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판 게이트’ 되나…고려아연 매립장 특혜 의혹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6 14: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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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업계 “허가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 주장

“대기업이 폐기물 자가매립장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분명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업계에서는 그들이 누군지 다 안다. 같은 공단 내 중소기업들의 승인 신청에 대해 퇴짜를 놓은 울산시는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일우 (주)유그린텍 대표의 말이다. (주)그린다도 같은 공단에서 폐기물 매립장 허가를 울산시에 신청했지만 반려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합법적인 곳에 사업 신청을 했지만, 승인해 주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지금까지 울산시는 산업단지 안에 폐기물 매립장 조성은 절대 안 된다고 공언해 왔다. 환경오염을 가중시킨다는 게 이유다. 그렇게 버티던 울산시가 고려아연에 매립장 허가를 내준 사실(시사저널 2020년 11월28일자 대기업은 되고 중소기업은 안 되는 ‘울산 폐기물매립장’ 기사 참조)이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과 형평성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사용기간이 끝나 매립이 종료된 산업폐기물 매립장 ⓒ박치현 제공
(주)코엔텍 폐기물 매립시설 전경 ⓒ코엔텍 제공

“‘보이지 않는 손’은 전직 울산시 2인자”

폐기물 업계는 전직 울산시 2인자였던 A씨와 B씨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목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씨와 고려아연 C임원이 특수관계인 것은 폐기물 업계에서는 다 아는 사실이며, B씨가 행정업무를 주관했다”면서 “매립장이 부족하다는 기업들의 하소연에 귀를 막고 있던 울산시가 유독 고려아연에만 허가를 내준 배경에는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울산광역시 지역개발과는 “터무니없는 추측이며, 폐기물 처리로 경영애로를 겪고 있는 고려아연에 ‘자가매립장’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울산 공장장협의회 관계자는 “모든 기업이 폐기물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고려아연에만 특혜를 주고 있는 울산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울산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폐기물 대란이 시작됐다. 2600여 개 업체에서 폐기물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매립장은 3곳에 불과한 탓에 폐기물 처리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실제로 톤당 매립 단가가 5년 사이 (2016년 15만7462원, 2020년 68만9600원) 4.4배나 올랐다. 치솟는 아파트 값보다 가파른 상승세다. 온산공업단지협회는 2019년 11월11일 폐기물 매립장 조성을 건의했지만, 울산시는 불가 통보를 했다. 매립장이 산업용지를 잠식한다는 게 이유였다. 

시사저널은 고려아연 폐기물 자가매립장 개발계획 변경 검토 보고서를 입수했다. 울산시 전직 2인자였던 A씨 소속이었던 지역개발과가 편법까지 동원해 사업 승인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부서들의 반대로 갈등이 심했다고 전해진다.  

지역개발과는 산업단지에 일반매립장은 불가능하지만 자가매립장은 가능해 고려아연에 허가를 내줬다고 설명했다. 과연 그럴까?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제11조‘는 공장 설비를 갖추고 운영 중인 공장 부지에 부대시설로 자가매립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부지는 고려아연 공장에서 2km나 떨어져 있다. ‘자가매립’ 개념에 부합하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더욱이 개발계획 변경 검토 과정에서 울주군과 환경자원과의 반대를 무시하고 지역개발과가 밀어붙인 사실이 확인됐다. 울주군과 환경자원과는 고려아연 허가는 특혜 소지가 있다고 밝혔고, 현재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자가매립장 난립은 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따라서 ‘폐기물관리법 제29조 제5항’에 의거해 공단 폐기물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매립시설(공동매립장) 설치가 바람직하다고 통보했지만, 지역개발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울주군 관계자는 “고려아연에 허가를 내주면 다른 업체도 들어와 자가매립장이 난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울산시청 내에서도 말이 많다.

사업 승인 과정도 이례적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3월17일 환경관리팀장을, 4월8일 제련소장을 울산시에 각각 보내 협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신청서류도 접수되기 전인 4월17일 지역개발과장이 시장에게 보고하고, 고려아연은 7월30일 개발계획(변경)을 신청한다. 그 후 석달 만에 허가가 난다. 매립장 설계 용역 업체 관계자는 “시장에게 미리 재가를 받아 사업을 추진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고, 이는 관행을 깬 매우 ‘수상한 행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휘웅 울산시의회  의원은 “매립장 특혜 논란에 대해 공론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하자”고 제안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제공
온산국가산업단지 전경 ⓒ울산시 제공

대기업엔 ‘특혜’, 중소기업엔 ‘불이익’ 유착 의혹

울산시의 매립장 개발계획 변경안에서는 대기업에는 ‘특혜’를, 중소기업에는 ‘불이익’을 주고 있는 정황이 여러 곳 발견된다. 지역개발과는 (주)유그린텍과 (주)그린다가 신청한 폐기물 매립장은 ‘울산 지역 폐기물 자원순환기본계획’에 들어 있지 않아 허가를 내줄 수 없다며 반려했다. 자원순환기본계획은 폐기물을 종합·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시·도지사가 5년 마다 수립하는 법정 계획이다. 또 온산국가산단처럼 부지 조성이 완료된 온산국가산단에 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불수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로 구성된 울산시 시민신문고위원회는 “준공된 산업단지를 폐기물매립장으로 개발계획 변경 시 자원순환시행계획에 반영한 후 도시기본계획에 반영하도록 하는 규정은 관련 법 어디에도 없다”며 지역개발과의 판단은 잘못이라고 의결했다. 자치단체가 설립하는 매립장은 이 규정에 따라야 하는 반면 민간 폐기물 처리시설은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울주군과 자원순환과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지역개발과가 관련 법을 ‘억지 해석’해 중소기업에 허가를 제한하면서 불이익을 주고 있는 셈이다.  

시민신문고위원회는 “행정주체는 정책을 입안·결정할 때 비교적 광범위한 자유를 가지지만 무제한적일 수는 없다. 객관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경우에는 하자가 있어 위법하게 될 수 있다(대법원 2018.10.12. 선고 등)”고 지적했다. 지역개발과는 “민간 폐기물 매립장은 영업지역 제한 규정이 없어 전국 폐기물이 울산으로 몰려올 가능성이 높아 허가를 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울산 지역 산업폐기물의 절반 이상은 타 지역 매립장에 매립된다. 울산 지역 폐기물이 외지로 나가는 건 괜찮고, 다른 지역 폐기물이 울산으로 들어오는 건 막겠다는 것이다. 행정이 ‘님비현상’에 앞장서는 꼴이다.

울산 지역 산업폐기물 매립장은 포화상태다. 남아 있는 매립 가능 용량은 60만 톤 정도로 3년 안에 수명을 다한다.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매립장 확보가 시급하다. 폐기물 대란은 지역개발과가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승봉 온산공단 공장장협의회장은 “폐기물처리 문제가 기업의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어떤 형식이든 매립장 건설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울산에서는 5개 업체가 매립장 조성을 추진했지만, 울산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해 포기하거나 반려됐다. 이일우 (주)유그린텍 대표는 “신규 매립장을 제한하다 보니 단가 상승으로 기존 매립장은 큰돈을 벌고 있고 모든 기업이 폐기물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고려아연에만 자가매립장을 허가해 줘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이 ‘울산판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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