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1위 윤석열, ‘국민검사’ 바람 타고 정치할까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3 13:00
  • 호수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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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정치에 대한 관심…뛰어난 정무 감각도”
대선판 출렁, 여야 계산 복잡해져

#1 “오마이뉴스에서 주초 여론조사 결과 발표예정. 윤석열 23.5% 1위. 가중치 조정해서 17~18% 정도로 언론공표지침. BH(청와대 지칭)엔 실제수치 전달, 휴일임에도 국정상황실과 민주연구원 담당자 회동, 상당히 충격적 수치”. 11월2일 국회 출입기자들에게는 이러한 내용의 카카오톡 문자가 돌았다. 20여 분 후 “오마이뉴스에서 아니라고 (대답했으며 이러한 보도에) 대응 준비 중”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돌면서 이날 일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참고로 같은 날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조사해 발표한 10월 정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율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이상 21.5%)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17.2%를 기록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2 덕성·서연(이상 코스피)·대영포장·서연탑메탈·아이크래프트·이그잭스(이하 코스닥)의 공통점은? 이들은 최근 주식시장에서 ‘윤석열 테마주’로 분류되는 기업이다. 이들 회사에 재직 중인 임원들은 윤 총장이 나온 서울 법대를 졸업했거나 사업연수원 동기다. ‘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한결같이 “윤석열 총장은 당사와 사업 관련 내용이 전혀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답변했다. ‘윤석열 테마주’가 생겨난 것 자체가 ‘윤석열 열풍’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풍랑이 몰아치면 바람의 중심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요사이 정치권이 바라보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모습이 딱 그렇다. 최근 윤 총장의 발언을 보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간 정치권에선 윤 총장의 발언을 내부 결속용으로 보는 측면이 많았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갈등을 벌인 가운데 8월3일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그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 배격”이라고 밝힌 것이 좋은 예다. 여러 정치적인 해석을 낳을 수 있지만, 자리의 성격 등을 감안할 때 내부 단속을 챙기기 위한 발언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런데 10월23일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것은 좀 성격이 다르다.

정치권에선 검찰 개혁과 권력형 비리 척결을 놓고 여권과 갈등하고 있는 윤 총장을 야권의 잠재적인 대선주자로 본다. 급기야 11월7~9일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총장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4.7%로 여권의 이 대표(22.2%)와 이 지사(18.4%)를 처음으로 제쳤다(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反文 정서 타고 지지율 상승…국민의힘 주자들은 하락

매달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을 조사하는 리얼미터 통계를 보면 윤 총장의 지지율 흐름이 좀 더 명확하게 나온다. 10월말 조사에서 윤 총장은 야권 대선주자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안철수·오세훈·원희룡·황교안 등 다른 야권 대선주자들이 2~4%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윤 총장의 대선 지지율은 6월 10.1%를 기록하더니, 13.8%(7월), 11.1%(8월), 10.5%(9월), 17.2%(10월)로 등락을 거듭했지만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윤 총장의 지지층 ‘반문(反文)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윤 총장 지지율은 국민의힘 지지자(38.85%)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매우 잘못 이끌고 있다고 답한 적극적 부정층(37.2%)에서 특히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윤 총장의 지지층을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은 ‘전통적 보수’로 한정 짓긴 힘들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야권주자로는 유일하게 두 자릿수를 기록한 올 3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황 전 대표의 경우 자신의 정치 성향이 보수(43.8%)라고 답한 지지층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았다.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의 지지층은 16.8%에 불과했다. 반면 윤 총장의 10월 지지율을 보면 보수(26.8%)와 중도(20.7%)의 비중이 엇비슷하다. 중도층에서 윤 총장의 지지율은 이낙연 대표(20.5%)와 이재명 지사(20.4%)를 근소하게나마 앞섰다. 여권이 그토록 원하던 중도진영에서 표를 확장시킬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윤 총장의 입에서 ‘공정’과 ‘정의’가 나오자 대중은 환호하는 모습이다. 그가 주장하는 공정과 정의는 우리 시대 세대와 직업 등을 모두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10월 리얼미터 조사에서 자영업자 응답자 중 가장 많은 22.3%가 윤 총장 지지를 밝힌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같은 기간 문화일보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키워드로 일자리(19.2%)와 국민통합(15.9%) 다음으로 공정(14.6%)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현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복지와 분배(12.3%)보다도 높은 수치다.

