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터 갈등 증폭, 월성원전 셧다운 면할 수 있을까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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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처리능력 19개월 남아
경주주민 찬성, 울산시민 반대 ‘골든타임 위기’

원자로에서 3~5년간 핵분열을 하며 연소한 연료는 교체하는데, 이를 '사용후핵연료'라고 한다. 이 사용후핵연료에는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 외에도 제논ㆍ스트론튬ㆍ세슘ㆍ플루토늄 등과 같은 맹독성 방사성물질이 들어 있어 노출되면 치명적이다. 

월성원자력발전소 전경ⓒ한국수력원자력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꺼낸 뒤 습식저장소 냉각을 거쳐 맥스터에 옮겨 보관한다. 월성 원전이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현재 원전 맥스터 용량이 96%까지 찼다. 19개월 후인 2022년 3월에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저장시설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으면 월성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수력원자력은 맥스터 7기(16만8000다발)를 월성 원전 안에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6월 시공사까지 선정하고 마지막 행정절차인 '공작물 축조신고'만 남겨둔 상태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났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맥스터)이 포화상태에 임박했다ⓒ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맥스터)이 포화상태에 임박했다ⓒ한국수력원자력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재검토위)가 시민참여단의 의견수렴 과정에 월성원전과 인접한 울산 북구를 제외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시민참여단은 월성 원전 5km 이내에 있는 3개 읍·면(경주 감포읍·양북면·양남면) 주민과 인근 경주 시민으로 구성됐다. 재검토위가 지난달 24일 시민참여단 145명을 대상으로 한 월성 원전 맥스터 증설 찬반 조사 결과 찬성 81.4%(118명), 반대 11.0%(16명), ‘모르겠다’ 7.6%(11명)로 나타났다. 공론화 결과로 80%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 결과가 나오면서 증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여겨졌던 당초 계획이 빗나갔다.

 

맥스터 추가건설…경주시민 찬성, 울산시민과 환경단체 반대

월성원전 소재지 경주시청보다 더 가까운 울산 북구 주민 등으로 구성된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는 청와대 농성까지 벌이며 맥스터 추가건설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울산 북구 자체 주민투표에 주민 5만 명 이상이 참여했고, 이 중 4만7000여 명(94.8%)이 맥스터 증설에 반대했다.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와 월성원전 핵쓰레기장 추가건설 반대 경주시민대책위도 재검토위의 맥스터 증설 공론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울산 북구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월성원전 맥스터 추가건설을 반대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
울산 북구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월성원전 맥스터 추가건설을 반대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

솔철호 울산시장도 반대편에 섰다. 송시장은 “행정구역상 원전 소재 지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울산이 의견수렴 대상에서 배제됐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울산은 반경 30㎞ 안에 14기의 원전이 있는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이다. 특히 북구는 월성원전에서 20㎞ 안에 위치해 전 지역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재검토위는 공론화를 위한 시민참여단을 월성원전 인근 3개 읍·면(감포·양북·양남) 주민과 인근 경주시민으로만 구성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여론조사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원래 재검토위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저장시설 등 중장기관리정책 공론화를 먼저 진행하기로 했으나, 처리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월성 원전 맥스터 건설 논의를 병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대립이 커졌다. 급기야 월성 원전 첫 사전설명회 직전 당시 정정화 재검토위 위원장이 "시민단체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재검토위 해체를 요구하며 사퇴했다. 진보당과 시민단체들도 월성 원전에 영향을 받는 울산 주민 의견도 함께 물어야 한다며 반발했다. 

정부도 한걸음은 물러섰다. 산업부 관계자는 “탈핵 단체와 울산지역 주민 등 공론화 과정에 직접 참여를 하지 않은 이해관계자의 의견까지 듣는 과정을 진행 중”이라면서 “단순히 월성 맥스터 증설 문제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방안에 대해 함께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처리능력 한계에 도달, 셧다운 임박

맥스터 건설에 19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이달 안에는 착공해야 사용후핵연료 포화를 막을 수 있다. 월성원전 관계자는 “적지 않은 파열음을 내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골든타임’도 맞추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포화상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빨리 증설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놓고 갈등은 이제 시작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전국 25개 원자발전소에서 사용후핵연료가 넘쳐나고 있지만, 아직 종합 관리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정부가 원전 해체 사업을 본격 진행하면 이 같은 갈등이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해체가 결정된 고리 원전의 경우 오규석 기장군수가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방안을 수립하라"며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재검토위는 이미 전국단위 의견 수렴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올해 말까지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방안 권고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탈원전 등 새로운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한다면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근본 문제인)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찬반이 극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재검토위가 사용후핵연료 처리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며 "앞으로도 원전 관련 갈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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