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 울산의 석유화학공단의 현실은 너무 멀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0 13: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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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지역 대기업들 “특별한 탄소 중립 경영계획은 없다”

11월18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울산의 롯데케미칼 공장을 찾았다. 신 회장은 “기후변화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친환경’ 투자를 강조한 말이다. 

플라스틱은 가볍다. 그리고 강도가 우수하고 물성이 뛰어나다. 이 같은 장점으로 플라스틱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석유화학업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고민거리는 온실가스다. 플라스틱은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기업에 ‘징벌적 성격’의 비용을 매기면서 기업의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2019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배출부채는 2018년 79억원이었는데, 2019년 157억원 증가하면서 236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적립부채는 214억원에 이른다. 롯데케미칼이 배출부채를 회계에 반영한 건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기업은 정부가 제공하는 무상할당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돈을 주고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지난해 대산·여수·울산공장에서 4만6000톤을 적게 배출했지만, 기존 초과분 규모가 워낙 커 재무적 부담을 낮추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신 회장이 온실가스 ‘재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탄소 중립’ 경영을 선언한 것이다. ‘탄소 중립’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울산석유화학공단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연합뉴스

‘탄소국경세’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대두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침묵이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은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 행정부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할 것”이라고 썼다. 파리기후협약은 2015년 유엔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한 협정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량을 미국은 26~28%, 유럽연합은 40% 절대량 감축을 약속했다. 중국은 GDP 대비 배출량 기준 60~65% 감축, 한국은 2030년의 목표 연도 배출전망치 대비(BAU) 37% 감축 목표를 제출했다. 트럼프가 사망선고를 내린 ‘탄소 중립’을 바이든이 부활시키면서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tax)’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했다.

울산에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석유화학업체가 밀집해 있다. SK에너지와 S-Oil이 각각 700만 톤 이상을 배출하면서 최다 배출업체 명단에 올랐다.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일정 규모의 탄소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받는다. 할당분을 초과하면 시장에서 배출권을 따로 사야 한다. 또 남으면 팔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고, 한국거래소가 개설한 배출권 시장에서 매매가 가능하다. 얼마 전 SK그룹의 액화천연가스(LNG) 회사 SKE&S가 계열사인 SK에너지(정유업)와 탄소배출권을 주고받는 내부거래를 했다. 온실가스 할당배출권 30만 톤을 66억6000만원에 사고판 것이다. S-Oil은 개발도상국 정수 시스템 관리기업(스타트업)인 글로리엔텍에 투자해 연간 1만3000톤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했다고 10월19일 발표했다. 

19세기 영국이 석탄을 파운드화로 거래하면서 세계경제의 중심 역할을 했다면, 20세기는 미국이 석유 달러로 세계경제를 주도했다. 그리고 21세기는 탄소배출권이 세계경제를 선도할 것으로 예측된다. 박상길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은 12월1일 진행된 ‘원자력이슈포럼’에서 “탄소는 기후변화의 원인 제공자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원으로서 세계경제를 뒤흔들 만한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억1300만 톤(2019년 기준)이다. 이는 전국의 22.3%를 차지한다.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사들이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전환기를 맞았다. 11월13일 울산이 ‘이산화탄소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서다. 그동안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산화칼슘(CaO)과 반응시켜 만든 탄산칼슘(CO2+CaO=CaCO3)이 폐기물로 분류됐지만, 울산 특구에서는 이 같은 규제가 풀려 화학소재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울산 특구에 2030년까지 24곳의 신규 기업을 유치하고, 이산화탄소 110만 톤을 포집한다. 이를 활용해 1조8000억원의 경제효과를 얻고, 울산에서 탄소 제로화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과연 성장신화를 주도했던 울산이 기후위기 극복도 주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장기저탄소발전전략(Long-term low GHG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ies·LEDS)’이 12월15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됐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실천의지가 담보되지 않으면 선언적 의미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추진전략’도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무총리 그린뉴딜 특별보좌관인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모든 정부가 온실가스 저감 계획은 세웠지만, 실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롯데케미칼 울산공장 전경 ⓒ롯데케미칼제공

탄소배출권, 글로벌 에너지 전쟁 수단 되나 

‘탈탄소’가 새로운 글로벌 헤게모니로 떠오르고 있다. 방인철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온실가스가 최대의 무역장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이산화탄소를 자원으로 전환하는 연구·개발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UNIST·KAIST(한국과학기술원) 공동 연구팀은 주석과 탄소 지지체 기반의 ‘일체형’ 촉매를 개발했다. 기존 촉매보다 값도 싸고, 생산효율도 100배 이상 높다. 한국화학연구원 조득희·김동우 박사팀은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친환경 폴리우레탄 화장품 쿠션과 건축 단열재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이종람 교수 연구팀은 값싼 금속 소재와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제작할 수 있는 고성능 이산화탄소 환원 촉매를 선보였다. 

문제는 상업화다. 그동안 획기적인 ‘실험실 친환경 기술’이 수도 없이 개발됐지만, 제품으로 이어진 경우는 극소수다. 부실한 산학(産學) 시스템과 까다로운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호 전 울산대 교수는 “탄소 중립은 정부의 인식 전환이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전경련은 7년 후에 우리나라가 세계 5위 수출국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과연 그렇게 될까. 한국의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석유제품·자동차·선박은 모두 울산에 있다. 이산화탄소가 많이 나오는 업종이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수출길이 막힌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발등의 불에 대비하는 업체가 없다. 연간 39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한국동서발전은 이렇다 할 저감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울산의 한 석유화학업체 임원도 “특별한 탄소 중립 경영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만난 6개 수출 대기업들도 탄소 중립은 먼 나라 일인 듯 ‘무장해제’ 생태였다. 수출 5위 국가가 아니라 50위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대목이다. 탄소 중립은 시대적인 과제로 우리만 안 하고 살 수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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