그간 정치 도전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대검은 “언론이 너무 앞서 나간다”는 입장이었다. 윤 총장을 후보로 놓고 여론조사를 벌이자 해당 여론조사기관에 공개적으로 조사 대상에서 빼줄 것을 요청한 것도 이러한 여론의 부담감 때문이다. 현재 대검이나 윤 총장 주변에선 일련의 발언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임기 완주에 대한 윤 총장의 의지도 확고하다. 윤 총장은 법사위 국감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임기를 마무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윤 총장의 공식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선판이 깔린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의 정치 도전이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간 언론에 비친 윤 총장의 이미지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좌충우돌’식 특수통 검사다. 최근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쏟아놓는 게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그와 10년 가까이 알고 지냈다는 한 여권 중진 정치인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평검사 시절 ‘서울 법대 후배’라면서 전화를 걸어와 만났는데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이후에도 종종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여러 정치 현안을 주제로 이야기하곤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당장 정치판에 뛰어들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정무 감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권 인사 “尹, 정치할 수 있겠구나 생각도”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지사를 비롯해 여권의 견제도 본격화됐다.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해 소속 의원들은 언론과 만날 때마다 “현직 검찰총장이 정부에 부담을 주는 발언을 해선 안 된다. 그럴 거면 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윤 총장의 부상을 반기는 모습이다. 윤 총장이 말하는 ‘공정’은 여권을 상대로 불공정 프레임을 만들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초기만 해도 그런 모습이 뚜렷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류가 다소 달라지는 모습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총장이 뜰수록 여권보다 야권의 대선주자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여러 대선주자가 경쟁을 벌여 국민적 관심을 높여야 하는데 윤 총장만 독주하면 경쟁이 힘들다”고 우려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지지율은 6.5%(9월)에서 4.9%(10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4.0%→3.6%,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3.6%→3.3%로 하락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만 2.5%에서 4.7%로 소폭 올랐을 뿐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1월6일 국회에서 열린 특강 후 윤 총장의 대선주자 부상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어떻게 윤석열 총장을 야권의 대선후보라고 그러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실 도전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검찰 출신인 김경진 전 민생당 의원은 “검찰을 나오면 ‘검사 물’ 빠지는 데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한 분야를 깊숙하게 파는 검사 업무와 폭넓은 이해가 필요한 정치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검찰 주변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치를 바라보는 윤 총장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윤 총장과 가까운 한 법조인은 “윤 총장이 ‘정치가 이대로 가선 안 된다’는 생각을 조금씩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정리되면 경우에 따라 도전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코멘트한 여당 원로급 인사도 “지난해 통화할 때 ‘총장 끝나면 뭐 할 거냐’고 물었는데 그러더라. 부인이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 고문 같은 것 하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 무료 법률 봉사나 하라’ 했다고. 대검 국감에서 ‘국민을 위한 봉사’를 언급할 때 난 그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요즘 발언을 보면 ‘정치를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행보에 대해 여권은 표면적으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내심 ‘나쁘지 않은 카드’라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내 한 전략통 의원은 “국가는 윤 총장이 내건 ‘정의’로만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윤 총장 주변이 깨끗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 환상이 깨질 경우 지금의 지지율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전 대표가 정치권 입문 후 혹독한 신고식을 경험한 것이 좋은 예라는 것이다. 중견 로펌 대표변호사도 “검찰 출신 인사는 상명하복에 익숙한, 다시 말해 사고가 경직된 측면이 많다. 어떤 면에선 군인보다 더하다. 그만큼 정치 도전이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여권이 특활비 내역을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나선 것도 ‘윤 총장 흠집 내기’ 의도가 짙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특활비에서 자유로운 이가 많지 않다”면서 “윤 총장의 부상은 국민의힘에 큰 악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인이 운영하는 전시기획사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이 수사에 들어간 것도 윤 총장 주변 인사들의 도덕성을 건드리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되레 여권 내부에선 윤 총장을 향한 공세가 윤 총장의 주가만 높여주는 꼴이라고 우려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사자(윤 총장)는 우리 안에 있을 때 안전한 법”이라면서 “윤 총장을 반강제로 끌어내리면 윤 총장에게 정치적 박해 이미지만 키워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의 지지율이 크게 오른 것도 추미애 장관과의 갈등이 고조된 것과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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