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렬한 풍자로 화제 오른 ‘시무 7조’ 톺아보기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7 14: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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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정부 ‘뼈 때린’ 상소문…“토지거래허가구역 최초 지정” 등은 사실과 달라

풍류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휘감았다. 상소문 형식의 ‘시무7조’가 지난 8월12일 게시판에 올라오면서다. 예스러운 문체에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문재인 정부의 ‘뼈를 때렸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이 글은 한때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비공개 처리됐다가 8월27일 다시 공개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더욱이 글을 쓴 ‘진인(塵人) 조은산’(이하 조은산)이란 필명의 네티즌이 평범한 30대 가장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또 이목이 쏠렸다. 이후 8월29일에도 ‘영남만인소’란 글이 올라 풍류 비판을 이어갔다. 이 글은 시무7조를 반박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그 속에는 역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8월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처음 올라온 진인 조은산의 ‘시무7조’. 이 글은 비공개 처리됐다가 8월27일 다시 공개됐다. 9월3일 현재 42만 건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시무7조를 쓴 조은산은 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10조’에 착안해 글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조은산은 시무7조를 통해 △세금 감면 △이성 중시 △실리 외교 △사욕 인정 △인사 교체 △헌법 준수 △스스로 일신(一新) 등을 강조했다. 또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등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돼지의 욕심에 빗대 조롱하기도 했다. 다만 주장을 풀어내는 와중에 팩트가 틀린 부분도 눈에 띄었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비판을 이어나간 경우도 있었다. 그가 지적하려 했던 문제점은 정확히 무엇이고, 잘못 인용한 대목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1. “11억 올랐는데 11% 올랐다는 미친 소리?”

조은산은 글 서두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느 대신은 집값이 11억이 오른 곳도 허다하거늘/ 현 시세 11프로가 올랐다는/ 미 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구절의 첫 글자를 이으면 ‘현미’가 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겨냥한 것이다.

김 장관은 지난 7월23일 국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한국감정원 통계로 (집값이) 11% 오른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어느 정도 올랐다고 보는가’라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한국감정원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대비 올 5월 서울 주택종합 매매가 변동률은 11.14%다. 김 장관은 이 수치를 근거 삼은 것으로 추측된다.

시민단체는 ‘집값 상승률 11%’에 대해 반박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8월3일 “2017년 5월부터 올 5월까지 서울 전체 집값은 34% 상승했고 아파트만 보면 52% 올랐다”고 주장했다. 이는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서울 주택 유형별 매매 중위가격을 토대로 산출한 수치다. 이어 경실련은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더라도 현 정부의 아파트값 상승 속도가 과거 정부보다 최대 12배 빠르다”고 지적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김 장관의 말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셈이다.

한편 경실련은 앞서 7월1일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주택 보유 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김조원 당시 민정수석의 주택 2채(서울 도곡동·잠실동) 가격은 2017년 5월 대비 올 6월 11억3500만원 올랐다. 같은 기간 강민석 대변인의 주택 2채(서울 잠원동) 가격 상승분은 11억2250만원이다. 시무7조에 언급된 ‘집값이 11억 오른 어느 대신’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 오상민

2. “한양이 천박…전월세 자신이 정하겠다며”

조은산은 계속해서 “어느 대신은/ 수도 한양이 천박하니/ 세종으로 천도를 해야 한다는/ 해 괴한 말로 백성들의 기세에/ 찬 물을 끼얹고”라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꼬집은 대목이다. 이 대표는 7월24일 세종시 강연에서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세종에 행정수도를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전월세 시세를 자신이 정하겠다며/ 여기저기 널뛰기를 하고 칼춤을 추어/ 미 천한 백성들의/ 애 간장을 태우고 있사온데”라고 썼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7월27일 국회 회의에서 한 발언과 관련 있는 부분이다. 이날 추 장관은 “계약기간을 2+2년으로 하고 갱신 시 인상률은 5% 내에서 지자체가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주택임대차보호법과 관련해서다.

 

3. “어찌 160조 신분배 지지하겠나…54조 증발?”

