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미래 모빌리티 미개척지 뚫기 위해 美 찾았다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1.07.01 10:00
  • 호수 16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오닉5·EV6 앞세워 미국 전기차 시장 선점
자율주행 및 로보틱스 기술 개발도 가속도

자동차가 운전자 없이 움직이고, 하늘을 날며, 로봇들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 영화에서나 봤던 장면들이 현실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기술 발전이 급속도로 빨라지면서 예전에 꿈꿨던 미래 모빌리티 세상이 이제 눈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라이트 형제가 1903년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띄운 지 고작 66년 만에 우주선이 달까지 갔다는 점을 생각하면, 또다시 60여 년이 흐른 2030년에는 어떤 일이 현실로 일어날지 상상하기 어렵다.

전 세계 기업들이 미래기술 개발 투자에 속도를 내면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시선도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하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자동차업계에서 다진 기반을 바탕으로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중 핵심 지역을 미국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임에도 아직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딘 데다, 최첨단기술 기업들이 몰려 있어 미래 모빌리티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데 최적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2020년 7월14일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정의선 회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현대차그룹 제공
2020년 7월14일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정의선 회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현대차그룹 제공

미국 전기차 점유율 2%…성장 가능성 커

전기차는 미래 모빌리티 중 가장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전기차 시대는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전환을 외치면서 내연기관 종말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함께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임에도 전기차 시장에선 다소 뒤처진 모습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다른 국가들이 친환경 정책을 강화할 때 오히려 연비 규제를 완화한 결과다.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 ‘기업 평균 연비 규제(CAFE)’는 오는 2025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신차의 평균 연비 수준을 54.2마일/갤런(약 23km/리터)로 개선하는 내용이었으나,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연비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오는 2025년까지 승용차 47.0마일/갤런(약 20km/리터), 경량 트럭 33.6마일/갤런(약 14.3km/리터)을 충족하기만 하면 된다.

느슨한 연비 규제로 인해 미국 내 전기차 비중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기차 판매는 29만 대로, 미국 자동차 판매(1430만 대)의 2%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해 중국 전기차 판매는 93만 대(4%), 유럽 92만 대(10.5%) 등으로 미국에 비해 전기차 비중이 높았다. 하지만 조 바이든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면서 향후 미국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시장은 2025년 240만 대, 2030년 480만 대, 2035년 800만 대까지 커질 전망이다.

정의선 회장은 아직 태동기인 미국 전기차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은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해 현지 판매법인과 앨라배마 공장을 둘러보며 미국 전기차 동향 및 생산거점을 점검했다. 현대차는 미국에 8조원가량을 투자해 현지 전기차 생산체제를 갖춰 미국 전기차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미국 전기차 시장의 경우 테슬라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두각을 드러낸 기업이 없다. 미국 현지 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아직 제대로 된 전기차를 내놓지 않았다. 미국 점유율 1위 기업인 일본 도요타는 전기차 개발에는 다른 기업들보다 한 발짝 이상 느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올가을부터 아이오닉5를 비롯해 자사 전기차 출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또한 내년부터는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며 미국 시장을 선도해갈 방침이다.

 

전기차 다음 먹거리, 로보틱스·자율주행

정의선 회장이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등 미래 혁신기술에 대해 강조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 회장은 부회장 시절부터 미래 모빌리티 중요성을 꾸준히 언급해왔다. 2019년 신년사에서 자율주행 로보택시 시범운영을 목표로 혁신성과 안전성을 갖춘 기술 개발에 힘쓰겠다고 설명했다. 작년 신년사에서는 “자동차 기반의 혁신과 더불어 로봇,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시티 등 새로운 기술 개발과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야심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정 회장은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해 미국 앱티브사와 ‘모셔널’이라는 합작 법인을 세웠으며,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6월13일 정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한 것도 모셔널 본사 방문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모셔널을 방문해 차세대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 현황과 로보택시 추진 계획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현지 임원들과 시장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모셔널이 개발 중인 차세대 자율주행 플랫폼을 적용한 아이오닉5도 직접 테스트했다. 아이오닉5에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됐으며, 현재 미국 시험 도로에서 실험이 진행 중이다. 모셔널은 향후 아이오닉5를 로보택시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로보틱스 사업을 위해 인수를 추진한 보스턴 다이내믹스 본사도 방문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 중 20%는 정 회장이 사재로 직접 투자했다. 현대차그룹은 로보틱스 사업 전망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글로벌 로봇 시장이 기술 혁신과 자동화 로봇 수요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2017년 245억 달러 수준의 세계 로봇 시장은 연평균 22%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지난해 444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했다. 오는 2025년까지 연평균 32%의 성장률을 기록해 1772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은 먼저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 가능성이 큰 물류 로봇 시장에 진출하고, 이어 건설 현장 감독이나 시설 보안 등 각종 산업에서 안내·지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서비스형 로봇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과 유사한 2족 보행이 가능한 다리 등을 갖고 있고 팔과 손을 사용해 사람과 같은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는 첨단 로봇이다. 향후 환자 간호 등에서 인력을 대체 또는 보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