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 이제 닫자] 스토킹은 범죄…절대 로맨스가 아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4 10:00
  • 호수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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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인 넘나드는 스토킹 범죄
20년 잠자던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

처음에는 호감의 표현, 혹은 아는 사람의 장난이라 생각했다. 중학생 A에게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 친구처럼 대화를 시작한 상대방은 어느 순간부터 비속어를 쏟아냈다. 이름과 학교, 사는 동네까지 알고 있었다. “너를 보고 있다” “네 근처에 있다”며 일방적인 메시지를 보냈고, “대답을 하지 않으면 찾아가겠다”고 했다. 학교 앞 가게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자신이 있는 위치가 찍힌 내비게이션 화면도 보냈다. A가 사는 동네였다. “○○를 하고 싶다” “△△가 예쁘다”며 성적인 메시지를 보냈고, 받을 때까지 영상통화를 걸었다. 영상통화가 연결되면 음란행위를 했다. 성폭력은 계속됐다. 불과 일주일 사이, 한 학생의 일상은 이전과 달라졌다. 알림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내려앉는다. 누가 가해자일까. 그것도 알 수 없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졌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스토킹 행위에 대한 처벌이 담배 꽁초를 길에 버리는 행위에 대한 처벌과 같다는 끔찍한 사실. 현실이다. 심지어 암표를 매매하는 행위보다 가볍게 처벌된다. ‘경범죄’라는 이름 아래 부과되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현행법상 스토킹에 대한 처벌의 전부다. 다시 말해 10만원만 내면 가해자는 얼마든지 다시 스토킹을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규정조차 돼 있지 않다. 협박·폭행 등 스토킹 행위를 하면서 저지른 다른 범죄로 우회적으로 처벌될 뿐, 스토킹 자체는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지속적 괴롭힘’이라고만 규정된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처벌은 과태료 10만원…처벌도 10.8%에 그쳐

문제는 경범죄로 치부되는 이 범죄의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2756건. 하루 평균 12.9건의 스토킹 범죄 신고가 있었다. 10만원의 과태료조차 모든 가해자에게 부과되지 않는다. 신고 대비 처벌 비율은 10.8%에 그친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스토킹의 수법은 더욱 다양해졌고, 댓글이나 메신저 채팅창을 통해 스토킹 행위를 하는 ‘사이버 스토킹’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스토킹·성폭력 피해 경험률은 각각 8.7%, 6.9%였다. 사이버 스토킹 역시 법적으로 규정된 범죄가 아니다.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내용을 상대방에게 보낸 것이 입증될 경우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 처벌될 뿐이다. 협박이나 명예훼손, 음란물 발송 등 추가적인 범행이 발생할 경우에 해당 범죄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스토킹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처벌할 법은 미비하다. 사회적으로는 스토킹이라 부르지만 법적으로는 스토킹이 아닌 상황. 당연히 법을 정비해야 한다. 시민사회에서도 제정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스토킹 방지법은 지난 1999년 발의를 시작으로 20대 국회까지 14차례나 발의됐지만, 단 한 건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스토킹이 살인 등 중범죄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스토킹 범죄 처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21대 국회에는 6건의 스토커 처벌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스토킹의 범위를 확장하고, 범죄를 저지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부 법안은 피해자의 범위를 스토킹 상대방뿐 아니라 그의 가족과 직장 동료 등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 중 피해를 본 사람까지 포함시켰다.

2차 범죄 막기 위한 피해자 보호 필요

단순히 형량을 올리기 위해서만 법안의 통과가 필요한 건 아니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그 자체로는 경범죄로밖에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살인이나 협박·명예훼손 등 다른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로 이어질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맹점이 있다. 실제로 스토킹이 다른 범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5월 창원시에서 식당 사장인 60대 여성이 살해된 사건은 초기에 식당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벌인 우발적 범행으로 알려졌으나, 고인의 휴대전화를 분석한 결과 가해자가 피해 여성을 오랜 기간 스토킹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4월 일어난 진주 방화 살인 사건도 그랬다. 피해 고등학생이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를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상해 피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고, 끝내 사망에 이르렀다. 한민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성폭력 범죄 발생 위험은 13배 이상 높다.

2차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피해자를 더욱 옥죈다. 초기에 범행을 막을 법적 장치나 가해자에 대한 감시·차단 수단이 없는 입법 공백 상태에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조속히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다. 사이버 스토킹 피해를 본 A의 아버지는 가해자를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다. A의 아버지는 “신고를 하고 나서도 가해자가 잡히기 전에 추가적인 범행을 하거나 해코지를 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은 (가해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몇만원 벌금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큰 사건이 터져야만 처벌을 제대로 하겠다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해자의 행위가 성폭력범죄로 인정될 경우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신상 공개가 가능해지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가해자가 누군지 알 수도 없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을 겪게 된다. 피해자들은 아무 조치도 해 주지 않는 법에 기대지 못하고 민간의 영역에서 보호막을 찾는다. 1년 동안 스토킹에 시달렸던 프로 바둑기사 조혜연 9단처럼 스토킹을 막기 위해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ID를 바꿔라” 답변에 신고 포기하기도

개정안에는 피해자 보호 절차가 담겼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지난해 10월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주관한 ‘피해자 보호관점에서 바라본 스토킹 처벌법’ 세미나를 통해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찰의 초기 대응은 향후 범죄의 지속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며 “법안에는 신변 안전 조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스토킹 신고 이후 신고자의 신변 안전상 문제가 없는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신고를 받은 경찰은 피해자의 활동 장소와 정보통신망 등을 통해 신고 사실을 조사해야 하고, 스토킹 행위를 중단할 것을 통보해야 한다. 법원이 피해자 주거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된다. 사안이 긴급할 경우에는 경찰이 피해자나 보호자의 신청에 따라 접근 금지 조치를 할 수 있다.

스토킹 범죄의 형태를 다양하게 규정하고 보다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SNS 스토킹은 해당 SNS의 서버가 해외에 있어 가해자를 특정하고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인 조현욱 변호사는 “디지털이 우리 생활에 들어오면서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스토킹 범죄도 늘어났다. 사이버 스토킹 등 스토킹 행위의 다양한 형태를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 및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스토킹 방지법 제정은 필수적이다. 사이버 스토킹에 대한 국제 수사 공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 변호사는 “성인의 미성년자에 대한 스토킹은 성매매 등 2차 범죄로 연결될 수 있다”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스토킹에 대해선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스토킹에 대한 처벌이 더 가중된다. 미국 미시간주의 스토킹 방지법은 오프라인 스토킹과 사이버 스토킹을 모두 규율하는데, 피해자가 18세 미만이고 가해자의 연령이 5세 이상 많을 경우에는 중죄로 보고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1만 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스토킹을 바라보는 가벼운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지금까지 스토킹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에 우리 사회가 소극적이었던 데는 스토킹이 사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이유도 있다.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말하는 가해자, “좋아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을 수사기관을 통해 듣는 피해자, “SNS를 하지 마라” “ID를 바꿔라”라는 신고센터의 답변을 듣고 신고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피해자의 사례(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스토킹을 바라보는 안일한 시각을 보여준다.

“입법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수사기관의 개입이 매우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지만, 스토킹 문제는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인 원조 역시 절대적으로 요구한다”는 형사정책연구원의 제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스토킹은 절대 로맨스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스토킹을 심각한 ‘범죄’로 마주하고 ‘대응’하며 ‘처벌’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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