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비판할수도 없고…” 윤석열發 블랙홀에 곤혹스런 청와대·민주당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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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프레임 통했나…고차방정식 앞에 ‘이유있는 침묵’ 택한 정부여당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내민 고차방정식 앞에 숨죽이고 있다. 긴 침묵을 깨고 나와 연일 여권을 성토하던 윤 총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하면서 청와대와 여당의 ‘긴장 속 침묵’은 더욱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됐다.

지난 1년 간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윤 총장과의 대립이 어떤 ‘숫자’를 가져오는지 똑똑히 확인했다. 검찰개혁을 외치던 정부·여당은 지지율 급락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 사이 윤 총장은 순식간에 유력 대선 후보로 입지를 다졌다. ‘레임덕’ 징후와 보궐선거, 정권을 향한 검찰 수사에 더해 ‘대망론’을 등에 업은 윤 총장의 사퇴 등 당분간 정치권은 곳곳에 놓인 변수를 두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여나갈 전망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이유있는 ‘침묵’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윤 총장이 사의 표명을 전후로 쏟아낸 강성 발언에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침착한 대응’을 기조로 내세웠지만, 검찰총장이 ‘국민의 관심’을 호소하며 작심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지켜보는 속내는 복잡하다. 

윤 총장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에 강력 반대하며 “직을 걸겠다”고 첫 입장을 밝혔을 때 청와대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는 3월2일 “검찰은 국회를 존중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이후 윤 총장의 발언 수위는 더 세졌다. 하루 뒤 윤 총장은 여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도를 “부패를 완전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명명하며 보란 듯이 경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또 하루 뒤 윤 총장은 결국 ‘직’을 던지고 문 정부와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윤 총장은 사퇴의 변에서도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여권을 자극했다. 

윤 총장이 속전속결 행보를 하며 보폭을 넓히는 사이 청와대와 여당은 그만큼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여권이 윤 총장의 작심 발언을 ‘일단 정지’ 상태로 지켜봤던 것도 이같은 맥락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이 쏘아올린 신호탄에 반응하기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힘든 ‘레임덕’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표명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윤 총장의 급발진에 올라탈 경우, 검찰과 야당의 공세에 제동을 걸 장치가 충분치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점도 골칫거리다. 

레임덕설(說)을 떨쳐내려면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당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가덕도신공항 건설이나 재난지원금 지급 등이 ‘윤석열 이슈’에 파묻혀 버릴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다. 보궐선거가 삐걱대는 조짐이 보이면 중수청은 물론 검찰개혁 관련 입법과 제도 정비 역시 여론의 힘을 받기 어렵다. 윤 총장이 승부수를 던지면서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론의 역풍이 불어닥칠 수 있어서다. 

민주당과 여당 관계자들의 언행에서도 이같은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 민주당은 3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과 ’윤석열’을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총장의 발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원론적인 답변만 덧붙였다. 그동안 검찰을 향한 공격 최일선에 섰던 김종민 최고위원도 “국민들이 보기에 ‘정치싸움 하는구나’ 이런 느낌이 들지 않게 차분하게 토론해서 입법이 충실하게 진행돼야 한다”고만 말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역시 ‘검찰과의 소통’에 방점을 두며 일단 정면충돌은 피하는 모양새다. 윤 총장의 거취와 중수청을 둘러싸고 금명간 검찰 내 ‘집단 반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법·검 갈등의 피로도와 검찰 인사를 둘러싸고 누적된 여론의 부메랑을 불러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 총장을 지렛대 삼아 보궐선거는 물론 레임덕을 부각해 차기 대선까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계산을 세워둔 모양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중수청 설립 움직임에 대해 “대한민국을 완전한 일당 독재로 가는 고속도로를 닦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총장이) 작심하고 말하지 않으면 오히려 직무 유기”라면서 윤 총장을 적극 엄호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도착해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도착해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여당의 시간, ‘윤석열의 시간’으로 바뀌나  

여권이 소극적 대응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윤 총장을 둘러싼 ‘대망론’ 때문이다. 윤 총장이 판을 짠 ‘여론전’에 청와대와 여당이 직접 반응하면, 추 전 장관 퇴임과 동시에 답보 상태에 빠진 그의 대선 후보 선호도를 끌어올리는 ‘반사효과’를 주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추 전 장관이 물러난 후 대선 후보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한 윤 총장으로서는 절호의 반등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여론전’을 띄운 뒤 직접 보수의 심장인 대구를 찾아 상징적인 발언을 던진 점, 마치 대선 후보 출정식과 같은 압도적인 현장 분위기가 대중에 그대로 노출된 점을 정치권 전체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며 거대 여당의 시간이 앞으로 ‘정치인 윤석열’의 시간으로 바뀔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여권 유력 대선주자들은 윤 총장의 사퇴를 감지한 듯 잇달아 견제구를 보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일 방송에 출연해 “윤 총장은 지금 검찰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 정치를 하고 있는지 구분이 안된다”고 했다. 정 총리는 또 윤 총장을 향해 “직을 내려놓고 당당히 처신하라”, “무책임한 국민 선동”이라는 맹비난도 퍼부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씀하셨다. 임명직 공무원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에 들어 있는 기준에 따라 행동해주시면 좋겠다”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외곽에서 윤 총장을 저격했다. 추 전 장관은 4일 윤 총장에 대해 “‘부패완판’이라는 신조어까지 써가며 국민을 겁박한다”고 비난했다. 이어 “일본의 특수부를 모방했지만 가장 강퍅하게 변질된 우리나라의 특수수사 관행을 검찰은 ‘나홀로 정의’인 양 엄호하고 있다"며 “과거사위원회가 정리한 사건도 뒤엎으며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며 ‘검찰 절대주의’로 가는 것은 시대착오적 행태”라고 꼬집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윤 총장이 이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우 의원은 윤 총장이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하는 등 최근의 행보에 대해 “점점 문재인 정부와 분리된 정치 집단의 수장처럼 행동한다. 정치 문법으로 할 거면 정치하겠다고 선언을 하라”고 직격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윤 총장을 향해 “연이어 신문에 (윤 총장 인터뷰를) 대서특필한 것을 보고 중대범죄수사청을 추진하는 의원들을 자극하려는, 그래서 파생적 여러 다툼을 불러 일으키려는 의도가 엿보였다”며 “그런 걸 보면 정치를 하겠구나, 대선 나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구나 생각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은) 사욕이 앞서고, 또 여론조사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걸 오히려 초조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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