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작은 것이 만드는 큰 차이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7 09: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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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심각해져 걱정이 커진 때에 이 감염병 확진을 받았던 한 대학교수가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코로나19 증상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며 완치된 후에도 가슴과 복부의 통증, 피부 변색, 만성 피로 등 크게 다섯 가지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5개월 넘게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그의 경험담은 코로나19의 또 다른 실상을 알려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읽혔다. 이 감염병뿐만 아니라 다수의 질병이 크고 작은 후유증을 남기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심리적 외상에 시달릴 수도 있다. 영국의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후유증의 유형은 무려 16가지나 된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수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내고 이미 회복된 환자들에게도 여러 후유증을 남긴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음에도 이 감염병에 대해 여전히 무감각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일부는 무감각을 뛰어넘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고의로 희석시키거나 조롱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해 방역작업을 방해하거나 검사를 아예 기피하기도 한다. 심지어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던 한 보수 성향 인사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병원 음식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이쯤이면 “역학조사의 역량을 시험받는 상황”이라는 방역 당국의 평가가 왜 나왔는지 이해될 만하다.

지난 6월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신관 입구에서 관계자가 방역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신관 입구에서 관계자가 방역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 코로나19 대응의 최후 보루를 지켜야 할 의사들까지 자리를 비우고 거리로 나섰다. 정부의 ‘의사 수 늘리기’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집단휴업에 나선 의사 단체나 그에 강경 대응하는 정부 모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겠지만 때가 좋지 않다. 지금은 서로의 이해를 떠나 한 걸음 먼저 물러서는 쪽이 이기는 국면이다. 국민이 살아야 정부의 정책 의지도 살고, 의사들의 외침도 살 수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국민인 신도가 살아야 교회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

심상치 않은 코로나19의 확산세에 따라 정부가 방역 단계를 상향 조정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길거리 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음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른바 ‘턱스크’를 한 채 오가는 사람도 꽤 많이 눈에 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스크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확진자가 나왔던 경북 경산의 한 유치원에서 다른 200여 명의 직원과 원아 가운데 추가 확진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도 이 마스크의 덕이었다. 또 외국에서 귀국해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한 대학생은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잘 써서 부모님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았다며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마스크는 작은 물건이고 고가의 물건도 아니지만, 그 작은 물건이 정말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전염병을 다룬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의사인 리유가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결코 함부로 무시하거나 조롱할 대상이 아니다. 이 싸움에는 우리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다. 이해(利害)가 아니라 이해(理解)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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