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가 소확행 장수 창업을 부른다
  • 김상훈 창업통tv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4 14: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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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_창업]‘고수익 창업’보다 ‘행복한 창업’이 중요

코로나19 시대 국내 자영업 시장은 올겨울 최강 한파까지 겹치면서 꽁꽁 얼어붙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에 들어간 수도권 상권은 저녁 9시 이후엔 인적 찾기가 힘들 정도다. 업종별로 편차는 있다. 외식업에서는 주류 아이템 등 심야업종의 타격이 크다. 저녁 9시 이후 황금시간대에 문을 닫음으로써 매출 하락세가 큰 편이다. 일반음식점 역시 저녁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는 포장·배달만 가능한 상황이다. 전국 8만 개에 달하는 카페는 매장 내 판매 불가 조치로 테이크아웃 판매에만 치중하고 있다. 집합금지 업종인 노래방, 헬스장, 당구장, 학원, 교습소 등은 전면 영업 중단으로 매출이 사라진 상태다. PC방, 이·미용업 등도 저녁 9시 이후 전면적인 영업 중단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2021년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코로나로 인해 창업시장의 패러다임도 변화하는 상황이다. 뜨내기 창업자보다는 자영업 시장에서 10년, 20년 이상 뿌리내리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 상권 내 스가모시장에는 50년 이상된 장수 가게들이 즐비하다. ⓒ김상훈 제공

장수 가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

한국 자영업 시장에서 큰돈을 번다는 것은 이제 쉽지 않은 현실이다. 적게 벌더라도 오랫동안 살아남는 장수 가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코로나 시대를 접하면서 곳곳에서 폐업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폐업한다고 해서 당장 재취업 시장을 노크하기도 어렵다. 폐업한 자영업자들의 상당수는 다시 재창업 시장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자영업 소상공인들의 꿈은 ‘부자 되기’였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자영업 시장에서 ‘부자’라는 말은 먼 나라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부자보다는 생존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적게 벌더라도 행복한 가게, 소확행 창업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창업자가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자영업 시장의 패러다임도 변하고 있다. 고객이 행복한 가게를 외치기보다는 창업자인 ‘내가 행복한 가게’가 주요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장수 가게에 대한 관심은 정부 정책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주관으로 ‘백년소공인’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이다. 업력 15년 이상 숙련기술 기반의 우수 소공인을 대상으로 백년가게를 선발하는 게 목표다. 백년소공인으로 선정될 경우 인증 현판 부착, 자금 융자, 컨설팅, 홍보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 시행되고 있는 것 또한 장수 가게 패러다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 외식 상권의 장수 가게들은 특정 테마음식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신당동 떡볶이 거리, 무교동 낙지 골목, 신림동 순대 골목, 장충동 함흥냉면, 장충동 족발 거리, 의정부 부대찌개 골목, 마산 복국집 골목, 대전 두루치기 골목 등 전국 상권에는 그 지역, 그 골목을 대표하는 테마음식 골목이 많다. 이곳에 가면 특정 음식을 중심으로 오래된 장수 가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설 경쟁력과 디자인 측면에서는 세련되지 못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전통의 맛을 내세우면서 오래된 가치를 잘 지켜오는 장수 가게는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최근엔 장수 가게들이 2세에게 대물림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전반적인 경영혁신을 통해 시즌2 경영으로 장수 가게의 명맥을 잇고 있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초고령화가 빨리 진행된 나라다. 우리나라보다 장수 가게도 훨씬 많은 편이다. 70~80대 실버 창업자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도쿄 상권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로 불리는 스가모시장에 가면 50년 이상의 장수 가게가 즐비하다. 이들 가게 주인의 나이는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 창업자가 많다. 스가모시장에는 주인도 실버, 직원들도 실버, 고객들도 실버 수요층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우동집, 라멘집 등 웬만한 가게에 가면 고령자인 실버 창업자와 2030 청년 세대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 창업이 어느 정도 보편화됨에 따라 실버 창업자와 청년 창업자가 작은 가게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이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에서는 자영업의 대를 잇는 것이 관습으로 안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 가게에서 아들 가게로, 다시 손자에게 대를 잇고 있다. 대를 잇지 못하는 경우 장수 가게 창업자가 자신의 코드에 맞는 후계자를 선정하는 경우도 많다. 홍대 상권에서 겐로쿠우동을 운영하고 있는 이강우 대표가 유학 시절 일본 우동가게에서 알바한 경험을 계기로 일본 겐로쿠우동의 후계자가 된 예도 있다. 지금도 사제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홍대의 겐로쿠우동은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발전한 좋은 사례로 꼽힌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는 70대 이상 고령 창업자가 많다. ⓒ김상훈 제공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과 장수 브랜드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30년 이상의 가맹사업 역사를 가진 장수 브랜드는 많지 않은 편이다. 공정위 정보공개서를 통해 업종별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업력을 확인할 수 있다. 외식업 브랜드는 평균 4년7개월, 도소매업 브랜드는 4년11개월, 서비스업 브랜드는 6년1개월이 평균 업력이다. 이제는 프랜차이즈 시장에서도 단기간에 반짝 가맹점이 늘어나는 브랜드보다는 업력이 오래된 장수 브랜드가 우대받는 풍토가 절실한 상황이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에는 반짝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유행 브랜드를 찾는 창업자가 많다는 것은 단명하는 브랜드를 양산하는 기획형 프랜차이즈 본사 또한 여전히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업자의 지속 가능한 경영을 담보하는 장수 가게 측면에서 본다면 우려되는 부분이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창업시장에서는 장수 창업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에 가맹점이 급증하는 브랜드는 그만큼 시장에서 빨리 소멸되는 예가 많다. 시장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신규 창업자 입장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 가치를 제대로 배워 창업하는 풍토가 절실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치밀한 상권 탐색을 통해 ‘내게 맞는 장수 가게’를 찾는 절차부터 필요하다. 전수 가능 여부를 타진하고, 제대로 된 전수 과정도 뒤따라야 한다. 또한 단순히 레시피 전수에만 매달리기보다는 장수 가게 창업자의 삶의 가치, 경영철학까지 공유하는 전수 과정이 필요하다. 장수 창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불안정한 자영업 생태계를 개선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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