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첫 국감에 불려나온 회장님은 누구?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10.09 09:00
  • 호수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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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배·서정진·조현범 등 증인 채택…코로나 영향으로 대기업 총수 소환은 줄어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 풍경은 이전과 달라졌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장 참석 인원을 50명 이하로 제한하고, 증인·참고인도 영상으로 만나는 방식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증인 채택 규모가 이전에 비해 축소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살리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기업인들에 대한 증인 신청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올해 국감에선 매년 되풀이되던 대기업 총수의 증인 출석 행렬은 연출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당초에는 재벌가 총수 대거 출석 예고

당초 이번 국감에는 재벌가 총수들의 출석이 대거 예상돼 왔다. 가장 많은 총수 소환을 염두에 뒀던 상임위는 다름 아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다. 농해수위 소속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과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은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두 의원이 5대 그룹 총수에 대해 증인 신청을 한 이유는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때문이었다. 상생기금은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피해를 본 농어촌을 위해 만들어졌다. FTA로 혜택을 받는 기업들이 농어촌 상생기금을 출연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기업들이 출연하지 않자 농해수위는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불러왔다.

그러나 여야 합의 과정에서 5대 그룹 총수 소환은 최종 결렬됐다. 대신 부사장이나 전무로 급을 낮췄다. 5대 그룹 총수 대신 국감장에 소환된 건 주은기 삼성전자 부사장, 양진모 현대자동차 부사장, 강동수 SK 부사장, 전명우 LG전자 부사장, 임성복 롯데그룹 전무 등이다. 농수산위는 이 밖에도 유병옥 포스코 부사장과 이강만 한화 부사장, 여운주 GS 부사장, 조영철 한국조선해양 부사장, 형태준 이마트 부사장 등도 증인으로 신청했다.

5대 그룹 총수 외에 포털업계 양대산맥인 네이버의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GIO)과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도 국감 증인으로 거론됐다. 이 GIO의 경우 이번 국감의 최대 화두로 부상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이슈에 얽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추 장관의 아들 군 복무 시절 특혜 휴가 의혹과 맞물려 불거진 포털 검색 조작 의혹과 관련해 이 GIO의 증인 소환을 추진한 것이다. 네이버가 추 장관의 뉴스 소비 빈도를 낮추기 위해 뉴스와 실시간 검색 카테고리를 하단에 배치하고, 추미애를 영문 자판 상태에서 입력할 경우 한글 자동검색 결과가 보이지 않도록 검색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 의혹의 주된 내용이다.

김 의장은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포털 탄압 논란과 관련해 소환이 추진됐다. 윤 의원은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연설 기사가 다음 첫 화면에 노출된 반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기사는 배치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카카오톡 들어오라고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물의를 빚었다. 카카오를 압박해 포털을 조작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GIO와 김 의장의 국감 증인 신청은 여당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이번 국감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금융권 수장들의 증인 출석도 성사되지 않았다. 당초 이번 국감에는 사모펀드 부실 판매 사태에 얽힌 금융지주 회장들 전원이 국감 증인으로 불려올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발표한 올해 정무위 국감 주요 이슈로 사모펀드 문제를 제시한 바 있다.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과 라임펀드 문제에 이어 올해 디스커버리, 옵티머스, 헬스케어 펀드 등이 문제가 됐다.

여기엔 4대 금융지주 산하 은행과 증권사가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이에 정무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사모펀드 비리 의혹과 관련해 4대 금융지주 회장 등을 모두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증인대에 서는 것을 피했다. 대신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오익근 대신증권 대표, 박성호 하나은행 부행장 등이 사모펀드 관련 증인으로 채택됐다.

 

갑질 이슈로 증인 채택된 총수들

그러나 모든 대기업 총수가 국감장 출석을 피한 건 아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과 조현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사장은 ‘갑질’ 이슈로 국감 증인대에 서게 됐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로드숍 아리따움·이니스프리 가맹점주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본사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가맹점 공급가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거나, 온라인 전용관을 통해 가맹점에서 살 수 없는 제품을 출시해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맹점주들은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에서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테스트하는 장소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가맹점주들은 올해 3월 ‘화장품가맹점연합회’를 발족하며 반발했지만 결국 협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서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도 아모레퍼시픽과 가맹점주들의 협의는 논의되지 못할 전망이다. 서 회장이 정무위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열 및 전신근육통’을 불출석 이유로 들었다.

조현범 사장은 그룹 계열사인 한국아트라스BX의 갑질 논란과 관련해 증인 신청됐다. 피해를 호소하는 한성인텍은 한국아트라스BX가 10년에 걸쳐 납품단가 인상을 막고 약속했던 물량도 지키지 않아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한국아트라스BX의 권유로 산업용 배터리 부품 사업에 진출하고, 자동차 배터리 부품 납품을 약속받아 신규 투자까지 단행했지만 단가 인상 거부 등 갑질로 결국 공장 문을 닫게 됐다는 것이다.

이번 국감 소환으로 조 사장은 설상가상의 처지에 놓였다. 조 사장은 최근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부친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으로부터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을 넘겨받은 데 대해 누나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과 형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 사장은 비리 관련 재판도 받고 있다. 협력업체로부터 납품 대가로 뒷돈을 받은 혐의와 관련해서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보건복지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코로나19 치료제 1상 결과 임의 발표와 관련해서다. 셀트리온은 올해 7월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와 국책 과제로 개발 중인 코로나19 항체치료제 ‘CT-P59’ 임상 1상에 돌입하고, 두 달여 뒤인 9월11일 안전성이 확인됐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방역 당국은 발표 직전인 9월8일 정례 브리핑에서 “9월 중 상업용 항체치료제 대량생산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상업용 항체치료제 대량생산’이라는 표현이 치료제 출시라는 의미로 와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셀트리온 주가 띄우기라는 지적마저 나왔다. 이에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서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 채택됐다. 그러나 백 의원은 최근 서 회장의 증인 채택 철회서를 제출했다. 증인 채택 최소화 기조에 동참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재계, 증인 최소화 기조에 반색

재계는 이번 국감의 증인 최소화 기조를 반기는 눈치다. 그동안 매번 국감장에는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불려나갔다. 그러나 현안에 대한 내실 있는 질의가 이뤄지기보다 호통을 치거나 망신을 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말을 가로채거나 훈계하는 식의 질의도 빈번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의원들이 인지도 상승을 목적으로 기업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관행이 계속되자 2017년부터 ‘국정감사 증인 신청 실명제’가 도입됐다. 증인 신청 때 이유를 명확히 해 책임성을 높이고 무리한 증인 신청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구태는 사라지지 않았고, 재계에서는 의원들의 기업인 증인 신청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 기업 대관(對官) 관계자는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국정에 대한 감사여야 하는데 그동안 기업 감사로 변질돼 온 측면이 적지 않다”며 “정치권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관여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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