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사람들’이 말하는 ‘정치인 윤석열’
  • 이원석·김종일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4 10:00
  • 호수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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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완성할 ‘불평등·중산층·청년·실용’ 4가지 키워드 담아
“여성과의 접촉면 넓혀야” 지적도

윤석열은 어떤 사람인가.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이고, 그 해결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고 있을까. 앞으로 국민이 ‘정치인 윤석열’에게 수없이 던질 질문이다. 대선까지는 이제 9개월도 채 안 남았다. 사실상 정계 진출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선 9개월간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갈리게 된다. 

윤 전 총장이 지난 3월4일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후 벌써 100일이 지났다. ‘정치인 윤석열’은 대체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칭찬도 비판도 아직 섣부르다. 그는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잠행 모드를 이어가며 전문가들을 찾아 ‘열공’하는 모습을 주로 노출하고 있다. 간간이 제1야당인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만나고는 있지만 그들이 자신을 대변한다는 느낌을 주는 모양새는 피하고 있다. 국민의힘 입당에 대한 입장은 물론 각종 현안에도 말을 아끼고 있다. ‘간보기 정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 겸 이회영기념관 개장식에 참석하며 퇴임 후 첫 공식 행보에 나섰다.ⓒ시사저널 이종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 겸 이회영기념관 개장식에 참석하며 퇴임 후 첫 공식 행보에 나섰다.ⓒ시사저널 이종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고 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이 ‘친구’로 지목한 사람은 훗날 대통령이 됐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 발언은 대선 직전이었던 2002년 11월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말처럼 사람을 알려면 그 주변을 보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이후 100일간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공개했다. 그 자체가 바로 ‘정치적 메시지’다. 사실상 대선주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그가 만난 사람들은 윤 전 총장이 ‘대통령감’이 되는지 아닌지를 국민이 판단할 수 있는 제1 근거 자료가 된다. 그렇기에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 윤석열’이 만남을 공개한 ‘윤석열의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윤 전 총장의 측근들도 이런 해석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의 한 핵심 측근은 6월9일 기자에게 “‘정치인 윤석열’의 행보는 지난 3월 현 정부에 반기를 들고 검찰을 떠나는 그 순간 이미 시작됐다”고 밝혔다. 지난 100일간 정치 행보를 했다는 얘기다. 이 측근은 검찰총장 퇴임 이후 드러난 그의 행보와 그가 만난 사람들을 보면 정치인 윤석열의 ‘방향성’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해석의 시간이다. 검사가 아닌 정치인, 대선주자 윤석열의 정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먼저 그가 최근 보인 공개 정치 행보를 볼 필요가 있다. 윤 전 총장은 6월초부터 사실상 대권 출사표를 던지며 공식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6월5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뒤 베트남전 및 대간첩작전 전사자 유족을 만나 위로했다. 정치인들이 임기를 시작하거나 정치적 변곡점을 맞을 때 현충원을 찾는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정치 행보로 해석됐다. 그는 현충원 방명록에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앞서 윤 전 총장은 지난 1월4일 검찰총장 재직 당시 현충원 방명록에 “조국에 헌신하신 선열의 뜻을 받들어 바른 검찰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썼다. ‘만들겠다’고 한 대상이 ‘바른 검찰’에서 ‘분노하지 않는 나라’로 바뀌었다. 대선주자로서 ‘제1 메시지’를 문재인 정부를 향한 비판으로 낸 것이다.

6월9일에는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했다. 윤 전 총장은 우당 선생의 증손자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죽마고우(竹馬故友) 사이다. 이날 윤 전 총장은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우당과 그 가족의 삶은 곤혹한 망국의 상황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생하게 상징한다. 한 나라가 어떤 인물을 배출하느냐와 함께 어떤 인물을 기억하느냐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난다.” 이 발언은 미국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인물에 대한 기억의 중요성을 환기하면서, ‘인물 배출’에 대한 이야기도 강조했다. 맥락은 다르지만, 윤 전 총장도 지난 100일간 다양한 인물을 만났다.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

‘공정’ 실현 위한 노동·경제 전문가 찾아

윤 전 총장의 ‘만남 정치’는 3월19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김 명예교수는 101세의 철학자다. 그는 당시 “진영을 가리지 말고 인재, 전문가들과 함께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후 윤 전 총장은 이철우 교수와 그의 부친이자 원로 정치인인 이종찬 전 원장과 만찬을 갖기도 했다.

김형석 명예교수의 조언 때문이었을까. 이후 윤 전 총장은 ‘열공 모드’를 이어갔다. 경제와 외교안보, 산업(반도체), 민생(자영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주변의 추천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찾기도 하면서 전문가들과 접촉했다. 사전에 자료를 받아 ‘형광펜으로 밑줄 쳐가며’ 공부했다. 그를 만난 대다수 전문가는 한목소리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는 인상”이라고 전했다.

