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곰이’가 ‘콜라보 괴물’ 이 됐다…‘곰표’ 콜라보의 성공 키워드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6 10:00
  • 호수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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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업고 시장에 날아오른 ‘곰표’
곰표의 콜라보레이션은 무엇이 달랐나

코카콜라의 북극곰은 더 이상 ‘핫하지’ 않다. 원조 백곰이 귀환했다. 지금 대한민국 유통업계를 이끄는 백곰. 곰표 밀가루를 만드는 대한제분의 마스코트 ‘표곰이’다. 올해 69세인 이 곰 한 마리가 현재 유통시장을 새롭게 열어젖히고 있다. 방법은 콜라보레이션. 업종 간 경계를 넘는 콜라보 제품이 대세가 되자 많은 기업이 펀슈머를 잡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반짝 인기를 끌거나 조용히 사라졌다. 곰표는 달랐다. 의류, 화장품, 식품 등 다양한 콜라보에서 모두 선방했다. 곰표 밀맥주와 표문(뒤집으면 곰표) 막걸리는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됐고, 곰표 팝콘은 편의점 봉지 과자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곰표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왜 곰표의 콜라보는 3년째 롱런하고 있을까. 무엇이 오래된 곰표를 ‘촌스러운 것’이 아닌 ‘가장 힙한 것’으로 여겨지게 했을까. 곰표 콜라보의 성공을 이끈 코드들을 살펴봤다.

ⓒ대한제분 제공

레트로가 부흥한 ‘타이밍’ 잘 잡았다

곰표를 밀가루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는 중장년층과 달리, MZ세대는 곰표를 몰랐다. 2018년 시장조사기관 엠브레인이 20~39세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밀가루’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를 묻는 항목에 ‘곰표’라고 답한 사람은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그동안 대한제분의 매출 대부분이 기업 간 거래(B2B)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곰표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터다. 이렇게 되면 곰표의 구매층은 어느 순간부터 끊기게 된다. MZ세대와의 접점을 넓혀 브랜드를 활성화하는 것. 그것이 곰표가 콜라보를 시작한 이유다. 그래서 기본 요건은 ‘재미’였다. 오래된 기업이 젊은 층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반전과 위트가 필요했다.

시작은 온라인 플래그십 스토어였다. ‘곰표 레트로 하우스’를 열고 곰표 밀가루의 옛 패키지 디자인을 적용한 굿즈를 선보이는 것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로고였던 백곰도 표곰이 캐릭터로 일으켜 세웠다. 타이밍이 좋았다. 마침 곰표가 젊어지기로 결심한 2018년, 레트로(Retro) 열풍이 불고 있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표’라는 복고적인 네이밍, 단순하고 투박한 곰표의 디자인은 특별한 것을 찾아 ‘인증’하는 것을 좋아하는 MZ세대의 니즈(욕구)와 맞아떨어졌다. 곰표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듬직한 백곰과 커다란 밀가루 포대를 연상하게 하는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그해 여름에는 밀가루 포대 같은 티셔츠를, 겨울에는 백곰을 떠올리게 하는 하얗고 투박한 곰표 패딩을 내놨다.

여기에 MZ세대의 SNS 인증 열풍이 더해지자 콜라보 제의가 쏟아졌다. 손잡을 업체는 신중하게 골랐다. 단순한 흥미만 유발해서는 브랜드를 오랫동안 각인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밀가루=곰표’의 공식을 적용했다. 대표 제품인 밀가루의 특성을 부각할 수 있는 콜라보 제품을 찾은 것이다. 뉴트로(New+Retro) 콘셉트가 부흥하면서 이색 콜라보를 시도한 제품은 많았지만, 곰표의 제품들이 유독 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롱런한 비결은 바로 이 ‘원조성’과 ‘연관성’이었다. 제품의 이미지와 콜라보한 제품의 이미지가 더해져 소비자들의 관심이 극대화됐다.

 

‘밀가루=곰표’라는 원조성·밀가루 이미지에 주목

곰표 팝콘은 곰표 밀가루 포대의 느낌을 냈다. 곰표 밀가루만의 복고풍 서체와 표곰이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와 밀가루 포대에 팝콘이 담긴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밀가루 브랜드이니, 맥주도 ‘밀맥주’로 만들었다. 맥주 제조사 세븐브로이와 손잡고 개발한 곰표 밀맥주에도 곰표 밀가루 포장 특유의 디자인을 입혔다. 올해 쿠캣마켓과 손잡고 출시한 곰표 떡볶이는 곰표 밀가루로 만든 밀떡 제품이다. 한강주조와 함께 만든 표문 막걸리에는 밀 누룩 효모가 들어갔다. 성공한 곰표의 콜라보 제품들에는 곰표 밀가루의 DNA가 들어 있는 셈이다. 밀가루 대표 제조회사가 만든 밀가루 콜라보 제품들은 ‘품질이 좋을 것’이라는 인식까지 더하는 효과를 냈다.

