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이단아’ 정용진, ‘UFO 경영’ 날개 달까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6.30 10: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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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이 인수로 온라인 강자 등극
‘용진이형’ 마케팅 내세워 시장과 소통

올해는 신세계나 정용진 부회장 개인에게 모두 의미 있는 해다. 정 부회장은 2010년부터 그룹 부회장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해 올해로 만 10년을 넘겼다. 외부 평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이 5월에 발표한 ‘2021 아시아 100대 유통기업 조사’에서 신세계는 국내 1위, 아시아 9위에 올랐다. 우리 기업으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지난해 국내 1위, 아시아 9위를 차지했던 롯데는 올해 11위로 밀려났다. 신세계가 이 기관 조사에서 국내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월24일에는 이베이코리아 지분 80%를 3조4400억원에 인수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정 부회장과 신세계를 향한 시장의 불안감은 컸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2019년 7월 ‘온라인 경쟁자의 도전으로 주가가 38%나 떨어진 신세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독립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모두 온라인 유통기업들과의 경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2년 만에 정 부회장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일러스트 신춘성

United- 통합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검토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쿠팡, 이베이코리아 등 이커머스(e-Commerce) 회사들은 강력한 오프라인 채널을 가진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의 등살에 밀려 비주류로 분류됐다.

그랬던 이커머스 업체들이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으로의 시장 재편이 빨라진 것과 대표주자 쿠팡의 미국 나스닥 상장이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신세계 내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정 부회장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미래 유통시장은 온·오프 경계가 무너질 거라고 내다봤다. 기업 경영 전면에 나선 2010년 신년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신년사에서 그는 “온라인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온·오프라인 통합은 전 세계 유통업계의 화두다. 온라인 강자 아마존이 유기농 식품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마켓’을 인수하자 오프라인 최강자 월마트는 보란 듯이 오픈마켓 업체 ‘제트닷컴’을 인수한 것이 좋은 예다. 두 영역의 경제가 무너지면서 ‘옴니(복합)채널’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신세계가 꿈꾸는 미래상은 그보다 더 크다. 정 부회장 취임 이후 신세계는 계열사 간 협업에 적극 나섰다. 2014년 문을 연 통합 온라인쇼핑몰 쓱닷컴(SSG.com)을 2019년 정식 법인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나, 2015년 간편 결제 시스템 쓱페이(SSG pay)를 도입한 것은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물류 배송에서도 기존 이마트 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신세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기존 점포 내 공간을 쓱닷컴의 배송기지 PP(Picking&Packing)센터로 활용했는데 올 1분기 이마트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0%, 6.9% 늘어났고 쓱닷컴 매출 역시 9.8% 늘어났다. 영업이익 적자폭 역시 166억원가량 줄어들었다.

필요하다면 경쟁사와 손잡는 데도 적극적이다. 신세계는 올 3월 네이버와 이마트 1500억원, 신세계백화점 1000억원 등 총 25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신세계가 네이버의 고객층과 플랫폼, 인공지능 기술 등을 활용한다면 네이버는 전국의 이마트 센터를 물류 거점으로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네이버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8%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두 회사는 ‘적(쿠팡)의 적은 동지’라는 원칙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신세계-네이버 연합체’는 이번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도 함께 나섰지만 막판 네이버가 빠지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세계가 시장점유율 12%의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서 3%인 쓱닷컴까지 합쳐져 단숨에 업계 2위로 올라섰다. 2010년대 중반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온라인도 잘하는 오프라인 회사가 되자”는 말을 자주 했던 정 부회장이 최근 “오프라인도 잘하는 온라인 유통회사가 되자”며 정반대로 말하는 것도 이러한 온·오프 통합과 무관치 않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2019년 12월10일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2019년 12월10일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Fun- 재미

올 초 신세계는 프로야구 구단 SK와이번스를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정 부회장의 야구 사랑이 지독한 것은 익히 알려진 바지만 재무적 관점에서 보면 야구단은 이른바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다.