조은산은 시무7조의 두 번째 조항에서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고 정책을 펼쳐달라”고 주문했다. 감성의 한 예로 언급된 정책은 “기업의 손과 발을 묶어 54조의 혈세를 쏟아붓는 것”이다. ‘54조원’은 2018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주장한 정부의 일자리 예산 2년 치다. 세부적으로 △2017년 본예산 17조1000억원·추경 11조원 △2018년 본예산 19조2000억원·추경 4조원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을 모두 더해 반올림한 액수다. 당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정권이 일자리에 쓴 돈이 무려 54조원인데 세금으로 아르바이트를 만들 능력밖에 없다”고 깎아내렸다.

이에 홍영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일자리 예산은 41조원”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2017년 추경 11조원 중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에 쓰인 2조6000억원만 일자리 예산이라고 주장했다. 또 2018년 추경 4조원 중 일자리 예산은 청년 일자리 대책에 투입된 2조9000억원만 해당한다고 봤다. 추가로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은 정부가 분류한 일자리 예산이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계산한 총액을 내림하면 41조원이 된다. 한국당 주장보다 13조원이 적다. 일자리의 지원 범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차이다.

그 밖에 조은산은 “정책의 기조 변화 없이 어찌 다가올 160조 신분배 정책을 지지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은 7월16일 국회 개원식에서 ‘한국판 뉴딜’에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를 통해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4. “지소미아 흔들려…농·수산물 수입 금지?”

조은산이 강조한 세 번째 시무는 외교다. 그는 “동북아 안보의 상징인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명분의 외교’를 꼬집으면서 한 말이다. 시무7조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르기 전은 지소미아 파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던 때였다. 8월4일 외교부가 지소미아와 관련해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우리 정부가 종료 가능하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2016년 11월23일 맺은 지소미아는 해마다 갱신된다. 원칙대로라면 올해 협정을 중단하려는 쪽은 종료일로부터 석 달 전인 지난 8월23일까지 상대 측에 알려야 했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해 8월 종료를 통보했고, 그해 11월 조건부로 통보를 미룬 적이 있다. 이후 원칙과 달리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단 올해 통보 시한에는 양국이 침묵하면서 현재 지소미아 효력은 유지되고 있다.

조은산은 또 ‘일본 의류업체 폐점’ ‘일본 자동차업체 철수’ ‘일본 기업 한국 거래 중단’을 언급했다. 모두 사실이다. 일본 유니클로는 7월31일 서울 강남점을 포함한 전국 9개 매장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일본 불매운동 이후 지난 1년간 23곳이 폐점하게 됐다. 일본 닛산자동차도 올 5월 한국 시장에서 발을 빼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유니클로 자매 브랜드 GU, 카메라업체 올림푸스, 초콜릿 브랜드 로이즈도 한국 사업을 접으면서 거래를 끊었다.

그 외에 “심지어 (일본이) 농산물과 수산물까지 수입 금지에 처한다니”라는 내용도 썼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해 7월 “한국 농산물 수입 규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역 보복 조치의 일환에서다.

그러나 이는 실행되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일본이 농산물에 대해 수입 규제를 강화한 적도, 금지한 품목도 없다”고 설명했다. 수산물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일본이 지난해 6월 한국산 넙치 등 5개 품목에 수입 검사를 강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해당 조치는 아직 공식 종료되지 않았다. 다만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한 적은 없다”고 했다.

 

5. “토지거래허가구역 최초 지정?”

조은산은 ‘폐하’가 헌법을 어겼다는 취지의 논리도 펼쳤다. 그는 “건국 이래 최초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했다”면서 “헌법 14조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했다”고 주장했다. 사실과 다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1979년 도입된 이후 1985년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처음 지정됐다. 이는 토지 내에 부동산 투기가 발생할 조짐이 보일 때 투기 방지를 위해 설정하는 구역이다. 일단 지정되면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 거래는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대치·삼성·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또 헌법에 규정된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박탈당했다고도 했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학업이 뛰어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모조리 섞어 한 교실에 집어넣어 하향평준화를 통한 진정한 평등을 이루었다”고 했다. 하항평준화 논란은 정부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에서 비롯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교육부는 경희·배제·세화고 등 서울 8개 자사고의 지정을 취소하려는 서울시교육청 처분에 동의했다. 올 7월에는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 등 국제중학교도 일반중학교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정부는 일련의 정책이 하향평준화를 초래한다는 데 선을 그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7월28일 국회 회의에서 “(자사고 등이) 운영 과정에서 대학 입시 경쟁을 우선시하면서 설립 취지가 훼손됐다”며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은 시대와 기술 변화에 맞는 (교육을 진행해) 상향평준화를 갖고 올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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