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후 강제 전역’ 변희수 전 하사, 숙제 남기고 떠나다
  • 김수현 객원기자 (sisa2@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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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전역 취소 소송 첫 변론기일 앞둔 상황…하리수 “20년 지나도 트렌스젠더 인권 후퇴”
성전환 후 전역 조치된 변희수(23) 전 하사가 지난 3일 청주시 상당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연합뉴스
성전환 후 전역 조치된 변희수(23) 전 하사가 지난 3일 청주시 상당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 처분을 당한 변희수(23) 전 하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변 전 하사는 전역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내달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경찰은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변 전 하사는 지난 3일 오후 5시49분께 청주시 상당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상당구 정신건강센터는 내담자였던 변 전 하사가 지난해 말에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는 데다 지난달 28일 이후 소식이 끊긴 점을 이상하게 여겨 소방당국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시신의 부패 정도로 미뤄 변 전 하사가 숨진 지 상당 시간 경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유서 등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남자로 태어난 변희수 전 하사는 지난해 1월22일 성전환 수술 이후 군으로부터 전역처분을 받자 언론 앞에 모습을 공개하며 여군으로 복무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2019년 휴가 중 외국에 나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변 전 하사는 계속 복무를 희망했지만, 군은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리고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그는 재심사를 요구하며 지난해 2월 육군본부에 인사소청을 제기했으나, 육군은 “전역 처분은 군인사법에 규정된 의무심사 기준 및 전역 심사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 전 하사는 ‘트렌스젠더 군인 변희수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도움으로 지난해 8월11일 계룡대 관할 법원인 대전지법에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전역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대전지법 행정2부(오영표 부장판사)는 다음달 15일 이 소송 첫 변론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여성으로서의 성적 정체성을 찾은 뒤에도 군 복무를 계속하고 싶어 하던 변 전 하사는 전역 처분 이후 이에 불복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군을 비롯한 우리 사회에 많은 논쟁거리를 던졌다. 특히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큰 사회적 논쟁 소재였던 성 소수자의 군 복무 허용 문제와 연결되면서 군의 조치와 성전환자의 군 복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그의 사망 소식에 방송인 하리수를 비롯해 관련단체와 누리꾼들의 추모 메시지가 쏟아졌다.

하리수는 4일 자신의 SNS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짤막한 애도 글을 남겼다. 하리수는 과거 ‘시사직격’ 방송에 출연해 “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20년 세월 흘렀는데 오히려 인권이 후퇴하면 후퇴했지, 더 진보되지 않았다.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에 배려심이나 인권은 후퇴한 것 같아 너무 소름이 끼쳤다”고 토로한 바 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트랜스해방전선’도 “본인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혔을 때 가해지는 모든 차별과 혐오를 견뎌야 했던 변 하사님 곁에 우리가 서고자 했다”며 “더는 한 개인이 이 모든 짐을 감당하며 희생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수많은 트랜스젠더퀴어 당사자들은 변희수 하사님의 용기 있는 선택을 보며 힘을 얻었고 위로를 받았으며 우리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금 여기에서 공유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페이스북에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사회. 한국 사회는 당연한 것을 꿈꾸는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며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이르게 왔던 변희수 하사님, 벌써 보고 싶어요. 미안해요. 애썼어요”라고 남겼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내고 “혐오와 차별로 가득한 세상에 온몸으로 파열구를 낸 ‘보통의 트랜스젠더들의 위대한 용기’를 기억하겠다”며 “그의 바람은 단 하나, 트랜스젠더 군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특별한 것도 아니고 국가인권위와 유엔마저 촉구할 정도로 당연한 권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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