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물 건너간 금융감독 체계 개편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1 11: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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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개편에 소비자 피해 갈수록 커져

건국 이래 최대의 사모펀드 사기 사건인 ‘옵티머스 사태’가 일단락되고 있다. 가장 많이 펀드를 판매한 NH투자증권은 일반 투자자에게 전액을 배상하기로 했다. 다른 판매사 한국투자증권도 90%를 지급한다. 다만 경영진에 대한 제재는 아직 금융위원회에서 결정되지 않았다. 앞서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판매와 관련해서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내부 통제 미흡 등을 이유로 문책성 경고를 받았다. 제재에 대한 불복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행정소송 1심 결과는 이르면 7월에 나올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1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사모펀드 사고로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최근 커지고 있다. 사진은 금융위와 금감원 현판ⓒ금융위원회 제공
잇따른 사모펀드 사고로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최근 커지고 있다. 사진은 금융위와 금감원 현판ⓒ금융위원회 제공

감독 실패 책임을 금융사에 전가?

일부에서는 금감원이 관리와 감독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경영자들을 중징계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금융 당국의 책임이 상품을 판매한 금융사에 비해 가볍다고 할 수도 없다. 흔히 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원인으로 금융위의 규제 완화를 지목한다. 금융위는 2015년 5억원이던 한국형 헤지펀드 최소 가입금액을 1억원으로 낮췄다. 금융위는 또 사모펀드(PEF) 설립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물론 규제를 푼다고 항상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니다. 사전적 규제를 완화하면 대신 감시와 사후 제재는 강화하는 게 순서다. 금융 환경의 변화에 맞춘 적절한 감독 시스템 구축이 필요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사모펀드 부실 사태는 단순히 규제 완화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금융산업을 육성하려는 금융정책과 이를 감시하는 금융감독 간에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지금의 금융감독 체계가 화근을 키웠다고 보는 것이 맞다.

현재 금융감독은 정책과 집행이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의 금융정책 권한 아래서 금융감독 집행만을 담당한다. 금융감독과 관련한 규정의 제·개정 등 ‘정책’은 금융위가, 조사와 보고 등 ‘집행’은 금융감독원이 수행한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기 어렵다. 금융감독원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금감원은 라임 사태 이후인 지난 2019년 말 뒤늦게 사모펀드 시장의 잠재 위험을 파악하는 실태점검을 벌였다. 금감원 점검 결과, 대다수 사모펀드는 라임과 같은 위험한 운용 형태나 투자 구조로 돼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금감원의 공언과 달리 이후 디스커버리 운용에선 추가로 환매가 중단됐고 옵티머스 사태까지 터졌다. 실태점검은 의미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금감원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금감원의 일부 직원은 아예 사기에 가담하기도 했다. 제도와 관계없이 금감원이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금감원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금융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공적 민간조직이다. 중앙행정기관인 금융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와 감독 업무를 수행한다. 원래 우리나라의 금융감독 체계는 정부의 포괄적 지휘 아래 영역별로 은행감독원과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등으로 분산된 감독을 시행하는 구조였다. 영역별 감독 체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금융감독위원회라는 이름의 통합 금융감독기구가 출범하면서 바뀌었다.

금융감독 체계가 다시 지금처럼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이원화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였다. 당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의 목적은 정책과 감독을 모두 맡는 금융감독위원회의 권한을 분산해 관치금융의 폐해를 없애는 것이었다. 정부는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 부문을 합쳐 현재의 금융위원회를 신설했다. 금융위는 금융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을 총괄하지만, 실제 감독 집행 권한은 금감원에 위탁하도록 했다.

물론 논의 과정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져오려는 투쟁이 벌어졌다. 금융위는 금감원에 대한 감독권을 놓지 않으려 했고, 금감원은 금융위의 지휘에서 벗어나려 했다. 결국 감독 체계 개편에 대한 봉합은 어설프게 이루어졌다. 금융위의 금감원에 대한 ‘지시 감독’ 권한은 ‘지도 감독’으로 순화됐다. 징계 권한도 타협의 결과로 어중간하게 조정이 이뤄져 중징계 이상은 금융위 의결을 거치고, 경징계는 금융감독원장이 결정하도록 했다. 조직은 둘로 나뉘었는데 기능과 권한은 모호하게 분리해 놨으니 걸핏하면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지금은 금융감독에 대한 책임 소재부터 불분명하다.

 

사고 때마다 금융위-금감원 ‘네 탓 공방’

사실 금융감독 체계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개편 논의가 나오곤 했다. 논의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권한을 놓고 싶지 않고, 금감원은 정부 조직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 정치권으로서는 굳이 반발을 무릅쓰고 일을 추진해야 할 만큼 표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자율성과 중립성,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금융감독기구의 출현을 반가워하는 곳은 별로 없기도 하다. 한마디로 박수는 받기 어렵고 장애물은 많은 일이다.

어떤 제도도 허점은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금융감독 체계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금융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금융위는 금융산업 육성과 금융감독이라는 다른 정책 목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금융정책과 건전성 규제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금융감독은 기본적으로 지향점이 다르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금융정책 기능은 정부가, 금융감독 기능은 독립된 금융감독기구가 수행한다. 금융산업 정책과 금융감독은 분리가 바람직하다. 현 정부도 출범 초 금융감독기구의 자율성과 중립성을 강화하겠다며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해 효율적인 금융감독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임기 1년을 남긴 지금까지 이뤄진 게 없다. 감사원도 지난해 사모펀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이후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주문했지만, 정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사모펀드 환매 연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6조8000억원이었다. 대형 금융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패턴은 언제나 같다. 먼저 금감위와 금감원은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 금융위는 관리와 감독 부실이라며 금감원을 탓하고, 금감원은 금융위의 섣부른 규제 완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비난 속에서 금융위는 완화했던 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금감원은 사고가 발생한 금융사에 다소 무리한 제재를 한다. 이어서 무리한 제재를 놓고 금융사가 소송을 제기하고 금융사와 금감원의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사고가 날 때마다 예외 없이 진행된 순서다. 이번에도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는 오로지 규제 강화와 금융사에 대한 중징계 정도로 마무리되고 있다. 현 정부에서 금융감독 체계 선진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다음 정부에서는 가능할까. 그것도 모르겠다. 지난 5월7일 이후 이 글을 쓰는 6월23일까지 금융감독원장은 공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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