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주째 고공행진…전셋값 어디까지 오를까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rke@sisajournal-e.com)
  • 승인 2020.10.07 09:30
  • 호수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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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인 보호 위한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되레 매물 씨 말라

지난 9월19일, 서울 서대문구 DMC센트럴 아이파크 전용 84㎡는 8억원에 전세계약이 성사됐다. 불과 50일 전인 7월30일 동일 평형 동일 층수의 매물이 5억8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견줘보면 2억2000만원이나 훌쩍 뛰어버린 셈이다. 인근 DMC파크뷰자이는 물론 이 일대 다른 단지도 전세보증금이 비슷한 시기에 ‘억’ 소리 나게 치솟았다. 서초구 반포동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반포 미도아파트 전용 84㎡가 지난달 초 5억6000만원에 임대차계약을 맺었는데, 이달 들어서는 동일 조건의 매물이 7억원에 계약되면서 약 40일 만에 1억5000만원 가까이 껑충 뛰었다.

이처럼 강남·강북 할 것 없이 주택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은 신축 아파트나 학군이 우수한 동네를 중심으로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 전셋값 상승 추이는 지난해 5월 이후부터 서울과 수도권에서 줄곧 이어져온 현상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임차인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보증금이 치솟다 보니 주거안정을 해치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에서 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9월7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서울에서 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9월7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50일 만에 2억 넘게 오른 곳도

실제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가 9월14일 서울에서 총 1000가구 이상인 261개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9개 단지의 전세 물건이 0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은 116개 단지 가운데 14개 단지, 경기는 457개 단지 가운데 41개 단지가 전세 물건이 0개였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뛰며 임대차 시장의 패턴이 전세에서 반전세 또는 월세 위주로 돌아서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전세보증금으로 받은 돈을 은행에 예금해 둬도 큰 수익이 나지 않으니 반전세 또는 월세로 돌려버린 것이다. 반면에 임차인들은 같은 이유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게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는 것보다 자금 부담이 적으니 전세시장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며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의 미스매칭이 현재의 전세가격 장기 상승을 불러왔다. 결국 부동산 거래가 가장 활발한 시기인 가을 이사철임에도 매물이 적어 전세 거래량도 대폭 감소하고 있다. 서울 전세 거래량은 6월 1만1184건에서 7월 1만144건, 8월 6271건, 9월 1507건(9월21일 기준)으로 감소폭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전세가격이 오르면서 서울 외곽지역과 경기권 일부에서는 가파르게 상승한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추월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마에스트로캠퍼스타운 아파트 전용면적 14.49㎡는 8월4일 1억85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는데, 열흘 뒤 같은 면적, 같은 층의 아파트가 1억5500만원에 매매됐다. 매매가격이 전셋값보다 3000만원 낮은 것이다. 이 외에도 강동구 길동 ‘강동렘브란트’, 금천구 가산동 ‘비즈트위트바이올렛5차’, 구로구 구로동 ‘비즈트위트그린’, 관악구 신림동 ‘보라매해담채’ 등과 용인 처인구 남사면 ‘e편한세상 용인한숲시티’ 등의 전세계약이 매매계약보다 높은 값에 체결되며 깡통전세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 전세시장 불안정이 더욱 확산하는 것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부작용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해 임대차보호법 시행을 추진했고, 지난 7월30일 계약갱신청구권제(2+2년)와 전월세상한제(5%이내)를 도입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같은 달 31일부터 시행 중이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으로 4년간 전세금을 시세만큼 올릴 수 없다는 판단에 전세 호가를 높여 매물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전세 매물이 감소한 것도 정부 대책의 영향이다. 실거주를 해야 세금 혜택을 주는 양도세 비과세 요건 정책과 재건축 조합원의 경우 2년 이상 실거주해야 추후 신축 아파트 입주권을 부여하는 등 새로운 정책 등으로 실거주하는 집주인이 대거 늘어나며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다.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도 계속 상승

정부가 공급 활성화 대책 차원에서 내놓은 3기 신도시도 임대차 시장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3기 신도시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선 무주택자 요건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임대차 시장에 머무르며 전세로 눌러앉겠다는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이 밖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한 것도 영향을 줬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르는 사람에게 전셋집 보여주기를 꺼리고 결국 재계약 위주로 전세시장이 재편됐기 때문이다.

매물 감소가 임대차 2법 시행, 3기 신도시 청약 대기 수요와 맞물리면서 시장의 불안을 자극하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마포구에서 전세로 거주 중인 40대 B씨는 “자녀 교육 문제로 내년 초 잠실로 이사를 계획 중인데 전세 매물이 너무 없어 초조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전세난이 가중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3기 신도시의 실제 입주 시기는 빨라야 2025년 이후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토지보상이나 조성 절차가 지연되면 더 미뤄질 수도 있다. 이미 서울에서는 대규모로 공급할 땅 자체가 없고, 지자체장까지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도 각종 규제에 원활치 않은 상황이다. 단기간에 주택 공급을 늘릴 방안이 없는 셈이다.

시장의 전망은 수치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올 하반기 들어 지속적인 상승세다. 지난 6월 평균 109.0을 기록했던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8월 117.5로 치솟았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이 넘을수록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가을 이사철까지 겹치면 이 수치가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 입주물량이 연평균 3만~4만 가구에서 올해 1만 가구 정도로 줄었고 3기 신도시 대기수요 증가 등으로 전세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114 관계자도 “9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는 가을 이사 수요를 고려하면 올해 전세가격은 당분간 고공행진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지난해 가을에 기록했던 전세 상승률(1.29%)보다는 상승세가 클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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