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이재명 지원설’ 솔솔…대선판 주도하는 세 명의 킹메이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1 10:0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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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이해찬 野 김종인·김무성…세 고수의 킹 메이커 대전
김종인·김무성은 尹 영입 주도권 놓고 2차전 예고

‘킹’보다 ‘킹메이커’가 더 주목받는 정국이 전개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금 정치권엔 ‘킹메이커’들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여권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야권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각 7선·5선·6선 국회의원을 지낸 관록으로, 각종 선거 정국에서 당을 이끌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경험이 있다. 현재 원외에 머무르면서도 원내를 장악하고 있다.

4·7 재보선 이후 여야는 각각 새 지도부를 꾸리고 있지만, 좀처럼 ‘강한’ 리더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현재 여야 대선주자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진영 내 조직력이 약한 ‘비주류’들이다. 이들을 대신해 세력을 모으고 조직의 구심점 역할을 해 줄 사령탑이 필요하다.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서 세 킹메이커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왼쪽부터)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 180석 승리 재현 꿈꾸는 ‘해찬대원군’

여권에서 이해찬의 이름은 여전히 선거 승리에 대한 ‘보증수표’로 통한다. 민주당에서 20년 이상 당직 생활을 해 온 한 관계자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라는 세 대통령을 배출할 때 가장 결정적으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해찬”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도 7선에 이르기까지 선거에서의 큰 패배 경험이 없다. 특히 지난해 이해찬 대표 체제에서 이뤄낸 총선 180석 당선은 민주당 내에서 ‘이해찬 리더십은 곧 검증된 리더십’이라는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지난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한 한 관계자는 이해찬 전 대표에 대해 “선거를 감이 아니라 통계와 조직으로 치르는 사람”이라며 “그가 그린 그림대로 상황이 흘러간다. 그러니 중요한 고비 때마다 당에서 그를 찾는 것”이라고 평했다.

보궐선거 패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민주당으로선 지금 확실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 당 대표 선출 과정을 거치며, 이 전 대표가 곧 구원투수로 등판할 거란 관측이 더욱 많아졌다. 당 대표 후보들의 리더십이 전반적으로 약할뿐더러, 이 전 대표가 홍영표·우원식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으며 물밑 행보를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앞서 이해찬계로 분류되는 윤호중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된 것도 이 전 대표 등판론에 힘을 실었다.

여기에 최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귀국으로, 이해찬-양정철 두 톱니바퀴를 중심으로 대선판이 짜일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이 전 대표가 직접 그를 불렀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당내에선 이미 총선에서 나타난 둘의 콤비플레이가 대선에서도 재현될 거란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보궐선거 이후 당이 전당대회에도 불구하고 계속 침체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양정철 전 원장이 자의 반 타의 반 귀국 일정을 앞당겼을 것으로 본다. 이해찬·양정철 모두 비교적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만큼, 친문 주자를 고집하기보다 ‘될 사람’을 띄우는 쪽으로 대선 경선판을 짜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찬대원군’이 힘을 실을 ‘킹’은 누가 될까. 이 전 대표는 주변에 자신의 의중을 좀체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당 일각에선 이 전 대표가 이재명 지사 쪽으로 마음의 추를 조금씩 옮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 근거로 ‘물이 들어와야 배도 띄울 수 있다’는 이른바 ‘강물론’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지지도가 낮은 친문 주자를 억지로 띄우기보다, 물 들어온 이 지사에게 확실하게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의미다. 당 일각에선 한때 이 전 대표가 원내대표 윤호중, 당 대표 우원식, 대선후보 이재명으로 이미 밑그림을 짰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물이 들어와야 배도 띄울 수 있다’

이 전 대표 측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지사와 관련된 이 전 대표의 그간 행보와 발언을 살펴보면, 둘 사이의 연대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이 지사를 견제하는 일부 친문 세력을 중심으로 대선 경선 일정을 미루자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이 전 대표는 “대선후보는 일찍 확정 지을수록 좋다”며 일축한 바 있다. 그보다 앞서 이 지사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을 때, 출당이나 징계로부터 막아준 이 또한 이 전 대표였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지사는 이미 혹독한 검증이 끝난 사람”이라며 현재의 높은 지지도가 계속 유지될 거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 지사 역시 이 전 대표와 개인적으로 식사를 했다며 공개적으로 교류 사실을 밝힌 바 있다.

향후 대선 정국에서 민주당이 떠안을 가장 큰 과제는 비문(非文)인 이 지사와 당내 친문 주류 세력 간 분열이다. 분열은 곧 필패니만큼, 이 관문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대선에서 민주당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당내에선 이들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도 이 전 대표가 유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친문 좌장’으로서, 친문 세력을 설득하고 사전에 교통정리를 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최진 원장은 “이해찬 전 대표는 친문의 진정한 재집권을 위해서라면 비문 후보 지원은 물론, 친문의 2선 후퇴론을 결단하는 등 여러 역발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당내 친문 세력을 충분히 설득할 리더십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 전 대표 등판이 곧 선거 승리라는 공식도 이젠 옛말이라는 정반대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당을 향한 민심은 이미 지난해 총선 때와 크게 달라져 있으며, 당시 그의 강한 리더십에 피로감을 호소했던 당 일각의 반발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인물이니만큼, 그의 등판이 자칫 중도 민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일부 우려도 거론된다.

