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기업 털어 재판넘긴 英 기관이 ‘수사∙기소 분리’ 모범사례?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5 14: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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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중수청 반발 사퇴한 윤석열 “美∙英∙獨∙佛∙日 검찰 수사권 인정” 주장…사례 통해 확인해 보니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밝힌 사퇴의 변이다. 파괴의 주체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영향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퇴 사흘 전에도 윤 전 총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수청 제정안을 “졸속 입법”이라고 비난했다. 여권이 추진 중인 중수청은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떼어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인터뷰에서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부정하는 입법례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 수사권을 인정하는 나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을 들었다. 정말일까. 시사저널은 각종 논문, 보고서, 각국 검찰 홈페이지와 형사소송법 등을 통해 실상을 알아봤다.

제프리 버먼 전 뉴욕 남부 연방검사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중 2020년 6월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의 압력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났다.ⓒEPA 연합

, 맨해튼 지검이 트럼프 수사 맡아

미국 검찰의 권한을 따져보려면 소속 검사의 직급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연방국가인 미국은 주별로 독립된 사법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미국 검찰은 연방검찰청과 주검찰청, 카운티마다 있는 지방검찰청 등 세 가지로 나뉘어 있다.

국가 차원의 중대 사건을 다루는 연방검사는 수사권을 갖고 있다. 대신 조건이 있다. 법무부의 직무규정에 따르면, 연방검사는 수사를 위해 FBI 등 연방수사기관에 요청하거나 대배심(Grand Jury)을 거쳐야 한다. 대배심은 중요 사건의 강제 수사와 기소를 위해 일반 시민 16~23명으로 구성된다.

주검사와 지방검사의 수사권은 일원화해 판단할 수 없다. 지역마다 법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은 지방검사의 수사권이 연방검사보다 좀 더 세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방검사는 검찰조사관을 통해 수사하기도 하고, 범죄가 복잡하다고 판단되면 직접 수사에 나서기도 한다.

일례로 뉴욕지방검찰청은 별도 수사부를 두고 직접 신고를 접수·수사한다. 금융의 중심지 월가가 있는 맨해튼의 지방검찰청의 경우, 화이트칼라 범죄를 수사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수사한 곳은 뉴욕 남부 연방검찰청이다. 올해 초에는 맨해튼 지방검찰청이 트럼프 일가를 겨냥한 수사에 나섰다.

, SFO 직접 수사한 사건 ‘10대 개혁’ 꼽혀

여권이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모델로 삼고 있는 게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SFO)이다. SFO가 중대 범죄 수사를 맡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SFO가 여권에서 추진하는 수사·기소 분리의 당위성까지 보장해 주진 않는다. SFO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SFO 홈페이지에는 “사건의 복잡한 특성상 SFO의 특수 능력과 수사 및 기소 권한 적용은 정당하다”고 적혀 있다. 지난 2017년 SFO는 석유화학기업 페트로펙의 임직원부터 자회사까지 모조리 수사했다. 뇌물수수에 얽힌 정황을 포착해서다. 앞서 2016년에는 페트로펙 사건의 빌미가 된 모나코 컨설턴트 기업을 수사해 기소까지 마무리했다.

결국 2019년 페트로펙 부문장이 이라크 정부에 수백만 달러를 줬다고 시인했다. SFO는 올 1월14일 “부문장이 추가 혐의에 대해서도 시인했다”면서 “우리는 계속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로펌 모리슨&포어스터는 이 사건을 ‘2020년 전 세계 10대 반부패 개혁’으로 꼽았다.

한편 영국 왕립검찰청(CPS)에는 수사권이 없다. 과거에는 경찰청이 수사와 기소를 총괄했다. 이에 권력 비대화라는 비판이 일자 1985년 검찰청을 신설해 기소권을 넘겨줬다. 그러다 범죄가 고도화되면서 수사관과 법률가가 처음부터 협력하는 방식이 설득력을 갖게 됐다. 이에 따라 1988년 만들어진 기관이 SFO다.

 

, ‘디젤게이트’ 때 검찰이 압수수색

독일 검찰은 법률상 수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보통 경찰에 의해 이뤄진다. 수사지휘는 개별 사법경찰관에게 직접 하지 않는다. 경찰 기관에 요구하면 내부 기준에 따라 사법경찰관에게 배당하는 방식이다. 예외적으로 심각하고 중대한 범죄를 수사할 경우, 검찰이 경찰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 이때는 검찰이 직접 수사에도 관여한다. 폭스바겐이 배기가스를 조작해 2015년 불거진 ‘디젤게이트’가 그 예다. 사건 수사를 위해 독일 검찰은 2017년 폭스바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 검찰 거느린 법원이 대통령 수사

프랑스에선 검찰이 각급 법원에 소속돼 있다. 검찰은 원칙상 기소 기관이다. 직접 수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형사소송법 41조는 “검사는 형벌법규에 반하는 범죄의 수사 및 소추를 위해 필요한 일체의 처분을 행하거나 또는 이를 행하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만 하고 기소 및 공소유지를 담당한다.

대신 수사판사(juge d’instruction)라는 특이한 사법 제도가 있다. 중대 범죄가 터지면 수사판사가 경찰과 함께 직접 수사에 나선다. 기소 여부 결정도 수사판사의 몫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 언급한 프랑스 검찰이 수사판사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의 말대로 프랑스도 검찰 수사권을 인정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수사판사가 칼을 겨눈 거물 중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에게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판사의 수사를 받았다. 국내외 일부 언론은 당시 수사를 이끈 곳이 ‘경제범죄전담검찰(Parquet national financier·PNF)’이라고 보도했는데, 이는 직역의 결과다. 검찰로 번역된 단어 ‘Parquet’는 형사사건을 기소하는 법관(magistrat)을 뜻한다. PNF는 홈페이지에서 법 집행과 수사지휘의 주체로 법관을 명시하고 있다.

 

, ‘살아 있는 권력’ 때리는 도쿄지검

일본 형사소송법은 검찰의 수사권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필요시 자신이 범죄를 수사할 수 있고(191조), 사법경찰관의 수사를 지휘하거나 협조 요청을 할 수도 있다(193조). 또 독자수사권을 갖고 있다. 이는 민법과 상법이 맞물린 사건이나 고도의 경제 범죄를 들여다볼 때 발동하게 된다.

특히 일본 검찰 내 특별수사부가 휘두르는 수사의 칼날은 유명하다. 특수부는 도쿄지검, 나고야지검, 오사카지검 등 3곳에만 있다. 이 중에서도 도쿄지검 특수부는 1976년 ‘록히드 스캔들’ 수사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를 구속시켜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비판도 적지 않았다. 1998년 증권사들의 대장성(현 재무성) 간부 접대 사건을 수사하던 중, 소속 검사가 접대자리에 있었음을 알고도 묵과한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해당 사태를 2월25일 페이스북에 인용하며 “(일본) 특수부가 몰락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소 분리를 강조하면서다. 그럼에도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을 직접 수사하는 등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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