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치밀했던 시간표…작심발언 사흘 뒤 ‘사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4 16: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尹, 속전속결 ‘여론전’…직 걸겠다→부패완판→사의 표명
與 “정치검찰의 기획 사퇴” vs 野 “정권 탄압에 헌법정신 파괴”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자신의 거취 관련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자신의 거취 관련 입장을 밝히던 중 눈을 감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를 불과 4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 인물인 윤 총장은 결국 사퇴를 결정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지난한 갈등과 여권의 난타 속에서도 끝까지 사퇴를 거부하던 윤 총장은 긴 침묵을 깨고 나온 직후 '직'을 던지는 초강수를 뒀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는 여권에 작심 발언을 쏟아낸 지 불과 사흘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시간여 만에 사의를 수용하면서 윤 총장의 정계 진출 시간표도 더욱 앞당겨졌다. 사흘 동안 초유의 검찰총장발(發) '여론전'과 그로 인한 후폭풍, 사퇴까지 쉴틈 없이 몰아치면서 정치권도 요동치는 모습이다. 검찰 수장으로서의 마지막 행보를 국민적 관심사로 밀어 올린 윤 총장의 최근 행보는 대권주자로의 발돋움까지 계산해 둔 전략이 함께 깔려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여당 몰아친 '윤석열의 입'

지난 2일 정치권과 여론의 이목이 윤 총장의 입에 집중됐다. 윤 총장이 취임 후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에서 중수청 설치에 강력 반발하며 "직을 걸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나왔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직접 국민의 관심과 여론의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기에 파장은 더 컸다.  

이어진 청와대의 경고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소통' 제안에 윤 총장이 한 발 물러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윤 총장은 다음날인 3일 대구고검·지검을 찾아 한층 더 강경한 어조를 택하며 여권을 압박했다. 윤 총장은 포토라인에서 기자들을 향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된다)"이라며 중수청 설치를 다시 한번 강도높게 비판했다.

전날 돌발 발언을 던져 모든 이슈를 흡수했던 윤 총장은 바로 다음날 징계 국면 이후 첫 내부결속 행보를 했고, 지지자들의 환호가 뒤섞이며 대선후보 출정식에 버금가는 분위기까지 연출됐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기소에 관련된 인물이 이같은 반응을 끌어냈기에 드라마틱한 효과는 더 컸다. 윤 총장이 대구에서의 공식 일정을 앞두고 작심발언을 쏟아낸 배경에 '정계 진출' 포석이 담겼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부패완판'이라는 비유를 썼다는 점도 윤 총장의 정계 데뷔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윤 총장은 또 직원들에게 "공정한 검찰은 국민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고 국민의 검찰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힘 있는 자도 원칙대로 처벌하는 것"이라며 "이는 헌법상 책무"라고 묘한 발언도 남겼다. 검찰 직원들에게 인사권자는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이지만 윤 총장 자신에게는 대통령으로 해석될 수 있기에 파장이 일었다. 대통령과 정권, 여당을 확실한 대립구도로 만들겠다는 뜻으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이틀 강공 발언을 쏟아낸 윤 총장은 사흘째인 4일 마침내 사의를 표명했다. 인터뷰와 내부결속 행보로 여론의 관심을 한껏 끌어올리고 여야의 대립 구도를 다시 한번 만든 뒤 급기야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신의 사의를 둘러싼 피로도가 쌓여 여론의 관심이 떨어지기 전 전격 사퇴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대검찰청 청사 현관 앞에서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고 한다"면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했다. 

윤 총장은 "검찰에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계 진출'과 관련한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윤 총장의 발언을 두고 곧바로 정계 진출을 가시화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의 결단이 나온지 1시간여 만에 사의를 수용했다. 이로써 윤 총장은 오는 7월24일 2년 임기를 불과 4개월여 앞두고 물러나게 됐다. 윤 총장은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시행된 후 취임한 22명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한 14번째 검찰 수장이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전격 사의를 밝혔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대검찰청 청사 현관 앞에서 "검찰에서 제 역할을 여기까지"라며 "오늘 총장직을 사직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전격 사의를 밝혔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대검찰청 청사 현관 앞에서 "검찰에서 제 역할을 여기까지"라며 "오늘 총장직을 사직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 연합뉴스

與 "피해자 코스프레" vs 野 "정권 탄압으로 헌법정신 파괴"

여권은 윤 총장의 사퇴를 '쇼'에 비유하며 정치 검찰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공격했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4일 브리핑에서 "얻은 건 정치검찰의 오명이요, 잃은 건 국민의 검찰이라는 가치"라며 "검찰 스스로 개혁 주체가 돼 중단 없는 개혁을 하겠다는 윤 총장의 취임사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 "사과 한마디 없이 국민을 선동하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정의에 대한 개혁은 하지 못한 무능하고 무책임한 검찰총장"이라며 "그런 검찰총장으로서 행한 사의 표명은 정치인 그 자체의 모습"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국민 위에 있는 정치검찰 본연의 모습을 보인 행태"라고 덧붙였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무책임한 정치 선언을 하면서 사퇴한 윤 총장에 이어 혹시라도 일부 검찰에서 사퇴가 이어진다면 최악의 정치검찰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윤 총장의 무책임한 사퇴로 검찰의 위상은 더 훼손됐다"며 "오히려 검찰개혁이 더 필요하다는 근거를 강화해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노웅래 최고위원은 SNS에 글을 올려 "직무정지도 거부하면서 소송까지 불사할 때는 언제고 임기 만료를 4개월여 앞두고 사퇴하는 것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이슈를 집중시켜 보궐선거를 유리한 쪽으로 끌어가려는 '야당발 기획 사퇴'를 의심케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끝까지 검찰의 이익만을 위해 검찰개혁을 방해하다가 사퇴마저 정치적 쇼로 기획해 '정치검찰의 끝판왕'으로 남았다"며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검찰총장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정치 행위를 일삼던 공무원의 사직. 유체이탈로 일관한 정치검사의 퇴장. 무모한 야심의 정치인 출현"이라며 "설마 제가 발의했지만 아직 통과되지도 않은 '판검사 출마제한법' 때문에 오늘을 택한 건 아니겠지요?"라고 비꼬았다.

최 대표가 언급한 법안은 '현직 검사나 법관이 공직선거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1년 전까지 사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이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윤 총장은 차기 대선일(2022년 3월9일)을 기준으로 1년 전인 이달 9일 전에 물러나야 한다. 

반면 야당은 윤 총장이 정권의 탄압에 못 이겨 결국 사퇴 수순을 밟게 됐다며 여권 책임론을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윤 총장 사의표명과 관련해 "지금까지 문재인 정권의 불의에 맞서 싸워왔던 윤 총장이 이제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음을 밝히면서 사퇴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체계를 수호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윤 총장이 수차례 지적했듯 헌법정신 파괴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 입장 표명하는것이 맞다고 본다"고 쏘아붙였다. 

주 원내대표는 윤 총장과 회동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조금 시간을 갖고 윤 총장 뜻도 확인해보겠다"면서 "어떤 식으로 헌정질서를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할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는 시간 있을거라고 본다"고 답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윤 총장 사퇴가 확정된다면, 이 정권의 기세도 오래 못 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권 폐지가 현실화하면 "헌법정신과 법치, 국민 상식은 헌신짝처럼 내버려지고, 온갖 불의와 부패, 거짓과 기만, 반칙과 특권이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