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은 잡음만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 김도형 아주경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7 08: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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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추락’ 반사이익에만 기대는 상황…“피해자 이미지론 힘들어” 쓴소리

“미래통합당은 쓸데없는 잡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8월10일 전남 구례 수해 현장을 둘러본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자들과 만찬을 함께하며 한 말이다. 지금 통합당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최근의 당 지지율 상승이 통합당의 덕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실정 탓이라는 얘기다. 당 지지율은 총선 이후 최대치를 기록해 민주당과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8월10일 발표한 8월 1주차 주간동향에 따르면, 통합당의 지지율은 34.6%로 민주당(35.1%)과 오차범위 내에 있다. 서울 지역에선 35.7%를 기록해 35.3%인 민주당에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8월10일 전남 구례군 오일장을 찾아 침수 피해 복구에 나선 주민을 위로하고 있다. ⓒ시사저널 포토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8월10일 전남 구례군 오일장을 찾아 침수 피해 복구에 나선 주민을 위로하고 있다. ⓒ시사저널 포토

“혁신 안 보여”…잡음 관리 그친 김종인 비대위

당 안팎에선 통합당의 지지율 상승을 반사이익 또는 동정 여론 덕으로 본다. 부동산 정책은 문재인 정부 최대 뇌관으로 떠올랐다. 여당은 부동산 관련 법안 일방 처리로 뭇매를 맞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신고제를 골자를 한 임대차 3법은 기존 전세의 월세 전환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월세가 뭐가 나쁘냐”는 윤준병 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성난 민심에 불을 지폈다. 성추행 피소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이나,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도 한몫했다.

윤희숙 통합당 의원이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본회의 5분 발언으로 화제가 됐지만, 통합당의 기획이라고 보긴 어렵다. 다음 본회의에서 10여 명의 의원들을 발언대에 세웠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한 3선 의원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윤 의원이 아니었다면 7월 국회에서 통합당의 무능 이미지는 더욱 강화됐을 것”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면서 통합당에 약자나 피해자의 이미지가 많이 생긴 것”이라며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약자의 편에 서는 성향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걸로 정권 창출은 힘들다. 피해자 이미지가 어느 정도 유지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이 전국을 덮쳤던 지난해 7~8월도 상황은 비슷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지율 격차 역시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 별다른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고, 공천 과정의 잡음과 극우적 행태는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 지금 지지율이 오르고 있지만 통합당 내에서 고무적이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김종인 비대위는 오는 9월3일, 출범 100일을 앞두고 있다. 당내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하태경 의원은 “과거에 비해 극우적이지 않고, 실수도 많이 줄었다. 극우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등 당이 이미지 변환에 어느 정도는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PK(부산·울산·경남)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사석에서 “기대했던 것보다는 순항하고 있다”고 했다.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극우적 발언’ 등 잡음 관리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얘기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더 나아가 내후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당내에선 ‘잡음 관리’를 넘어선 혁신과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정병국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혁신이다. 당내에서 혁신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 있어야 하고, 당이 잘되기 위한 싸움이 일어나야 하는데 현재는 혁신위원회가 있는지 없는지 드러나지도 않잖느냐.”

김종인 비대위는 당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혁신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국회의원의 4연임 금지가 대표적이다. 당 정강정책개정특위는 한 지역에서 3선을 한 의원을 같은 지역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강정책 개정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중진 의원들의 반발이 감지됐다. 그러자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란 말이 나왔다. 최다선인 5선 의원도 2028년 총선까지 출마할 수 있단 의미다.

김 비대위원장은 4연임 금지 도입 여부에 대해 “아직 확정적인 것이 아니다”며 “특위 논의 과정에서 내용이 나왔고, 단정적으로 정책에 반영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본소득 도입이나 대학 서열 파괴, 방송통신위원회 개혁 등의 의제도 포함됐지만, 현역 의원들의 희생이 전제되지 않은 혁신은 울림이 크지 않다. ‘잡음 관리’와 ‘혁신’이 부딪히는 지점이다. 정병국 전 의원은 이를 두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줬다면 그들이 제시한 것을 논의할 수 있는 구조는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

‘외부 인사’ 윤석열·홍정욱·김동연 등 거론

더 큰 문제는 인물난이다. 민주당에선 대선후보 지지율 1위인 이낙연 의원과 2위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확실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야당의 후보군들은 2~3% 선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야권 대선후보로 인식되며 3위에 오른 상황이다.

윤 총장이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출마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스스로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빼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한 당사자이니만큼 당내 반발도 있다. “그 사람이 뭘 한 게 있느냐”(경찰 출신 한 의원), “그때는 정말 용서할 수 없었다”(옛 친이계)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 총장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지 않냐”는 목소리가 혼재하는 가운데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홍정욱 전 의원까지 거론된다. 김 전 부총리 역시 현 정부에서 중용된 인물이다.

당장 내년에 실시될 서울시장 선거도 문제다. 서울시장이 가지는 상징성과 그 후 대선까지 흐름을 고려한다면 져선 안 되는 선거다. 신선한 인물이 필요하지만 거론되는 후보군은 나경원·오세훈·이혜훈 등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인사들뿐이다. 서울시장 후보를 ‘내려꽂을’ 경우 극심한 당내 반발이 예상된다. 경선을 치를 수밖에 없는데, 외부 인사가 당내 경선을 통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선거가 8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새로운 인사가 등장할 공간을 마련해 주고, 공정한 경선룰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장제원 의원의 말이다. “자신(김종인)이 마이크를 독점하고 지지율이 올라가니 당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기국회의 시간이 오면 차기 후보군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공간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존 인물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경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부분이 걱정이다.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점지를 받으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된다. 다른 후보군이 움찔할 수밖에 없다. 김 비대위원장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지, 등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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