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 위기…이러려고 브렉시트 밀어붙였나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9 07:3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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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제, 국내 구인난·소상공인 타격 등으로 ‘불안한 홀로서기’
독자적 대외교역으로 타개책 모색

영국은 지난해 마이너스 9.8%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기록하며 300년 만에 최악의 경제 상황을 겪었다. 올 3월에는 영국의 수출량이 19.3% 떨어졌으며, 수입량도 21.6% 줄어들어 1997년 이후 가장 큰 월간 감소세를 기록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홍역을 앓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앞서 영국에 큰 변화를 안긴 ‘브렉시트’ 영향이 크다.

다행히 4월을 기점으로 봉쇄령이 완화되고, 코로나19 정국에서 일상이 점차 정상 궤도에 오르며 영국 경제도 조금은 회복하는 추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올해 영국의 경제성장률을 7.2%로 예상했다. 이는 194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영국 경제는 여전히 핑크빛 숫자와는 거리가 멀다.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EU 회원국 출신 노동자들이 영국을 떠나면서 영국 내 극심한 구인난이 벌어지고 있다.ⓒEPA 연합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EU 회원국 출신 노동자들이 영국을 떠나면서 영국 내 극심한 구인난이 벌어지고 있다.ⓒEPA 연합

EU 노동자 떠나니 물류·운송 등 곳곳 구인난

영국은 전체 인구 대비 약 80%에 가까운 백신 접종률을 보이며 일상으로의 복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4월을 기점으로 영국의 많은 음식점과 술집, 문화시설 등이 다시 문을 열었고,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일자리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브렉시트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자국으로 돌아간 까닭에 극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자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노동자 중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출신이 상당수였다. 이로 인해 동유럽을 비롯한 EU 회원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 비중이 높았던 서비스업·물류업 등 저임금 일자리에선 구인난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이처럼 유럽 국가 출신 노동자 수 급감으로 영국 국민의 일상적 편의 역시 직간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도버해협을 통해 육로로 유럽과 활발히 무역해 오던 영국은 만성적으로 대형트럭 운전사 수 부족을 겪어왔다. 특히 EU 회원국 출신 운전사 비중이 높았던 대형 운송차량의 경우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오는 7월 예정된 봉쇄령 해제와 휴양시설 운영 재개, 집에서 휴가를 즐기는 ‘스테이케이션’의 영향 등으로 올여름 공산품 및 식자재 수요는 기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에 대한 우려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저온 유통업 연합회장인 셰인 브레넌은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이미 소규모 슈퍼마켓과 같은 소매업체들은 제품 공급 차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소매협회(BRC)의 고용정책 고문 타마라 힐은 공급 차질로 인한 제품 수급 문제에 대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슈퍼마켓들은 현재 제품 공급 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해 소비자들이 안정적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결 중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물류와 운송 부문 노동자들이 EU 회원국 인력으로 채워져 왔다고 밝히며 브렉시트와 코로나19로 인한 해당 분야의 인력난을 시인했다.

지난 5월, 영국 내 대표적인 경제 싱크탱크인 레솔루션재단과 너필드재단, 그리고 런던 정경대에서 합작해 향후 10년간 영국 경제를 전망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에선 영국 경제가 코로나19와 브렉시트, 탄소 중립 목표로 인한 중차대한 기술적 및 인구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영국은 브렉시트와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로, 현재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 모델의 자취를 따르게 될 거라고 분석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 10년간 연간 0.3%대의 낮은 GDP 성장률을 보여왔다. 이처럼 부진한 성장률이 오랜 기간 지속되는 경향이 영국 경제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같은 달, 런던 정경대는 별도로 2021년 초 영국 경제 상황을 토대로 내다본 영국 경제 전망 보고서를 추가로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전체 61%의 영국 내 사업체들이 브렉시트 이후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담겼다. 국경과 관련된 통관 지연, 세관 및 행정 절차와 관련된 추가 비용 지출, 규제 체크 등의 문제가 주를 이뤘다. 그 외에도 사업체 3곳 중 1곳이 브렉시트가 그들의 비용과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했다. 특히 수출업에 종사하는 사업자들은 전체의 24%가 브렉시트로 인해 EU 회원국에 대한 수출량이 크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수입을 주로 하는 사업체 중 33%는 EU 회원국으로부터의 수입량이 브렉시트로 인해 급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브렉시트로 인한 타격이 소규모 사업체들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유럽 떠나 독자 체제 본격화하는 영국

올해 초 영국의 해외 무역량은 지난해 동일 기간 대비 14% 감소했다. 영국 정부의 노력에도 비(非)EU 국가와의 교역량도 그리 증가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 영국과 호주가 맺은 자유무역협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처음 독자적으로 체결한 대외교역협정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호주와의 협정이 영국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여명’과 같다고 비유했다. 영국 정부는 향후 15년간 이 협정이 영국 GDP를 0.025% 상승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협정에서 영국 국민의 이목을 끈 것은 호주 축산물이 향후 15년간 점진적으로 영국 시장에 더 많은 접근성을 얻게 된다는 점이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호주산 육류가 무관세로 영국 시장에 공급됐을 때 영국 축산업계가 입을 타격에 대한 대응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축산업계는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한 호주와의 단일 교역량은 약 140억 파운드(약 22조1632억원)로, 기존 유럽 단일 시장과의 교역량 6600억 파운드(약 1044조8394억원)에 비해 작은 규모다. 이를 두고 가디언지는 “호주와의 교역은 ‘여명’보다는 ‘작은 첫걸음’과 같다”고 정부의 비유를 정정했다.

6월22일, 지난 2월에 가입 신청을 제출했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협상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CPTPP에는 호주뿐 아니라 뉴질랜드·일본·싱가포르·캐나다·멕시코·칠레 등 11개국이 속해 있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2016년에서 2019년 사이 CPTPP 가입국에 대한 교역량은 연간 8%씩 증가해 왔으며, 2030년까지 65% 정도 증가한 650억 파운드(약 103조204억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즈 트러스 영국 국제통상부 장관은 “CPTPP 가입은 영국이 유럽을 떠나 빠르게 성장하고 오래된 동맹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함이며, ‘반드시 잡아야 할 기회’”라고 밝히며 협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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