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심위에 ‘디지털 성범죄’ 민원 1888건 방치된 이유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6 14: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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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임시휴업에 3개월간 민원 5만3000건 쌓여
여야 신경전 탓에 ‘공백 상태’ 길어져…‘골든타임’ 놓칠 우려

매일 신고가 쏟아지는데 출동할 사람이 없다. 촌각을 다투는 사안도 속수무책 대기 상태다. 지난 1월부터 3개월째 심의위원이 구성되지 않아 심의 공백을 겪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얘기다. 방심위는 1월29일, 4기 위원들의 임기가 끝난 이후 5기 출범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의위원을 각각 추천하는 여야가 명단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고 신경전을 벌이는 탓이다.

방심위 심의 업무는 멈췄지만 심의 민원은 매일 쏟아지고 있다. 하루 1000여 건씩 방송·통신·디지털 성범죄 관련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4기 방심위 활동이 종료된 1월30일부터 지난 4월5일까지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은 7만5937건이다. 이 중 중복 접수, 타 기관 이첩 등의 이유로 사무처에서 자체 처리한 건수를 제외한 5만2999건이 지금 기약 없는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백신이 치매를 유발한다는 정보가 떠돈다’ ‘불법 도박 사이트가 성행하고 있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살인 장면이 자극적이다’ ‘성범죄 촬영물이 공유되고 있다’ 등. 모두 방심위 심의 문턱에 쌓여 있는 사안들이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문제 장면 못 걸러

특히 불법 촬영물 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방심위는 골든타임을 24시간으로 간주한다. 그 안에 유포를 차단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경중 방심위 사무총장은 4월14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민원을 접수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가장 송구스럽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물론 불법 촬영 영상 등 증거가 확실한 경우 별다른 심의 과정 없이 자율규제(심의를 거치지 않고 삭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방심위 직원들은 2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심의를 거쳐 처리해야 할 상당수 불법 콘텐츠들이다. 민 총장은 “영상은 없는데 성범죄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명시했거나 영상을 판매하고 있다는 글의 경우 자율규제 대상이 아니다. 심의를 거쳐야 한다. 피해를 양산할 수 있어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심의 절차에서 멈춰버린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1월30일 이후 접수돼 대기 중인 디지털 성범죄 민원은 1888건에 달한다(4월5일 기준).

불법 도박·마약 판매·금융 피싱 사이트 신고나 코로나19와 관련한 온라인상 잘못된 정보에 대한 민원 역시 3개월 새 약 6만6000건이 접수됐다. 이 중 4만5000여 건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방심위 분류 중 ‘사회혼란 야기 정보’에 속하는 코로나19 관련 민원의 경우 유독 신중하고 엄격한 판단이 요구된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동시에 정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사무처 자체 처리가 아니라 반드시 심의위원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게 방심위의 원칙이다. 4월12일 현재 심의를 기다리는 코로나 관련 민원은 166건에 이른다. 이렇게 쌓인 민원들은 새로 구성될 심의위원들의 수개월 치 일거리가 된다. 향후 발생할 심각한 업무 적체 현상도 현재 방심위 직원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일러스트 김세중

민경중 총장 “규정 하나로 공백 막을 수 있어”

갑갑한 심의 공백의 원인은 정치권, 특히 국회에 있다. 방심위원은 3년마다 청와대와 여당이 6명, 야당이 3명을 추천해 새로 위촉한다. 문제는 여야가 이 추천 명단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3월초 민주당은 추천위원 명단을 과방위에 제출하며 야당의 조속한 명단 제출을 촉구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여당이 대통령 추천 명단을 공개해야만 위원 추천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유는 올 초부터 대통령의 추천 몫인 방심위원장에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정 전 사장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역시 야당의 무책임을 지적하며 맞서고 있다.

시사저널이 취재한 과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의 입장은 팽팽했다. 이용빈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이 괜한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며 “공당으로서 무책임한 태도가 방심위를 식물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승래 과방위 민주당 간사 역시 “방심위 마비가 코로나 방역 전선 위협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인데 야당은 서두르자는 요청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빠른 명단 확정을 재촉했다. 반면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청와대 명단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으려는 민주당의 태도에서 뭔가 켕기는 게 있어 보인다. 야당 추천 명단을 서둘러 받아 위원 구성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방심위 출범을 논의해야 할 과방위 회의는 3월17일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여야는 보궐선거를 치르느라 회의를 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나마 올해 열린 다섯 차례의 과방위 회의 중 방심위원 추천과 관련한 언급은 2월24일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이 회의에서도 정연주 전 사장의 편향성과 야당의 무책임에 대한 여야 공방전이 짧은 대화의 전부였다. 패를 먼저 보여주지 않으려는 여야의 기싸움이 방심위 정상화를 늦추고 있는 셈이다.

방심위 지각 출범은 습관적으로 반복됐다. 2014년 2기와 3기 사이에 35일 공백이 있었다. 2017년 6월 3기가 끝나고 4기가 출범하기까진 무려 230일, 7개월 넘는 공백이 발생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바른미래당·국민의당 등 야당 간 위원 추천 권한 배분을 둘러싸고 지난한 신경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 사이 방심위엔 21만 건에 달하는 심의 안건이 쌓이면서 이후 출범한 4기 방심위원들이 6개월 이상 가중한 업무에 시달리기도 했다.

민경중 방심위 사무총장은 간단한 제도 개선 하나면 지금과 같은 심의 공백과 피해 양산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방심위가 민간 독립기구로서 여야와 대통령의 추천을 고루 받아 구성되는 시스템이니만큼 앞으로도 이들의 유불리 싸움으로 공백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다. 현행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차기 위원이 구성될 때까지 전임 위원의 임기를 연장한다’는 규정만 추가해도 혼선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민 사무총장은 해당 개정에 대한 국회 논의가 종종 있었지만, 번번이 다른 쟁점법안들에 밀려 추진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족이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겠습니까.” 민 사무총장은 방심위 업무의 시급함에 대한 정치권의 공감이 부족하고, 조속한 출범에 대한 의지가 약한 데 진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 2월 여야 과방위 간사들에게 빠른 위원 선임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3월31일엔 기자간담회를 열어 방심위 출범 지연으로 인한 각종 피해 상황을 알렸지만, 선거전이 한창이던 정치권에선 반응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정부나 정치권 일각에선 방심위 심의가 지연되는 데 대해 ‘방심위가 업무에 나태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심의 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위원들이 위촉됐을 때 곧장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직원들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는데 이런 지적들이 방심위 내부로 향할 때 아쉽고 안타깝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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