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결국 여기까진가?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8 17:00
  • 호수 16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나 빈틈없이, 기대 이상의 연주를 들려주는 이에게 물었다. “그 음악성은 타고나신 거죠?” 이런 질문에 순순히 ‘그렇다’고 답하는 이가 드물긴 하지만, 그의 반응은 생각했던 것보다 단호했다. “아니에요…. 매일매일 좌절합니다. 결국 여기까진가?” 일본어 억양이 조금 섞인 어조로 천천히 끊어 말하는 어감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두어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결국 여기까진가’라는 말을 메모장에 적었다. ‘좌절감’에 대한 격한 공감이었을 것이다.

초유의 전염병 시국, 점점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고, 공들여온 일이 코앞에서 취소되고, 문을 닫아야 하고,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나서야 하며, 불시에 격리 통지서를 받아들거나 심지어 입원을 해야 하는 일들이 예사롭게 벌어지고 있는 즈음. 우리들 마음속에 각기 다른 크기, 각기 다른 농도의 좌절감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였나?’ ‘결국은 올해가 이렇게 지나가고 마는 건가?’ 헛헛한 웃음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세밑이 턱밑이다. 이런 와중에 누구의 어떤 말이 힘이 될 수 있을까.

ⓒ남산골한옥마을 유튜브
ⓒ남산골한옥마을 유튜브

며칠 후 그 음악가를 아주 작은 음악 자리에서 다시 만났다. 본래 작은 공간이었지만, ‘두 자리 띄워 앉기’라는 코로나 2.5단계의 수칙을 지키느라 그야말로 ‘찐팬’들만 모인 ‘초미니 콘서트’에서 그는 빼어난 연주력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 민족학교에 입학해 처음 만난 가야금, 북한으로 가야금 유학을 가던 때 얘기, 그리고 다시 서울에 와서, 어려운 형편이라 자판기 커피 값도 아껴가며 힘겹게 배운 전통음악과 어릴 때부터 익혀온 북한 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함께’ ‘공존’이라는 말을 화두 삼아 누구보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의 얘기는 음악 감동에 ‘애잔함’ 한 스푼을 더해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는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어려운 음악 인생을 계속 살게 하는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얻었을 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 걸 알기 때문에, 그것을 찾으려고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힘을 주는 사람, 힘이 되는 돈, 누구와의 관계, 막연한 미래에 대한 꿈 얘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결국 여기까진가’라는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힘을 스스로 내야 하는 것이라는 답이어서 위로가 되었다. ‘백신’만 나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 같고, 국가 예산이 많이 풀리면 좋을 것 같고, 누가 좀 도와주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말 대신, 나를 살리는 내 안의 힘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돌려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요 며칠 내게 지혜와 감동과, 위로를 나눠준 음악가 ‘그’는 ‘재일동포 음악가 박순아’로 불리는 가야금 연주가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처음으로 북한에 가야금을 배우러 갔을 때 배에서 내리며, ‘내 생애에서 이렇게 중요한 날, 그 첫걸음을 왼발로 내디딜까, 오른발로 내디딜까’ 두근두근했었고, 처음 한국 땅을 디딜 때, ‘양발로 동시에 내딛는 의식’을 남모르게 치렀다는 거였다.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를 ‘답’을 기다리며 허둥지둥 보내게 된 2020년, 그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내년 세상으로 향한 첫걸음을 왼발로 디딜까, 오른발로 디딜까를 한번 헤아려봐야겠다. 잠깐 멈춰 숨을 고르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다가올 미지의 시간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다. 올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내년을 기다리며.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