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담배사 상대 500억대 소송 패소…法 “인과관계 인정 안돼”
  • 이선영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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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건보공단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
공단 “충격적 판결…항소 검토”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담배회사 상대 손해배상 소송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담배회사 상대 손해배상 소송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이 흡연 때문에 발생한 손실을 배상하라며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500억원 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6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공단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했다고 하더라도 구상권을 행사해 비용을 회수할 여지가 있을 뿐,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한 ‘직접 피해자’로서 손해배상을 구할 권리가 없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홍기찬)는 20일 공단이 케이티앤지(KT&G)와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공단은 담배회사들이 수입·제조·판매한 담배의 결함과 불법행위로 인해 3464명의 흡연자에게 폐암 중 소세포암, 편평세포암 및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이 발병했고, 이들과 관련해 보험급여 비용(공단부담금) 명목으로 총 533억원을 지출했다고 주장했다.

공단은 “담배회사들의 불법행위 때문에 공단은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한 손해를 입게 됐다”며 “담배회사들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공단에 533억에 상당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단이 요양기관에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이 정한 바에 따라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자,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징수하거나 지원받은 자금을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건강보험 급여 지급은 건보공단의 의무일 뿐 손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공단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해 재산의 감소 또는 재산상 불이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설립 당시부터 국민건강보험법이 예정하는 사항으로서 원고가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공단의 보험급여 비용 지출은 '국민건강보험 가입에 따른 보험관계'에 따라 지출된 것에 불과하므로, 담배회사들의 행위와 보험급여 비용 지출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흡연 피해자들 또한 담배회사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고 봤다. 담배회사들이 만든 담배에 결함이 없고,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개별적 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단이 제출한 증거들에 의하면 이 사건 대상자들이 20갑년 이상(20년 이상을 하루 한 갑씩 흡연)의 흡연력을 가지고 있고 질병을 진단받았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1심 선고는 공단이 지난 2014년 4월 흡연으로 인해 추가 지급된 진료비를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낸 지 약 6년 만에 나온 것이다.

선고가 끝난 뒤 김용익 공단 이사장은 “이번 판결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판결”이라며 “공단이 그간 담배의 명백한 피해에 대해 법률적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판결 불복과 관련해서는 “항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담배의 피해를 밝혀나가고 인정받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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