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타인은 구원이 된다…영화 《내가 죽던 날》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1 13: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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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연대에 대하여
《내가 죽던 날》이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 있는 질문들

누구에게나 울고 싶은 날이 있다. 세상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그 행복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기분. 풍파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흔들리는 나날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준다면. 그렇다면 삶은 조금 더 견딜 만해질까. 《내가 죽던 날》은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영화다. 크게 힘주지 않고 묵직하게.

ⓒ위너브라더스

소녀는 왜 사라졌나

꽤 괜찮은 인생인 줄 알았다. 경찰 에이스로 승승장구했고, 변호사 남편은 든든했다. 그런데 모든 게 거짓이었다. 남편은 오랜 시간 외도를 숨겨왔고, 진실이 탄로 나자 거짓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거짓이 소문이 되고 소문이 진실처럼 돌았다. 완벽한 줄 알았던 현수(김혜수)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힘겨운 이혼 소송 속에 복귀를 선택한 현수는 외딴섬에서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사라진 소녀의 사건을 종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소녀의 이름은 세진(노정의). 사망한 아버지가 연루된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 채택돼 경찰의 방침에 따라 홀로 섬에 보내진 소녀다. 경찰의 목적은 신변 보호지만, 이로 인해 세진은 갇힌 신세가 됐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CCTV마저 감시망처럼 세진을 압박했다. 매섭게 폭풍우가 치던 밤, 세진은 절벽에서 사라졌다. 경찰은 자살로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세진의 실종 사건 조사는 현수에게 사실 복귀를 위한 징검다리 수사에 불과했다. 처음엔 그럴 줄 알았다. 세진의 행적을 따라가며 현수는 사건에 더 깊게 빠져든다. 소녀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삶의 바닥을 경험해야 하는 이의 분노와 슬픔, 오해로 얼룩진 마음들. 현수는 삶의 밑바닥으로 떠밀린 자신의 신세를 세진에게 이입한다. 그리고 세진이 죽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진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호기심이나 정의감이 아닌, 사라진 소녀를 향한 동질감과 연민이 현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세 여성의 연대

영화는 세진의 흔적을 퍼즐 조각 맞추듯 파헤쳐 나간다. 자살로 단정하기에 모호한 심증들, 소녀를 보살피던 전직 경찰의 미심쩍은 행동, 소녀와 소녀의 새엄마 사이의 미묘한 관계, 소녀가 머무르던 집의 주인인 순천댁(이정은)의 알 수 없는 눈빛. 세진을 정말 자살한 것일까.

영화가 품은 미스터리 구조로 인해 관객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소녀가 정말 절벽에서 뛰어내렸는가에 집중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이것이 일종의 트릭 혹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즉 극적인 수사물을 기대한다면 구성의 쫀쫀함이나 숨겨둔 카드 효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영화가 관심을 두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선’이기 때문이다. 그 감정선을 그려내는 신예 박지완 감독의 내공이 상당하다. 이 영화의 감정들은 인물 밖에서 휘몰아치기보다 내부에서 뜨겁게 뭉쳐 돌아다니는데, 그 덕분에 인물들이 품은 상처와 절박함의 깊이가 더 깊게 다가온다.

영화는 연결의 끝이 없어 보이는 세 여성의 보이지 않는 연대를 사려 깊게 다룬다. 팔에 자해 흔적이 있는 현수와 역시 팔에 자해를 한 세진. 그리고 농약을 마셔 목소리를 잃어버린 순천댁. 일면식도 없이 살아오던 세 여성은 벼랑 끝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된다. 이 과정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나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다독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주는 위안이 따스하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던가. 때로 타인은 구원이 되기도 한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의 한 장면 ⓒ위너브라더스

김혜수라는 존재감

현수를 힘들게 했던 감정의 중심에는 자책감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은 게 자기 때문이지 않을까 괴로워한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피하고 피했다. 세진 역시 유서로 보이는 편지에 ‘아빠와 오빠를 대신해 용서를 빈다’라고 적었다. 여기엔 피해자인 여성에게 오히려 희생을 강요하거나,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와 폭력이 깔려 있다.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벌하게 했던 폭력의 시선들.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는 김혜수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여러 차례 담는다. 김혜수의 표정은 그런 카메라의 압박을 연신 이겨내고 있다. 고통스러운 시기에 《내가 죽던 날》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는 김혜수는, 현수를 통해 자신이 겪은 위로를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인상이다. 그의 표정은 더 깊어지고, 더 짙어졌다. 말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등장해 온몸으로 감정을 이해시킨 이정은의 연기력도 좋다. 그리고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건 현수의 친구로 출연한 김선영. 일상적인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이토록 의미 있게 살려내는 건 분명 배우의 능력이다.

봉합을 위한 봉합 같은 급박한 상황 정리는 다소 아쉽다. 해외에서 촬영된 영화의 마무리가 다소 길고 설명적인데, 인공적이란 느낌도 있다. 해외 촬영분이라 특히 더 아깝긴 하겠으나, 짧게 쳐냈다면 여운은 조금 더 길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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