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원 배지 달고 워싱턴 간 ‘순자’와 ‘은주’ 그리고 '영옥'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6 11:00
  • 호수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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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 앤디 김까지, 하원의원 선거에서 한국계 후보 역대 최다 당선

이번 미국 대선에선 또 하나의 작지만 큰 기록이 나왔다. 연방 하원 435명 중 4명. 역대 가장 많은 한국계 의원이 미 하원 의회에 진출한 것이다. 1992년 제이 김(김창준) 공화당 의원이 최초로 당선된 이래 하원 내 한국계 의원은 이제껏 1명을 초과한 적이 없었다. 1998년 제이 김이 은퇴한 후 20년 만인 2018년, 이민 2세대인 앤디 김(민주당·뉴저지주)이 당선돼 홀로 맥을 이어왔다. 이번 선거에선 당초 총 5명의 한국계 도전자 중 2~3명 남짓의 당선을 점쳤던 한인유권자협회 예상마저 넘어서면서 180만 교민사회는 한층 고무된 분위기다.

ⓒEPA·AP 연합
ⓒEPA·AP 연합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앤디 김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230년 미 의회 역사상 첫 한국계 ‘여성’ 의원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당선이 확정된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당·워싱턴주)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주한미군이던 아버지의 전보로 워싱턴주 타코마에 정착한 이민 1세대다. 이곳에서 시의원·시장을 거치며 그는 합리적 성향으로 한인사회를 넘어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메릴린은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 ‘순자’를 늘 강조하며 한국인 정체성을 드러내왔다. 선거운동 홈페이지에도 “서울에서 태어났고, 첫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될 것”이라는 소개 문구를 내걸었다. 당선 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인 어머니가 겪은 차별이 모두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이어 의회 입성이 확정된 미셸 박 스틸(공화당·캘리포니아주)은 진작 한인사회에서 ‘선거의 여왕’으로 불려온 인물이다. 한인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국 위원과 도지사 격인 오렌지카운티 감독관까지 역임했다. 캘리포니아주 선출직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승리했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스틸은 한국 이름 ‘박은주’로 20년을 살다가 1975년 가족과 미국으로 이주했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는 1992년 4·29 LA 폭동 사태 당시 한인타운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한인들이 언론으로부터 비난받는 모습을 보며 정계 입문을 결심했다.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의장을 지낸 남편 숀 스틸 변호사의 도움이 컸다. 미셸은 이번 당선 기자회견에서도 “2·3세 한인 정치인이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개표 99%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초접전을 벌인 끝에 승리한 영 김(공화당·캘리포니아주)은 2년 전 당선이 유력시되다가 우편투표에서 역전돼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다. 한국이름 ‘김영옥’의 그는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미국 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민 1.5세대로,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재무분석가·의류 사업가 등으로 일하던 영은 남편의 지인이자 친한파 에드 로이스 공화당 의원의 보좌관을 맡으며 정치를 시작했다. 한인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한미의원연맹 활동을 통해 한국 정계 인맥을 쌓는 등 폭넓은 행보를 보여왔다. 보좌관 시절부터 위안부·독도 문제에 관여해 온 그는 북한 인권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인사회 위상 높여…‘한국 대변’ 등 지나친 기대는 무리”

한국계 의원들의 당선으로 인해 미국 내 한인사회의 정치력과 영향력이 한층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뿌리가 한국일 뿐, 이들 모두 미국인 정체성이 더 짙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이 미국에서 한국을 정치적으로 크게 도와줄 것으로 지나치게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들이 한·미 관계에서 가교 역할을 해 줄 순 있다. 교민들의 이해는 대변해 주겠지만 한·미 관계에서 한국을 늘 우호적으로만 볼 거라고 기대하는 건 조심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 한국계 정치인이 이번에도 상원 의회엔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 또한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박 교수는 “상원이 좀 더 대외 정책을 주도하기 때문에 더욱 영향력 있게 목소리가 퍼질 수 있었겠지만, 아직 마이너리티가 진출하기엔 여전히 상원의 벽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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