그가 제일 처음 찾은 ‘과외교사’는 노동·복지 전문가인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였다. 정 교수는 한국 사회의 핵심적 모순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지목하고 오랫동안 천착해 왔다. 그는 청년 일자리 문제와 불평등·양극화의 핵심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정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이 왜 제일 먼저 노동·복지 전문가를 찾아왔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상징성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만들어내는 모순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그가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 교수는 “윤 전 총장이 저와 만난 4시간 동안 최종적으로 정리한 것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만들어내는 불평등과 양극화, 청년 일자리 문제였다. 그는 이 구조에서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할 수 있는지를 우려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이 꼽은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불평등·양극화’다. 그리고 ‘청년’이다. 자신의 핵심 가치 깃발인 ‘공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평등·양극화’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그 핵심 피해 당사자가 청년이라는 인식이다. 윤 전 총장의 첫 행보는 언론과 전문가는 물론 국민으로부터 꽤 호평을 받았다.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5월8일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출신이자 자영업 전문가인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을 만났다. 권 원장이 쓴 책 《자영업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를 읽고 만남을 청했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은 만남에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자영업자고, 자영업자는 국가의 기본인 두꺼운 중산층을 만드는 핵심”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의 약한 고리인 경제 실정을 공격하면서 자신이 보호(집중)해야 할 두 번째 대상으로 자영업자를 든 것이다.

윤 전 총장은 계속 문재인 정부의 경제·민생을 비판하면서도 그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5월27일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를 만나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와 LH 사태를 환기시켰다. 6월1일에는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며 골목상권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만났다. 그는 모 교수에게 “골목상권 살리기에 청년·자영업·지방 발전이란 3대 요소가 다 담겨 있다”며 “청년들이 주축이 돼 골목상권이 뜨면 지역경제와 자영업자가 동시에 살아날 수 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처음 제시한 키워드인 ‘불평등·양극화’와 ‘청년’의 해결책이 확장된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는 메시지다.

윤 전 총장은 5월17일엔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찾아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와 연구소장 이종호 교수를 만났다. 한국 수출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공부를 한 셈인데, 국정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거시경제도 ‘열공’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제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비대면 만남’을 갖기도 했다.

 

‘불평등·양극화’와 함께 ‘청년’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

윤 전 총장은 자신의 ‘스피커’ 중 한 명으로 1988년생 청년을 선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모 교수와의 만남에서 장예찬 시사평론가도 동행시킨 것인데, 차기 대선에서 ‘스윙보터’로 떠오른 2030세대를 겨냥한 윤 전 총장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장 평론가는 향후 윤 전 총장의 일부 행사에 동행하며 공보 역할 참모로 활동할 예정인데, 청년들과의 만남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K-9 자주포 폭발 사고 피해자 이찬호씨와 천안함 생존자인 예비역 전우회장 전준영씨를 만나서는 ‘청년들의 헌신’과 국가안보에 대해 강조했다.

지난 100일간 윤 전 총장의 행보를 종합하면 그가 전파하려 했던 핵심 메시지와 키워드는 ‘불평등·중산층·청년·실용’ 등 4가지로 귀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만난 사람과 일정, 메시지 모두에 이 4가지 가치가 녹아 있다는 해석이다. 윤 전 총장의 측근은 “지금까지의 행보들은 윤 전 총장이 정책의 밑바탕을 그린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윤 전 총장과 직접 소통하며 필요할 때 그의 뜻을 전달하고 있는 이철우 교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윤 전 총장과 같은 문제의식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며 “다만 그들의 견해가 그대로 윤 전 총장의 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 더 많은 토론과 정책 조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100일간의 행보로 보여지는 ‘정치인 윤석열’의 정치 방향은 ‘중도 실용’에 닻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지금까지 행보를 봐도 그렇지만 대선에 나서는 윤 전 총장이 전략적으로도 중도 실용에 가까운 방향을 견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도 “윤 전 총장은 합리적·개혁적 성향으로 보인다. 굳이 좌우를 나눠 말한다면 ‘중도 보수’ ‘실용적 성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서민을 위한 온정적 사회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함께할 정치인은 친이·비박·초선? 

윤 전 총장이 만난 사람들 중에는 정치인도 있다. 모두가 국민의힘 의원이다. ‘윤석열 충청대망론’을 피력해 온 충청 출신 중진인 정진석 의원(5선, 충남 공주·부여·청양)이 대표적이다. 윤 전 총장 부친의 고향이 충청이고 본가가 충남 공주시에 있다. 정 의원은 5선 의원이면서도 계파색이 옅다. 언론이 가장 주목한 정치인은 윤희숙 의원이다. 윤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경제정책 전문가로 제1야당에서도 손꼽히는 경제통이다. 최근에는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윤 의원은 ‘불평등·양극화’와 청년 일자리 문제 등에 ‘윤석열표 대안’도 만들어줄 수 있는 인사다.

이 외에도 윤 전 총장은 자신의 외가를 지역구(강릉)로 두고 있는 권성동 의원(4선)도 만났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 죽마고우다. 장제원(3선)·유상범(초선) 의원과도 접촉했다. 야권 관계자들은 윤 전 총장의 정치인 연쇄 접촉을 국민의힘 입당 준비를 하는 동시에 그의 조직에서 함께 뛸 원내 인사를 물색하는 과정으로 본다. 여기에 윤 전 총장이 입당 후 자신의 조직을 보강할 수 있는 인사로 친이(친이명박)·비박계 내지 초선 신진세력을 꼽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진석·권성동·장제원 의원은 모두 친이·비박계다.

윤 전 총장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만큼 만나지 않은 사람도 중요한 포인트다. 지금까지 알려진 만남 중 여성은 윤희숙 의원 한 명뿐이다. 이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여성을 적게 만나고 있는 것은 보수주의자로서의 캐릭터나 가치가 녹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윤 전 총장이 접촉한 이들 대부분이 동년배 혹은 그 이상이었다. 윤 전 총장이 좀 더 젊은 세대와 여성 등과의 접촉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 평론가는 “자칫하면 60대 가부장적 정치인 이미지로 갈 위험도 있다. 또 젠더 감수성이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거꾸로 보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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