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에는 어떤 풍수적 의미가 있을까
  • 박재락 국풍환경설계연구소장∙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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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벌초 대행 많지만…가문의 뿌리 외면 말아야

우리나라는 약 7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서 발원한 계류수가 맑은 물길을 이루기에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 했다. 산의 대부분은 소나무 숲을 이루어 음이온인 피톤치드를 분출시키고 좋은 생기를 품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선현들은 고향의 주산으로 삼았으며 이곳 정기를 받는 용맥이 혈(穴)을 이룬 곳을 세장지(世葬地)로 택했다. 또한 풍수지리적으로 부(富)·귀(貴)·손(孫)의 발복이 후손에게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좌향(坐向)을 정해 조상을 정성껏 모셨다. 따라서 지금의 고향과 선영(先塋)은 바로 자신의 뿌리가 발아된 곳이자 조상과 동기감응(同氣感應)을 받을 수 있도록 만남의 공간이 된 것이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선영을 찾아 벌초(伐草)하고 성묘(省墓)를 하는 것이 우리민족의 전통관습이다. 벌초란 무덤의 잡초를 깨끗이 벤다는 뜻이고, 성묘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 할아버지·아버지 세대는 고향을 지키면서 틈날 때마다 선영을 돌보곤 했다. 그러나 도외지로 나간 자식들은 자주 고향을 찾을 기회가 쉽지 않은지라 일 년에 한번쯤 추석 전에 날을 잡아 내려와 벌초를 했다. 벌초가 고향지킴이인 집안 분들의 몫이였다면, 성묘는 고향을 떠나 있던 자식이 이때쯤 와서 조상에게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객들이 벌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을 앞두고 성묘객들이 벌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을 앞두고, 올 초부터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의 방역차원에서 정부는 언론을 통해 벌초를 대행업체에 맡기도록 권장하고 있다. 급기야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단감염에 노출된다며 고향 찾아 떠나는 민족의 대이동도 자제시키려는 분위기다. 반대로 서원·사찰·왕릉 등이 자연과 가까이 입지하고 있는 지자체는 가족 간의 문화공간을 갖도록 유혹한다. 아울러 명산과 함께 조성된 숲길과 그곳에 입지한 자연휴양림이 밀폐된 도시공간을 떠나 자연의 기를 온전히 받을 수 있는 힐링과 웰빙이 중요한 것이라고 추천한다. 정부는 대승적 국민방역을,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염두에 둔 이동을 권하는 현실이다.

사실 고향 선영의 벌초는 사회적 거리두기와는 무관한 것이라 본다. 집단감염은 각자의 이익된 계산 하에 모이는 것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다. 산 사람과의 만남은 과학적 기구를 통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향과 선영공간은 후손들이 조상의 체취를 느끼고 정신적 교감을 바탕으로 효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차원이 남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다는 핑계로 남의 손을 빌려, BEFORE 와 AFTER의 전송된 사진으로 벌초를 하는 지금이다. 조상을 헌신짝 버리듯 외면하는 형국인데, 이젠 공공연히 자리 잡혀 가는 현실인지라 속수무책이다. 가문의 뿌리를 외면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인지를 왜 모른단 말인가. 

옛말에 ‘굴러온 복도 찬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평상시 하던 대로 하면 발복이 늘상 가까이 있게 마련이지만 주변을 의식하고 부화뇌동한다면 다가오던 복도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라도 즐겁게 해야 복이 오듯이 귀찮다고 여기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누구나 고향 선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문의 선영이 있는 곳은 전체의 5% 내외였다.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도 선조들의 공간인 선영에서 분출되는 좋은 기가 적잖게 작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물학적 유전법칙(遺傳法則)에 의하면 자식은 부모로부터 각각 23개의 염색체를 가져오는 것으로 밝혀졌듯이 가문의 지속성은 조상의 혈통에 기인한다. 함부로 남의 손을 빌려 벌초를 하면 안 되는 이유다.

 

봉분 훼손 막고 발복 지키는 벌초 방법

다음은 선영공간을 벌초할 때나 성묘할 때 발복과 연관된 지표다. 첫째, 멧돼지에 의해 봉분이 훼손되었다면 주변의 흙으로 보토(補土)를 한 뒤 멧돼지가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는 일명 좀약 나프탈렌을 주변에 뿌려 놓아 접근을 막도록 한다. 계속 방치하면 벌레나 동물 등이 봉분 속 관속에 들어가 시신을 훼손시킬 수 있다. 둘째, 봉분을 비롯해 묘역주변에 일명 꿀밤나무라 불리는 상수리나무와 아카시아가 있으면 베지 말고 뿌리 채 뽑아야 한다. 이 식물들은 흙의 공극을 넓혀 광중에 물길이 스며들도록 하고, 묘역공간을 늘 습한 상태로 만든다. 후손들에게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을 더 많게 한다.

셋째, 상석 앞의 제례 공간이 내려앉았거나, 묘역공간의 일부 모서리가 허물어진 곳은 벌초한 풀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쌓아 균형을 맞추도록 한다. 쌓아둔 비보물은 후에 부토(腐土)로 변해 보완을 하게 된다. 만약 그 상태로 놔두면 바람 길을 형성하여 훼손이 더해지고 나아가 생기도 빠져나가는 형국이기에 후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현대에 와서 장례문화가 바뀌고 있다. 도시 인근의 공원묘지나 납골당시설을 많이 이용하는 추세다. 이곳은 고향선영처럼 벌초가 필요 없기에 생각날 때마다 자주 방문하는 것이 발복의 단초가 된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올라가 천기(天氣)를 받고 백(魄)은 땅속에서 지기(地氣)를 받는다. 이러한 혼백은 시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후손이 방문할 때마다 매번 발복을 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고향 선영의 벌초와 성묘는 봄·가을로 1년에 두 번 이상 해야 하고, 공원묘역은 최소한 분기별로 한 번씩, 1년에 네 번쯤은 찾아야 한다. 근래 들어 문중마다 고향의 선영 관리에 걱정이 많다. 당대 부모 세대는 어떻게든 해 나가지만 자식 세대는 못 할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서 뿔뿔이 흩어진 선영을 한 곳으로 이장해 평장을 한다거나 공동 납골터를 조성하는 추세다. 자식들의 짐을 덜고 그나마 지속적으로 선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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