번도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한 KT는 로하스를 앞세운 타선을 바탕으로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다. 

KBO 최고의 타자로 등극했던 테임즈는 2017년 메이저리그로 입성했다. ⓒAP 연합
KBO 최고의 타자로 등극했던 테임즈는 2017년 메이저리그로 입성했다. ⓒAP 연합

코로나 상황까지 로하스로선 MLB 첫 입성 ‘호재’

야구 집안에서 자란 로하스는 한국에 오기 전 메이저리그 올스타 투수 출신인 아버지의 운동능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평을 받으며 상위 라운드 지명을 받고 마이너리그 무대를 거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소속팀이었던 피츠버그의 탄탄한 외야진 때문에 기회를 받지 못해 메이저리그 데뷔 꿈을 이루지 못했고, 한국 무대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이런 가족력과 메이저리그 무대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로하스는 매년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무대를 끝까지 노크하다 만족할 만한 오퍼를 받지 못하면 다시 KT와 재계약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이는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매년 복수의 메이저리그 팀이 관심을 가지고 계약 조건도 제시했지만, 그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올해 겨울은 기존과는 다소 다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KBO에서 성장해 미국으로 돌아간, 이른바 ‘역수출’ 선수 중 한 명으로 로하스도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여러모로 과거 NC 다이노스에서 성장해 KBO리그를 폭격하고 메이저리그에 돌아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에릭 테임즈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KBO가 미국에 생중계되는 기연까지 겹치며 자신의 최고 시즌을 미국 현지에 있는 팬들과 언론들에도 각인시킬 기회까지 얻어냈다. 실적과 홍보 모두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마이너리그 시즌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되고, 메이저리그가 단축 시즌을 치르게 된 것도 로하스로선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다소 애매한 위치의 유망주들이나 대어급이 아닌 FA 선수들이 올 시즌 이후 계약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로하스는 치열한 KBO리그에서 정상적인 시즌을 보낸 선수이기 때문에 경쟁력에서 비교가 안 된다.

로하스는 현재 KBO에서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가장 뜨겁게 받고 있는 선수 중 하나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던 메이저리그 무대에 대한 꿈과 갈망을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로하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제안이 온다고 무조건 가지는 않겠다”는 다소 상반된 말을 인터뷰에서 내놨다. 올해까지 4년을 뛰면서 팀에 큰 애정을 갖게 된 로하스는 “KT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중위권 순위 경쟁이 치열한 팀에 대한 배려의 차원일 수 있다. 지금 기세라면 로하스는 테임즈-켈리(전 SK)-린드블럼(전 두산)의 뒤를 잇는 새로운 역수출 신화를 쓰는 용병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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