그러나 2010년 그룹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다”고 말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야구단 인수에는 ‘정용진식 경영’의 요체가 숨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구장과 테마파크가 경쟁 상대라는 말은 2016년 스타필드 하남점이 개점할 때도, 2019년 화성 국제테마파크 비전 선포식에서도 똑같이 했다. 부회장 취임 이후 창고형 할인매장 트레이더스와 스타필드 등 복합쇼핑몰 사업에 열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구장·테마파크·복합쇼핑몰은 ‘고객을 오래 머무르게 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기반은 고객의 ‘재미’에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최근 정 부회장은 앞으로 유통업의 판단기준이 ‘마켓 셰어’(시장점유율)가 아니라 ‘고객의 경험’, 더 나아가 ‘라이프 셰어(Life Share)‘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 시간을 내 야구장과 테마파크를 찾는 것처럼 쇼핑시설에서 고객 스스로 재미를 찾으며 즐겁게 소비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는 1930년 일본 미쓰코시(三越)백화점 경성지점으로 출발해 1963년 삼성그룹에 편입됐다. 공식적으로 삼성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1997년이다. 지난해 발표된 재계 순위는 11위였다. 지금까지 신세계는 ‘유통’이라는 한우물만 파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정 부회장의 다음 수(手)는 무엇일까. 그를 잘 아는 한 재계 인사의 말이다. “몇 해 전 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마트 때문에 주변 아파트 값이 오른다고 하는데 남 좋은 일만 하지 말고 우리 좋은 일도 생각해 보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부회장은 밑그림을 크게 그리는 기업인이다.”

재계에선 정 부회장의 다음 구상은 신세계가 도시 생활을 모두 책임지는, 다시 말해 ‘정용진식 신세계(Universe)’를 만드는 것에 있다고 본다. 최근 음성기반 SNS ‘클럽하우스’에서 “야구가 끝난 뒤 관중들이 그냥 떠나는 모습을 보면 아쉬웠다. 돔구장과 스타필드를 함께 지어 고객이 머무르는 시간을 10시간 이상으로 늘리고 싶다”고 말한 데서 ‘어반 플래너(Urban Planner)’ 정 부회장의 생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4조5000억원으로 그룹 역사상 최대 투자로 불리는 경기도 화성 국제테마파크는 ‘정용진식 신세계’의 시작이다. 화성 국제테마파크를 지으면서 신세계가 롤모델로 삼는 것은 디즈니랜드·유니버셜스튜디오·MGM스튜디오처럼 1주일가량 머무르며 지내는 리조트형 테마파크다.

3월30일 SSG 랜더스 창단식에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창단 포부를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3월30일 SSG 랜더스 창단식에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창단 포부를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Outstanding-선도형 경영자

정 부회장은 은둔형이 주를 이루는 한국 재계 문화를 완전히 뒤바꿨다. 개인 SNS를 통해 시장과 소통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SNS에는 베일에 싸여 있던 기업 총수의 소소한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66만 명(6월21일 기준)인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정 부회장의 SNS 활동은 적잖은 논란이 된다. 그러다 보니 ‘관종’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뒤따른다. 그의 소통 방식은 유통의 새로운 주류로 부상하는 MZ세대에 정면으로 맞춰져 있다.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는 신간 《마켓5.0》에서 “당장은 베이비붐 세대(1946~64년 출생)와 X세대(1965~80년 출생)가 주류지만, Y세대(1980~96년 출생)·Z세대(1997~2009년 출생)·알파세대(2010~2025년 출생)의 소비세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들을 타깃으로 한 휴머니티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세대를 겨냥한 IT 투자 부채(IT investment debt·베인 앤 컴퍼니 주장)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Y세대 이후 세대와의 소통에선 ‘재미’가 필수다. 책 《90년생이 온다》에서 저자 임홍택은 “90년생을 뒤바꿀 핵심은 유머”라고 강조한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오락 채널 ‘코미디 센트럴티브이’는 2012년 연례보고서에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유머’라는 렌즈를 통해 타인을 바라본다”고 밝혔다. 꼰대로 불리는 기성세대의 소통이 ‘일방적 자기주장’이라면 신세대는 ‘경청’이다. 정 부회장은 SNS를 활용해 고객·시장의 의견을 경청한다. 최근 SNS에 “청바지 브랜드가 뭐냐”는 대중의 질문에 “이 청바지 여기 거예요”라고 답하면서 정 부회장은 ‘공답요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적잖은 설화(舌禍)를 빚어가며 운영되는 그의 SNS를 단순히 한 기업인의 개인 공간으로 치부할 순 없다. 여기에는 신세계의 고도화된 마케팅 기법이 숨겨져 있다. 최근 전남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배추를 직접 수확하는 모습이나, 자신을 겨냥해 만들었다는 제이릴라(정용진+고릴라)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은 2030세대를 겨냥한 홍보 수단이라고 봐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배추밭 영상은 마케팅 부서에서 올린 아이디어를 정 부회장이 받아들여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의 SNS에 처음 소개된 ‘구단주 맥주’가 계열사인 이마트24를 통해 판매되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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