밀가루를 적용한 콜라보 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먹혔다’. 그래서 한발 더 나아갔다. 밀가루는 하얗다. 여기에 착안해 곰표 협업의 유니버스를 확장했다. 흰색, 그리고 깨끗한 이미지에 주목해 제품들을 출시한 것이다. 뷰티 브랜드 스와니코코와 협업한 곰표 밀가루 쿠션은 밀가루처럼 하얀 케이스 제품 겉면에 표곰이 이미지와 ‘하얘져요’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실제로 미백 기능성 성분도 넣은 데다, 진짜 ‘밀가루’가 들어갔다는 소식에 입소문이 이어졌다. 클렌징폼과 핸드크림, ‘하얀 미소’를 만들어준다는 치약 역시 밀가루의 깨끗한 이미지와 하얀 색상에 주목한 결과물이다. 설거지할 때 기름기를 없애기 위해 밀가루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밀가루 성분이 함유된 곰표 주방세제까지 탄생시켰다.

곰표 밀맥주는 맥주 시장의 기존 강자들을 밀어내고 CU 맥주 매출 1위 자리에 등극했다.ⓒBGF코리아 제공
곰표 밀맥주는 맥주 시장의 기존 강자들을 밀어내고 CU 맥주 매출 1위 자리에 등극했다.ⓒBGF코리아 제공

조합성 고려한 시너지 효과…자체 제품도 출시 시작

곰표의 콜라보 마케팅에는 영역이 없다.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적’도, ‘경쟁사’도 협업의 대상이다. 사실 곰표의 의류 콜라보는 빅사이즈 의류업체인 4XR이 무단으로 곰표의 브랜드를 도용해 티셔츠를 만든 것에서 시작됐다. 대한제분은 항의하지 않고 협력을 제안했다. 다섯 가지 디자인의 티셔츠와 패딩 등 ‘곰표 의류’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밀가루 시장에서 경쟁하는 CJ그룹의 계열사인 CJ CGV와 손잡고 곰표 밀가루 포대에 팝콘을 담아 팔기도 했다. 이때부터 곰표의 콜라보는 본격화된 셈이다.

최근에는 커피 전문점 할리스와 협업해 표곰이를 활용한 이글루 모양의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크로플 등을 출시했다. 물론 곰표 밀가루를 이용한 제품이다. 대한제분은 베이커리 카페 아티제를 운영하는 보나비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주로 오피스가에 위치해 30대 이상을 겨냥하고 있는 아티제와 달리, 할리스는 20대를 주 타깃으로 한다.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 경쟁사인 할리스와 적극적으로 손잡은 결과물이다.

곰표가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에는 ‘푸드 페어링’도 있다. 밀맥주의 인기에 힘입어 안주류도 상승세다. 곰표 팝콘은 곰표 밀맥주보다 1년 먼저 출시됐다가, 밀맥주가 출시된 6월부터 매출이 역주행해 늘어났다. 곰표 밀맥주는 CU 편의점 캔맥주 판매 1위를, 곰표 팝콘과 곰표 나쵸는 CU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봉지 과자 1·2위를 독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맥주와 나쵸, 맥주와 팝콘의 조합을 밀었다면 이제 맥주와 너겟이다. 곰표는 현재 판매 가도를 달리고 있는 곰표 밀맥주의 안주로 활용할 수 있는 곰표 치킨 너겟을 새롭게 내놨다. 지금까지의 콜라보 형식과 다르게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을 통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곰표 밀맥주와 곰표 떡볶이의 조합, 지금 MZ세대에게 가장 핫한 막걸리인 표문 막걸리와 너겟의 조합도 곰표가 밀고 있는 푸드 페어링이다.

곰표가 대한민국 유통업계를 흔든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그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출시 일주일 만에 30만 개를 완판시켰던 곰표 밀맥주는 이제 2주에 300만 개가 팔린다. 전통의 맥주 브랜드인 카스와 하이네켄 등을 제치고 CU 전체 맥주 중 매출 1위를 찍었고, 수제 맥주 열풍까지 불러왔다. 곰표의 ‘밀가루 화장품’은 2019년과 2020년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편의점 화장품 매출 신장률을 두 자릿수로 늘렸다.

콜라보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제품의 특성을 부각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까지 불식시키려는 것일까. 이제 브랜드 이미지를 제대로 끌어올린 곰표는 ‘콜라보의 선’을 넘어, 국수와 너겟 등 밀가루를 활용한 제품들을 직접 내놓고 있다. 재밌고 흥미로운 곰표의 브랜드 색깔은 계속 가져간다는 계획이다. ‘곰표체’라는 무료 폰트를 배포하면서 젊은 소비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기업 곰표는 3년째 마주하고 있는 1020세대의 뜨거운 호응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돌아온 백곰의 다음 여정을,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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