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10원 한 장…‘말의 무게’ 앞에 흔들리는 윤석열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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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화법 등 ‘소통’ 숙제…야권서도 “安과 비슷한 행보” 우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9일 오후 서울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9일 오후 서울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인 윤석열'의 메시지와 화법은 시대를 관통할 수 있을까. 정치권 등판 시점이 '6말7초'로 좁혀지면서 그의 행보를 둘러싼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상당기간 가장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로 꼽혀왔음에도 주변인을 활용한 '전언 소통'을 해왔던 탓에 윤 전 총장이 직접 내는 메시지에 더욱 이목이 쏠린다. 

현재까지 윤 전 총장이 드러낸 메시지만 놓고 보면, 퇴임을 전후로 '공정'을 강조했던 것만큼 파괴력을 지닌 발언은 없다. 오히려 윤 전 총장의 '입'이 대권 가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호가 감지된다. 최근 윤 전 총장이 내놓은 '지평선' '성찰', 해명이 뒤따랐던 '십원 한 장' 발언 등이 지지율 만큼이나 높은 비호감도를 자극하고 있어서다. 야권에서도 이같은 윤 전 총장의 화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양상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11일 오후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 윤 전 총장은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 제공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11일 오후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 윤 전 총장은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 제공

오점 남긴 방명록…무게감 떨어진 발언

16일 윤 전 총장 측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을 찾았다. 윤 전 총장은 4시간 가량 머물며 김 전 대통령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햇볕정책 등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정책과 일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윤 전 총장은 이 자리에서 'DJ 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김 전 대통령을 존경하게 됐고, 그 업적이 놀랍다. 수난 속에서도 용서와 화해를, 과거를 넘어 미래로 가는 정신을 높이 새기게 됐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방명록이었다. 윤 전 총장은 도서관에 비치된 방명록에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문맥을 고려할 때 '지평선'은 '지평'을, '성찰'은 '통찰'을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보이나 의미는 확연히 다른 단어다. 

높은 관심에 비해 공개 발언은 적은 탓에,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윤 전 총장이 남긴 글과 말에는 큰 관심이 쏠렸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방명록에 오점을 남기면서 무게감이 상당부분 떨어져 버렸다. 

앞서 윤 전 총장이 장모와 관련한 의혹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십원 한 장' 발언이 나왔을 때도 정치인의 문법으로 보기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윤 전 총장의 말을 전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비슷한 취지로 말했던 것일 뿐'이라며 전달 과정에서의 혼선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윤 전 총장의 언어가 돼버린 후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1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 김성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사장과 함께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 제공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1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 김성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사장과 함께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 제공

그간 내놓은 발언 상당수가 모호하거나 여론을 흔들만한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반복되는 윤 전 총장의 '실수' 또는 '부적절한 화법'은 더 부각됐다. 

윤 전 총장의 메시지와 화법이 다른 주자들에 비해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가 전직 검찰총장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여권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이재명 경기지사 등은 대선 후보 이전에 오랜 시간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당이나 정책을 통해 대중과 꾸준히 소통을 해왔고, 개인 SNS 등도 적극 활용하는 등 윤 전 총장과 비교해 접점이 상당히 넓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다르다. 검찰총장으로서 대중과 접점이 거의 없었고, 퇴임 후 잠행을 거듭하면서도 측근을 통한 '전언'을 활발히 내놓을 뿐 직접적인 공개 발언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방명록 등을 통해 내놓는 메시지 영향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반향이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윤 전 총장이 본격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이 간극을 빠른 속도로 메우는 것이 또 하나의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현실 정치 밖에 있다가 유력 대선 주자로 급부상한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신뢰를 주거나 강력한 인상을 남길 만한 메시지를 내지 못하면서 차츰 존재감이 떨어진 점은 윤 전 총장 입장에서도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윤 전 총장이 현재까지 국민의힘 입당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어서 앞으로 메시지 전달 방식과 관리는 더 중요해 질 수 있다. 측근을 통해 밝힌 것처럼 보수와 중도, 진보까지 모두 아우르는 확장성을 가지려면 더욱 그렇다. 여당은 이미 7월 윤 전 총장 장모 관련 1심 판결을 비롯한 가족 리스크 검증, 공수처 수사 등을 두고 집중포화를 예고한 상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도착해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3월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도착해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야권서도 "안철수 전철 밟게 될 지도" 우려

국민의힘에서도 윤 전 총장 입당을 두고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윤 전 총장 화법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하태경 의원은 16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은 국민이 잘 못 알아듣게 말을 한다. 화법이 모호하고 너무 자신감이 없다"고 직격했다.

하 의원은 윤 전 총장의 현재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정계 진출 상황과 비교하기도 했다. 하 의원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사실은 윤석열 1기다. 안철수 신드롬이 확 떴었다"며 "(안 대표가) 점점 저물었던 이유가 그런 모호한 화법 때문이다.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선문답하듯이 피해가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것 때문에 (안 대표가) 실패했는데, (윤 전 총장이)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 의원은 "공정은 20세기의 기본 가치고 21세기에는 공기와 같은 것"이라며 "윤 전 총장도 21세기의 시대 정신이 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와 자신의 비전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박지훈 변호사도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의 '십원 발언'이 악수가 됐다고 지적하며 "윤 전 총장이 7월 장모 재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어 출마와 동시에 해명 메시지를 내야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발언과 행적 등을 보면) 윤 전 총장은 공무원이지 (아직)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은 결단 내릴 땐 가김이 없다"면서 "그 패턴을 쉽게 버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인 천하람 변호사는 "윤 전 총장은 지금 공부하고 누굴 만날게 아니라, 아침부터 밤까지 토론을 해야한다. 정치적인 문법으로 얘기하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단어를 사용할 지 그런 고민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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