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몸은 늙어가도 음악은 날로 새롭다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6 17: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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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산조 명인 여섯 분, 합주 음악의 최고봉을 이룬 네 단체의 명곡·명연주 무대에 진행자로 함께하게 되었다. 1951년 4월 피난지 부산에 문을 연 국립국악원이 개원 70주년을 맞아 특별 기획한 ‘일이관지(一以貫之)’ 공연이다. ‘이런 기회가 내게 오다니….’ 그 어떤 훈장을 받은 것보다 더 큰 영예로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무대에 오를 명인 한 분 한 분의 생애 자료와 연주곡목을 다시 정리하며 음악의 격에 누가 되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대 위에서, 음악과 음악 사이에 넘치지 않게 보탤 ‘말’을 다듬어 보았다. 그동안 공연 진행자로 무대에 오르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 국립국악원 개원 70주년 기념이라는 묵직한 타이틀, 우리 시대의 대표 원로 명인들, 그리고 현대사의 질곡을 겪으며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는 명곡들을 현장에서 온전히 누리게 되었으니 더욱 특별한 거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이번 공연에 ‘일이관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일관한다’는 이 말은 어느 날 공자와 제자들이 나눈 대화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는 의미, 일사천리로 막힘없이 밀고 나간다는 뜻으로도 통한다.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공연 제목을 여러모로 헤아려봤다. 현대 국악 전승 70년. 그 중심에서 개원 이후 지금까지 이루려는 바를 단 한 번도 잊지 않았고, 지치지 않고 해 왔다는 국립국악원의 자부심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겠다는 맹세로 들렸다. 그리고 더욱 반가운 것은 그 모든 것을 일관하는 ‘이치’의 하나로 ‘사람’을 꼽았다는 점이다. 오랜 음악 역사, 그 무형의 유산이 ‘사람’, 그중에서도 우리 예술에 뛰어난 ‘명인’들에 의해 이어져왔음을 알아봐 달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든든했다.

무형의 음악 유산은 민족 특유의 사유방식과 지혜, 세계관, 가치관, 심미관, 정감 등이 응축된 결정체다. 또한 민족사의 수많은 정보와 각양각색의 표현 형식이 반영된 집단창작의 성과다. 오랜 세월 동안 멈추지 않고 변화·생성되며 우리들이 지난날의 삶을 이해하고 오늘의 지혜로 삼아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는 토대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음악 명인들은 민족문화의 기억을 예술로 승화시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매개자로서 ‘살아 있는 음악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이번 무대에 오르는 명인들은 ‘일이관지’의 뜻을 음악으로 실천하신 분들이다. 이분들은 음악을 ‘듣고 배워’ 소리가 가는 길의 원리를 스스로 체득하고, 남다른 예술세계를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 새롭게 ‘일신우일신(一新又一新)’의 일상을 헤쳐왔다, 그런 까닭에 비록 명인의 몸은 늙을지언정 음악은 늙지 않으며, 매일 새로 움터 나서 또 다른 가지를 뻗고 또 다른 꽃을 피운다. 매일매일 좋은 음악의 나날이다.

명인들의 음악 품은 넓고도 깊다. 악기 한 가지, 곡명 하나로 호명되는 그들의 음악 이면에는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음악 자원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남다른 음악 환경에서 성장하며 들려오는 악가무를 자연스럽게 다 받아들이고, 그중에서 특별히 애정을 기울여 갈무리해 둔 음악 언어들이 화수분처럼 자리 잡고 있다가, 언제든 명인이 마음먹은 대로 소리 길에 합류해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음악’으로 창조된다. 이것이 명인들의 무르익은 연주 속에서 우러나오는 ‘생기(生氣)’의 비밀이며, 우리 음악의 맥을 이어가는 값진 에너지다.

김일구, 원장현, 김무길, 지성자, 이종대, 홍옥미 등 산조 명인 여섯 분과 정악 및 민속악 합주의 최고봉을 이룬 국립국악원, 민속악회시나위, 삼현육각보존회, 정농악회 등 네 단체의 공연 무대에서 우리 예술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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