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치는 무죄다…미얀마 군부, 수치 총선 압승을 쿠데타로 무력화
  • 조용경 여행작가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6 10: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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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이판사판 심리에 중국 등에 업고 수치 여사에 위해 가할 수도

2021년 2월22일, 미얀마 전역은 2000만 명 가까운 엄청난 인파로 뒤덮였다.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22일째인 이날, 최대 도시 양곤을 비롯해 전국 340개 타운십(Township·우리의 시·군·구) 가운데 250개가 넘는 타운십이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군중으로 넘쳐났다. 쿠데타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져온 반대투쟁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인구의 90% 가까이가 부처님을 신봉하는 미얀마 사람들이 왜 이토록 분노한 것일까? 미얀마 역사상 세 번째 쿠데타가 일어난 2월1일은 2020년 말 총선거로 새로 구성된 의회가 출범하는 날이었다.

태국에 거주 중인 미얀마인들이 2월8일(현지시간) 수도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사진을 든 채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고국의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ㅍ
태국에 거주 중인 미얀마인들이 2월8일(현지시간) 수도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사진을 든 채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고국의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AP 연합

수치 정당, 498석 중 396석 얻어 압승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여사의 집권 2기가 시작되는 경사스러운 날 새벽, 1962년 3월부터 2015년까지 53년간 미얀마를 철권통치했던 군부가 또다시 미얀마의 미래를 향해 조포(弔砲)를 쏜 것이다. 지난해 총선거에서 미얀마 수치의 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전체 664개 의석 중 헌법상 군부에 자동 배정되는 166개 의석(25%)을 제외한 선출의석 498석 가운데 396석을 얻었다. 이에 비해 친군부 정당인 USDP는 33석을, 소수민족 정당들은 69석을 얻었다.

2015년 총선거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5년 동안 절치부심해 온 군부에게는 날벼락이었다. 한때 전 세계가 분노했던 로힝야족 탄압 사건도 배후에 아웅산 수치 여사와 불교도들을 이간질하려 한 군부가 도사리고 있다. 미얀마 국민은 5년 전보다 아웅산 수치 여사의 정부에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대응이 바로 2월1일의 쿠데타였다. 아웅산 수치 정부가 왜 5년 동안 집권하면서 군부를 통제하지 못했는가 하는 비판도 있지만, 그건 잘못된 비판이다. 미얀마의 헌법 체계는 참으로 특이하다. 1989년 2차 쿠데타 이후 군부는 19년 가까이 아웅산 수치를 투옥·가택연금하는 방식으로 탄압했지만, 그의 투쟁과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점점 늘어났다. 여기에 미국 등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도 강도를 더해가자 군부는 기존의 헌법 체계를 인정한다는 아웅산 수치의 약속하에, 2012년 그의 정치 참여를 허용했다.

그리고 2015년 총선거에서 아웅산 수치의 당은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배우자나 자녀가 외국 국적을 가지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 조항 때문이었다. 미얀마 헌법은 군부(탓마도·Tatmadaw)가 군과 경찰통수권을 갖도록 되어 있다. 아웅산 수치에게는 국방장관, 경찰장관은 물론이고 시골 경찰서장 하나 바꿀 힘도 없었다.

또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 75%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군부의 헌법 개정 거부권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군부는 지난 54년간의 집권 과정에서 그전까지 아시아권에서 최상위권 경제를 최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농지 국유화와 배급경제, 그리고 철저한 우민화 교육을 통해 그렇게 만들었다. 반면에 자신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지금도 수많은 국영기업이나 재벌기업의 실소유주로서 미얀마의 경제권을 장악해 권력과 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국회가 개원하면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업은 여당이 헌법 개정을 들고나올 태세였고, 소수민족 정당 출신 의원들이 이를 지지함은 물론, 군부 출신 일부 의원까지 동요할 가능성도 포착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들이 50여 년간 다져온 기득권의 철옹성이 폭망하는 상황에서 패닉 상태에 빠진 군부가 쿠데타라는 초(超)강수를 두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에는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이 직접적인 지원은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국 중심의 유엔 제재는 막아줄 것이라는 군부의 확신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무력으로 미얀마를 장악한 군부는 국민의 쿠데타 반대시위와 광범위하게 번지는 시민불복종운동(CDM·Civil Disobedience Movement)을 분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시위대를 탄압하고 있다. 평화적 시위를 하는 국민들에게 실탄 사격을 가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가 하면, 살인·폭력 범죄자들을 대거 석방해 그들이 시위대를 탄압하도록 하고 있다. 이전의 군사정권에 비해 더 잔혹하고 비열한 이런 행태야말로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아닌가. 3월3일 현재 사망자가 60명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며 부상자는 수백 명에 달하고, 1200명 이상이 체포된 상태라고 알려졌다.

한편 아웅산 수치 여사는 현재 네피도의 자택에 연금되어 있으며 부정선거와 수출입법 위반 등 터무니없는 4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고, 3월2일에는 재판정에 출두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에게는 변호사 접견권마저도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쿠데타 지도자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최고사령관을 비롯한 군 지도부가 이판사판 심리 상태에서 저지른 쿠데타이다 보니 저들의 행동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량살상 정도가 아니라 후환을 없애기 위해 수치 여사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군부, 경제권 장악해 권력과 부 좌지우지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유엔 등 국제사회가 미얀마 사태에 개입하게 될 것인가.

만약 1980년의 광주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중국이 먼저 자국인과 자국 이익 보호를 구실로 미얀마에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있고, 그리 되면 미얀마는 그야말로 생지옥화할 수 있다. 이전 로힝야 사태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많은 사람이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아웅산 수치는 무죄다”고 주장한다. 아웅산 수치 정부라고 해서 왜 지난 5년간 잘못된 행정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지난 5년간 아웅산 수치 정권의 열정과 진정성을 지켜본 미얀마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나아가 로힝야 난민대표기구의 군부 비판이 ‘아웅산 수치는 무죄’라는 생생한 증거다.

필자에게는 2월1일 이후의 하루하루가 안타까움과 걱정의 연속이다. 이제 미얀마는, 미얀마 국민은 가장 어려운 역사의 고비에 서 있다. 민주주의와 독재정치, 그리고 경제 발전과 나락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우리 정부는 국회결의안 정도가 아니라 더 강력한 방법으로 미얀마 국민에 대한 대한민국의 지지와 응원의 뜻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초반의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군부정권의 철권통치를 경험했고, 위대한 87항쟁을 통해 국민의 힘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국가를 되살린 우리가 아닌가.

역사를 되짚어보면 미얀마(버마)는 6·25 이후 굶주리던 우리를 돕기 위해 수년간 많은 양의 쌀(안남미)을 원조해 준 고마운 나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미얀마 국민은 위대하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조용경은 누구

야생화 사진가이자 여행작가.  2013년 미얀마를 처음 방문한 이후 19차례에 걸쳐 14개 주를 돌아다녔다. 그때 취재를 바탕으로 《뜻밖에 미얀마》를 썼다. 1951년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청년 시절 포항제철에 입사해 포스코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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