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서면서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는 딜레마에 빠지는 듯한 모습이다. 윤 총장의 정치적 부상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폭주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냐, 검찰을 정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법치주의의 후퇴냐, 두 가지 답안을 놓고 혼란스럽다.
10월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 말미에 윤 총장의 발언이 숙제를 던졌다. 퇴임 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담은 그의 답변은 우선 사퇴와 해임, 수사와 감찰 압박에 내몰리고 있는 현재 상황과 맞물려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윤 총장을 오래 지켜봐온 일부 검찰 출신 인사 사이에서는 윤 총장이 결국 정치에 대한 뜻을 굳히고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기류가 읽힌다. 윤 총장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검찰 간부는 “입 밖으로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총장이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 보는 사람이 상당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정무 감각이 뛰어난 분이기 때문에 총장 퇴임과 정치 일정을 고려해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계 오랜 불문율 “검찰총장은 정치 안 한다”
정치를 작심했다기보다는 최대한 여론의 지지를 방패막이 삼아 정권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휘하려는 승부수란 의견도 있다. 윤 총장이 내년 7월까지 임기를 지키겠다고 말했지만 연말을 넘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윤 총장이 국감에서 할 말은 다 했다고 본다”며 “퇴임 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긴 것은 정말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단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선 검찰총장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식물총장’으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정무 감각을 발휘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법조계의 오랜 불문율이다. 외풍으로부터 검찰 조직을 지켜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검찰총장이 퇴임 후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가 윤 총장의 정치 참여 가능성에 반신반의하는 이유는 결국 윤 총장의 정치가 ‘검찰총장의 정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 때문이다.
반면 보수 성향이 짙은 법조계 인사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먼저 깬 쪽은 문재인 정부고 법치주의의 훼손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심각하다는 위기감이 크다는 것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 정권의 법치주의 파괴가 너무 심하다 보니 정권 교체를 통해 이를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윤 총장이 대선에 나서는 것을 정당화하는 법조인도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검찰 내부에선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윤 총장 체제하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인사 파동을 몇 번씩 겪으며 검찰이 정치 한가운데 서게 된 상황 자체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검찰을 떠난 한 전직 검사장급 간부는 “문재인 정부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만들고 윤 총장과 ‘윤석열 사단’을 주요 수사 대상으로 공언하면서 검찰이 보복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윤 총장이 정치를 하게 되면 검찰 조직의 갈등이 계속될 공산이 크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윤 총장이 정치권으로 진입했을 때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아직까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현재 윤 총장의 지지층은 야권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데 앞서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사례와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황 전 대표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한 갖가지 시나리오들이 나돌고 있다.
그중 하나가 윤 총장의 외부 태스크포스팀(TFT)이 만들어져 ‘제3지대’에서 세(勢)를 형성해 야권 통합 후 대선에 나설 것이란 시나리오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정책 등에 실망해 비판의 목소리를 활발하게 내고 있는 진보진영 인사들의 이름들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과 가까운 법조계 인사들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다르다. 외부 TFT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도 윤 총장의 외부 TFT라는 것 자체가 국민의당 쪽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아직 검찰 내 ‘특수통’ 출신 참모들과 법조계 인맥들이 윤 총장에게 정치적 조언을 주로 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중 첫 번째로 꼽히는 인물은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다. ‘적폐 수사’ ‘조국 수사’ 등 윤 총장의 선봉장에서 ‘검언 유착’ 의혹으로 수사까지 받게 되며 윤 총장과 ‘정치적 공동체’가 됐다는 것이다. 약 두 달 전 윤 총장과 절친한 한 법조인이 윤 총장에게 정치에 나설 뜻이 정말 있느냐고 물었을 때 윤 총장이 “정치는 한동훈이 해야지”라고 답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 검사장에 대한 윤 총장의 신뢰가 깊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는 게 이 법조인의 설명이었다.
한동훈·이원석 검사장이 핵심 참모…조상준 전 검사도 주목
이원석 수원지검 차장검사(검사장)도 윤 총장의 핵심 참모로서 윤 총장이 정치를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로 할 인사로 꼽힌다. 이 검사장은 윤 총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되자마자 비서실장 격인 대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는데 사실상 ‘추미애 라인’ 검사장들에 포위돼 ‘나홀로’ 국감에 나서야 했던 윤 총장은 국감 직전 이 검사장을 만나 국감에 필요한 사항을 점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사단’ 중에선 유일하게 검찰을 떠난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의 역할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검찰 바깥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윤 총장의 정치 활동을 도울 수 있는 상황이란 점에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 근무 경험이 있어 이 인맥을 바탕으로 정치권 인맥을 넓혀나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전직 중에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과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이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정 전 총장은 윤 총장이 50세의 늦은 나이에 결혼했을 때 주례를 서는 등 윤 총장 부부와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에 지명될 당시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남기춘 전 지검장은 윤 총장과는 대학교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으며 검찰에서도 ‘특수통’ 계보를 함께 했다. 검찰 밖에서는 서울대 법대 동기인 서석호 김앤장 변호사와 판사 출신인 문강배 태평양 변호사 등이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