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가 내세운 스가, 아베의 등에 칼 꽂나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1 14: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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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스가’로 아베 재등판설 나오자 스가 총리 측서 불편한 시선 역력

“7년8개월 총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이번에 사퇴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 명의 의원으로서 지역의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고 (아버지의 묘 앞에서) 보고했습니다.”

지난 11월1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9월 퇴임한 후 처음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을 방문해 나가토시에 위치한 아베가(家) 가족묘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의 묘지에 참배했다. 이번 성묘에는 부인 아키에와 약 900명의 지지자가 함께했다. 성묘 후 기자들에게 위와 같이 말하며 “몸 상태 때문에 사직해 (지지자들에게) 걱정을 끼쳤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약이 잘 들어 건강도 아주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헌법 개정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묻자 “야당은 아베 정권에서는 헌법 개정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스가 정권이니 이제 그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며 “헌법에 관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뜻이며, 이에 응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직무다. (개헌) 기운을 높이기 위해 나도 노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그라지지 않은 개헌 의욕을 기자들 앞에서 강하게 내보인 것이다. 이후 3일 동안 야마구치 현청, 나가토 시청, 시모노세키 시청 등 지역구를 돌며 주요 인사와 지지자들을 만났다. 또 자민당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에도 2021년에는 복귀할 의향을 밝혔다.

ⓒEPA 연합

“아베 정보 흘린 건 검찰 상층부와 총리 관저”

당분간은 중의원으로서 의원 역할에 전념하겠다는 아베 전 총리지만 이 같은 그의 행보를 두고 ‘포스트 스가’로 다시 한번 총리 등판을 언급하는 의원들도 있다. 자민당 총재의 경우 ‘연속 4선’은 불가능하지만 연속이 아니라면 아베가 다시 총재 자리에 오르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의원내각제에서는 보통 여당의 총재가 곧 일본 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내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승리하고 아베가 중의원직을 유지한다면 ‘포스트 스가’로서의 ‘아베 총리’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벚꽃을 보는 모임’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아베의 정계 은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본 내각총리대신 즉 총리가 주최하는 ‘벚꽃을 보는 모임’. 아베 총리 시절의 행사 규모와 초대 인사가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꾸준히 지적되어 왔지만, 이번에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것은 행사 전날 호텔에서 개최된 전야제에서의 식사다. 참가자의 회비로는 부족했던 식사 비용을 아베 사무실이 보전했다는 것이다. 수지보고서에 식사 비용에 관한 기재가 없기에 엄연히 정치자금법 위반이 된다. 이에 따라 검찰은 비서를 소환해 조사했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할 예정이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아베 전 총리 본인의 검찰 조사 출석을 요청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왜 지금, 이와 같은 시점에 ‘벚꽃을 보는 모임’ 전야제의 식사 비용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주목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서 발간하는 주간지 ‘아에라’는 ‘검찰과 관저의 “탈(脫)아베”’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아베 전 총리에게 검찰이 대면조사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처음 보도한 매체가 요미우리신문과 NHK라는 점에 주목해, 이들 언론사에 아베 전 총리의 수사 정보를 흘린 것이 검찰 상층부나 총리 관저일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으며 검찰 관계자의 말을 함께 실었다. “아베 정권 법의 파수꾼이라고 불렸던 구로카와 히로무가 실각한 후, 특수부의 움직임은 활발해졌다. 국민의 신임을 신속히 회복하고자 하는 검찰에는 ‘아베로부터의 탈각’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검찰의 벚꽃 모임 식사 비용 조사는 아베 정권 때 잃어버린 검찰의 신뢰 회복 전략이란 것이다.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 구로카와 히로무는 아베의 사람으로, 올해 초 그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아베 정권은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검찰의 신뢰도 같이 떨어졌다.

또한 현 스가 정권의 얼굴색을 살필 수밖에 없는 검찰의 입장을 전하며, 아베 대신 그 비서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불기소 시나리오’가 “국민에 대해서는 검찰의 집념을 보여주면서도 현 정권의 피해는 가급적 줄인다는 점에서 완벽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에 임시 국회 폐막이라는 절묘한 시점에 이루어진 검찰의 움직임에 맞춰 총리 관저 쪽에서 요미우리와 NHK에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총리 관저와 검찰이 ‘아베로부터의 탈각’에 의견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스가 정권의 이러한 태도를 자민당 내 파벌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의 한 의원은 주간 아사히에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최근 활동이 활발해진 아베가 눈에 거슬려, 그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언론에 도쿄지검의 정보를 흘린 것 같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또 현재 GoTo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는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담당상의 경우 아베와 친밀한 호소다파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속에서도 캠페인을 계속하고자 했던 스가 총리와 의견 충돌을 보였다고 한다. 스가 총리는 현재 무파벌로 분류되고 있으나, 니카이 도시히로가 이끄는 니카이파의 지지로 자민당 총재가 될 수 있었고 그 덕에 총리 자리에까지 올랐다.

스가 일본 총리(앞쪽 가운데)가 9월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다른 각료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AP 연합

아베의 호소다파와 스가의 니카이파 싸움

12월 초에는 전 농림수산상 요시카와 다카모리가 현직에 있던 2018년과 2019년 당시 3차례에 걸쳐 현금 500만 엔(약 5300만원)을 히로시마현의 한 업체로부터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보도되기도 했다. 요시카와는 아베 정권에서 농림상을 지내기는 했지만 니카이파로 분류된다. 니카이파 쪽에서는 요시카와 전 농림상에 관한 의혹 제기가 아베의 벚꽃 모임에 관한 의혹을 덮기 위한 것으로 “스가 총리와 니카이파가 정권을 주도하고 있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또 한 번의 등판을 노리는 아베나 아소 다로 쪽이 언론에 흘린 것 아닌가” 하는 주장을 주간 아사히를 통해 전하기도 했다.

스가 총리와 니카이파만이 아베 전 총리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것만은 아닌 듯하다. 민심도 싸늘하다. 마이니치신문이 12월12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 전 총리의 벚꽃 모임 전야제에 관한 설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대답이 66%에 달했다. 이해할 수 있다는 대답은 겨우 6%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총리로 국회에서 거짓 답변을 했다는 도덕적 책임까지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시모토 도오루 전 오사카 지사는 한 방송에서 “국회에서 거짓 내용을 답하게 된 배경에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아베의 책임이 있다”며 아베 전 총리가 정계에서 은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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