 

▒ 제3지대에서 새 정치 도모하는 김종인

야권에선 국민의힘과 한발 떨어진 곳에서 두 킹메이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김무성 전 대표가 각자 대선 정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4·7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국민의힘을 떠나, 이른바 제3지대에서 저변을 넓히려 하고 있다. 당 밖을 나서자마자 작심한 듯 당을 저격하고 있는 김 전 위원장의 대선 청사진은 명확하다. 바깥에서 유력한 대권주자를 띄워 야권의 무게추를 자신에게로 옮겨놓겠다는 것이다.

그간 김 전 위원장의 시나리오 속 ‘유력한 대권주자’ 1순위는 단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었다. 그는 일찍이 ‘별의 순간’을 언급하며 윤 전 총장을 향해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최근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나고, 사석에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언급하는 등 다른 대권 잠룡들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윤 전 총장에게 신호를 보냈지만 기대했던 반응이 바로 나오지 않자 자존심이 상했다는 전언이다.

정치권에서 김 전 위원장은 먼저 문을 두드리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상대방에서 항상 먼저 찾아가 ‘삼고초려’를 해야 함께할 수 있는 존재로 통했다. 그는 그렇게 2004년 이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 중 총 여섯 차례 선거를 총괄하거나 수습하는 역할을 했다. 보수·진보 한 진영에 국한되지 않았다. 특히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후보의 거듭된 부탁으로 경제 사령탑을 맡았고, 2016년엔 문재인 민주당 대표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이고 당 비대위원장 자리를 수락해 두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끈 바 있다. 이번 재보선 역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끈질긴 러브콜이 이어지자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향후 대선 정국에선 김 전 위원장 스스로의 발걸음이 바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과 이별한 후 바닥에서 다시 새판을 짜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킹을 찾아 나설 필요성이 생긴 탓이다. 윤 전 총장을 비롯해 야권 대선주자들이 그에게 얼마나 화답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에서도 계속 주자들과 접촉하고 있으며, 특히 윤 전 총장을 향해선 끊임없이 입당을 권유하고 있다. 지금껏 여당이든 제1야당이든 유력 정당에서만 선거를 치러온 탓에 제3지대에서 대선을 치르는 데 필요한 조직력과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전직 국민의힘 의원은 “어차피 단일화할 수밖에 없는 우리 당을 (김 전 위원장이) 왜 그렇게 몰아붙이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후보 간 단일화보다 우리 당과 김 전 위원장의 단일화가 더 어렵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 ‘두 번의 실패는 없다’ 각오 다지는 김무성

4·7 재보선 후보들의 출마 선언과 단일화 과정에서 원외 테이블 세터 역할을 한 김무성 전 대표는 일찍이 차기 대선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는 전·현직 의원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마포포럼을 중심으로 꾸준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마포포럼 자체가 대선 국면에서 킹메이커 역할에 전념하겠다는 취지로 그가 지난해 출범시킨 조직이다.

김 전 대표는 킹메이커로서 쓰린 실패의 기억을 갖고 있다. 2016년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렸지만, 2017년 탄핵 국면에서 새누리당을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한 그는 자신이 킹이 되길 포기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킹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도중에 낙마했고, 이후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를 전면에서 도왔지만 결과는 미미했다.

이번 대선을 준비하는 김 전 대표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당 외연에서 최대한 돕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4월21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마포포럼은 2선에서 일할 것이며 절대 그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 전 총장을 비롯해 영입이 필요한 주자들에 대해서는 때맞춰 적극적으로 접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통합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 이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등판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그는 단번에 일축했다.

김 전 대표의 측근들은 “그가 킹메이커로서 갖고 있는 최우선 원칙은 무조건 야권 잠룡들 간 대결은 당 안에서 치러져야 하며, 단일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라고 전한다. 김 전 대표와 함께 마포포럼을 이끌고 있는 강석호 전 의원은 “김 전 대표는 2017년 반기문 총장을 돕기 위해 당을 나왔던 당시 상당히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반드시 당이 중심이 돼 단일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번 재보선에서 김종인 위원장과의 갈등을 무릅쓰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밀어붙였던 것도, 그리고 윤 전 총장의 입당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과 김무성 전 대표 간 야권 잠룡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주도권 다툼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종국엔 결국 다시 손을 잡게 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전 위원장으로선 국민의힘이 가진 103석의 세(勢)와 대선을 치르는 데 필요한 재정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김 전 위원장 스스로도 제3지대 자력에 의한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공언해 온 만큼 어떤 형태로든 국민의힘과 단일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역시 보수화된 기성세력만으로는 확장성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민주당에 승리하기 위해선 김 전 위원장을 비롯해 중도 지대에 있는 인물들과의 연대는 불가피하다.

킹메이커는 으레 ‘선거의 기술자’로도 불린다. 즉, 이들이 주도하는 선거는 철저히 승리 공식에 따라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자연히 미래지향적 어젠다가 제시되는 정책선거보다 정쟁만이 난무하는 공허한 선거로 전락할 우려도 제기된다. 게다가 현재 거론되는 킹메이커들은 정치권에서도 대표적인 올드보이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는 요원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진 원장은 “올드한 킹메이커들에 의해 좌우되는 선거가 이번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자칫 킹보다 킹메이커가 더 힘을 발휘하고 조명받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그리 건강한 정치 흐름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킹메이커의 역할에서 킹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그 이후 ‘퇴진의 때’, 즉 ‘뒤로 물러서 있을 타이밍을 아는 것’ 역시 중요한 자격 요건 중 하나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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