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과 낡음 사이에서 흔들린 재난지원금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3 14:00
  • 호수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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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소통 부재하니 논쟁은 갈등·정쟁으로
선별도 보편도 아냐…‘취약계층 두텁게’ 취지 퇴색

몇 가지 전제부터 명확히 하자. 언론이 ‘2차 긴급재난지원금’이라 부르는 걸 정부는 ‘맞춤형 긴급재난지원 패키지’라고 한다. 지난 5월 ‘전 국민’에게 지급됐던 지원금과 이번 지원금의 성격이 다르다는 강조다. 정부는 이번 긴급 지원이 피해가 극심한 자영업자와 고용 취약계층에 초점이 맞춰진 ‘맞춤형 선별 지원’이라고 했다. 선별 집중지원 방식엔 형평성 시비가 따르기 쉽다. 이번에도 보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 역시 나왔다. 시비가 커져 논란이 되고 갈등이 될 때 이걸 조정하는 게 정치의 본분이다. 

정부는 코로나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4차 추경을 통한 긴급재난금 지급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정부는 코로나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4차 추경을 통한 긴급재난금 지급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2차 재난지원금’이라 부르기를 꺼리는 정부

이를 위해 7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4차 추경은 모두 국채로 충당한다. 전부 나랏빚이란 얘기다. 곧 겨울철이다. 전문가들은 가을·겨울에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나타날 것을 우려한다. 아직 치료제나 백신은 없다. 추가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정부의 재정 건전성은 이럴 때 쓰라고 지켜온 것이다. 하지만 적정한 국가부채 비율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학자 같은 전문가 몫이 아니다. 정치인의 역할이다. 

1년에 네 차례 추경을 하는 것은 1961년 이후 59년 만의 일이다. 그만큼 현 상황이 절박하다는 의미다. 여기까진 크게 이견이 없을 테다. 문제는 방법과 수준이다. 재난이 불러온 초유의 위기에 정부는 국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경제 먼저’와 ‘방역 우선’ 사이에서 전문가들의 수많은 진단과 처방이 엇갈린다. 가계와 기업 중 어디에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효과적일까. 또 정부는 국민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실직과 매출 감소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져야 ‘책임 있는 정부’일까. 그 의사 결정은 누가 (해야) 할까. 국민일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선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인 정치인이 한다. 방역 전문가와 보건 전문가, 경제 전문가, 관료 등의 의견을 종합하고 국민의 뜻을 수렴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정치인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치적 책임을 무한대로 지는 게 정치인의 숙명이다. 

 

지원 규모·지급 방식 변화, 설명 충분했을까

정부는 왜 ‘2차 재난지원금’이라는 말에 난색을 표시할까. 보편 지급이 선별 지급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테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원 규모 자체가 줄어들었다. 언론이 ‘1차 재난지원금’이라 부르는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총예산은 14조2448억원이었다. 이번엔 액수가 7조8000억원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규모다. 과연 적정한 수준일까. 논쟁이 있다. 피해가 큰 업종과 계층에 집중해 최대한 두텁게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정작 저소득층 생계지원 용도로는 4000억원의 예산만 편성됐다. 과연 충분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9월7일 “현실적으로 재정상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직도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건너는 중이고 그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는 상황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며 “피해 맞춤형 재난지원은 여러 가지 상황과 형편을 감안해 한정된 재원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솔직한 발언이다. 하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보편-선별 지원 방식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당·정·청은 선별 지급으로 변경된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국민에게 더 소상히 설명하고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했다. ‘2차 재난지원금’에 대해 ‘전 국민 지급(40.5%)’이 ‘선별 지급(36.1%)’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설 만큼(리얼미터 8월25일 여론조사) 전 국민 지급 지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또 1차 재난지원금에 대해 국민의 긍정적 반응은 꽤 컸다. 난생 ‘처음 보는 돈(소설가 김훈 표현)’을 보며 국가의 효용과 공동체를 느꼈다는 국민에게 왜 이번엔 달라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이 돼야 했다. 

국민은 혼란스러웠다. 빠듯한 재원을 고려해 더 어려운 계층에 돈을 두텁게 몰아주자면서 대부분의 국민에게 2만원씩 주는 통신비 지원은 서로 배치돼 보였다. ‘돈을 주겠다’는 정책임에도 욕을 먹었다. 그만큼 정책 수용성이 낮은 안(案)이었지만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설득 과정은 국민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실장 등이 나서 방어에 급급한 모습만 보였다. 

왜 문 대통령은 국민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았을까. 이런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는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 같은 ‘짧은 일방 소통’보다는 담화나 기자회견 같은 ‘긴 양방향 소통’을 할 수는 없었을까. 지난 몇 주간의 논쟁은 과연 건강하고 생산적이었을까. 사전 정지작업이 됐다면 ‘가르마’가 타지지 않았을까.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머니투데이 기고에서 이런 상황에서 정치와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대목을 짚었다. 김 교수는 “사회통합은 대통령의 정치력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정치 본연의 영역”이라면서 “국가가 갖는 첫 번째 성격에서 중요한 사회통합 요소는 시민들이 이익을 다투는 과정에 모든 참가자가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국가의 두 번째 성격에서 중요한 사회통합 요소는 모두가 동의할 만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시민들이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는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국민들은 ‘모든 참가자가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제공됐다고 느낄까. 또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는 하나의 정체성’을 느낄까. 아쉬운 대목이다. 

제1야당 정체성 의심케 한 김종인 ‘돈맛’ 발언

아쉬운 대목은 제1야당에서도 나왔다. “국민은 한 번 정부의 돈에 맛을 들이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이 바로 그렇다. 김 위원장 말대로라면 앞으로 다가올 위기 상황에 국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치는, 정당은 무얼 할 수 있을까. 이 말대로라면 제1야당은 죽기 살기로 재난지원금을 계속 막아야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더 뼈아픈 대목은 국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발언이라는 점이다. 같은 당 내에서조차 “시대착오적 인식” “봉건주의적 사고”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리고 이 발언은 김 위원장이 주창하는 기본소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제1야당의 기본소득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진의를 알 수가 없게 된다. 

재난지원금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 앞엔 ‘죽고 사는’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가 동시에 닥쳤다. 국가의 수호자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지금 우리에게 넘치는 것은 정치셈법이고 빠진 것은 진짜 정치다. 정치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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