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들은 왜 자꾸 ‘사고 지역’을 찾아갈까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5 10:00
  • 호수 16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이루트 참사 현장 찾은 마크롱에 ‘정치쇼’ 비판역대 ‘용두사미 외교’ 끊을지 관심

8월6일, 레바논 폭발사고 현장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을 보러 운집한 베이루트 시민들에게 “나는 9월1일 다시 올 것”이라며 “약속이 지켜지지 못할 경우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못 박았다. 당시는 베이루트 대형 폭발사고 이틀 뒤였으며, 외국 정상 최초로 사고 현장을 방문한 것이었다. 레바논의 그 어떤 정치 지도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사고 현장과 수도 거리를 누비며 타국의 지도자가 베이루트 시민을 일일이 격려하고 위로하는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대형 참사를 겪고 있는 레바논은 다시금 식민통치의 기로에 서 있다. 100년 전 독립에 환호한 레바논 국민들은 지금 자력이 아닌 외세에 의한 구원을 외치고 있다. 마크롱의 베이루트 방문 중 30여 분간 이어진 시민들과의 만남에서 줄기차게 터져 나온 목소리는 레바논 정부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에 마크롱은 “여러분 모두를 이해하고 위로한다”며 시종일관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 보도 전문채널 BFMTV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군중의 요구에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그를 두둔했다. 유명 레바논계 프랑스인 에세이스트 자드 자합 역시 “레바논의 어떤 정치인도 마크롱처럼 군중 앞에서 ‘모두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바논은 헌법적으로 18개 종파가 권력을 나누어 갖고 있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이며,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다. 모두 ‘정파’와 ‘교파’를 중심으로 한 자신의 지지 세력을 대변할 뿐 ‘레바논 국민 전체’를 품는 정치는 이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자드 자합은 “마크롱과 같은 행보는 모든 레바논 정치인들의 꿈”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8월6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의 대규모 폭발 참사 현장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폐허가 된 거리에서 한 주민을 감싸안고 위로하고 있다. ⓒAFP 연합
8월6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의 대규모 폭발 참사 현장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폐허가 된 거리에서 한 주민을 감싸안고 위로하고 있다. ⓒAFP 연합

‘방문’만 남았던 지난 대통령들의 현장 찾기

이처럼 마크롱의 발 빠르고 차별적인 행보는 베이루트 현지의 열띤 호응을 넘어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레바논 국민의 구원 요청에 화답하는 마크롱의 발언과 태도가 자칫 ‘내정간섭’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 급진좌파정당인 ‘라 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뤼크 멜랑숑 대표는 SNS를 통해 “도대체 (마크롱) 자신의 힘이 전지전능할 것이라는 착각은 어디서 오는 건가”라며 “과거 리비아에 갔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사례로도 충분치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멜랑숑 대표가 리비아와 사르코지를 언급한 것은 2011년 9월 당시 사르코지가 프랑스 대통령이던 시절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함께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깜짝 방문한 당시를 가리킨다.

42년의 철권통치를 이어오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외국 수반으론 최초로 트리폴리를 방문했던 그는 리비아 군중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었다. 당시 그 앞에서 사르코지가 행한 태도와 연설은 이번 베이루트에서 마크롱이 보인 모습과 판박이였다. 사르코지는 가장 빠르게 현장을 찾아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하고 ‘영원한 우애’를 강조하며 국민들을 위로했다. 당시 리비아 집권세력은 영국과 프랑스에 재건에 관한 우선협상권을 제시하며 적극 화답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리비아엔 여전히 민주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 내전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프랑스 경제일간지 라 트리뷴은 당시 사르코지의 리비아 방문을 두고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최고의 홍보를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방문 8개월 후 치러진 대선에서 사르코지는 재선에 실패했다. 그가 리비아 국민을 향해 했던 모든 약속과 청사진 역시 자연히 연기처럼 사라졌다. 결국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깜짝 방문으로 남은 것은 ‘방문 자체’뿐이었다.

이러한 프랑스 지도자들의 화려한 외교행보에 대해 국제문제 전문가인 안토니 벨랑제 기자는 “프랑스 대통령들이 국제무대에서 발 빠르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하며, 이는 사르코지와 마크롱의 경우만이 아니라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1992년 사라예보를 방문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당시 보스니아 내전으로 사라예보가 포위된 상황에서 미테랑은 그 한복판을 깜짝 방문했다.

그러나 역시 방문뿐이었다. 미테랑의 노력에도 대치 상황은 풀리지 않았으며, 이후 1400일 넘게 포위가 이어졌다. 뒤이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9·11 테러 나흘 만에 외국 수반 최초로 뉴욕 현장을 방문해 연대를 강조했지만, 당시 부시 행정부가 들고나온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대해 어떤 국제적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던 도미니크 드 빌팽의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연설문만 회자된 정도다.

레바논 시민들이 베이루트 폭발 참사의 책임 규명과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EPA 연합
레바논 시민들이 베이루트 폭발 참사의 책임 규명과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EPA 연합

“굳이 독립선언 100주년 날 재방문 약속을”

베이루트를 방문하고 프랑스로 돌아오는 저녁 마크롱은 “레바논을 사랑합니다”라는 트윗을 아랍어로 SNS에 게시했다. 아랍계 프랑스인 블로거인 라마 위를레는 “레바논은 이미 프랑코폰(프랑스 문화권)이고, 거의 모든 레바논인들이 프랑스어를 아는데 굳이 아랍어로 글을 올린 이유는 뭔가”라며 ‘보여주기 정치쇼’라고 비판했다.

마크롱은 레바논 국민에게 호언한 대로 8월9일 국제 화상회의를 주도하고 향후 레바논의 피해 복구를 위해 3억 달러(약 3500억원)를 마련하는 지원안을 도출해 냈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미 레바논을 위한 지원 기금은 10년 전부터 국제통화기금에 마련돼 있다. 그동안 충족되지 않았던 건 ‘돈’이 아니라, 레바논이 갖춰야 할 ‘조건’이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레바논의 은행들이 연계해 국제통화기금에서 제시하는 지원 기준을 방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하원의 대정부 질문에서 “제발 우리가 당신들을 도울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레바논 정부를 향해 공개적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마크롱이 레바논 국민들에게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9월1일은 1920년 ‘위대한 레바논’이 선언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레바논계 프랑스인으로 ‘아랍국가연구소’의 설립자인 앙투완 바스부스 소장은 “독립선언을 축하해야 하는 날 ‘유엔 헌장 7조’를 발동시킬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겠다”며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유엔 헌장 7조는 ‘평화에 대한 위협’에 관한 사안으로 ‘신탁통치’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재방문일을 이날로 정한 것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마크롱이 정치쇼라는 비판을 넘어, 이슈 선점 이후 용두사미로 끝나던 선례를 깨고 ‘진짜’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