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정치사 담긴 JP 유품, 유족도 모르게 팔려간 이유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9 10: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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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루더 장군·김영삼·김대중과 나눈 김종필 前 총리 친필 서한 경매에 나와
장녀 예리씨 “가족처럼 지낸 특보 아들과 치열한 소유권 다툼 중”

2019년 1월, 고(故)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유품 82점이 국내 경매사 ‘아이옥션’이 진행하는 정기 경매에 등장했다. 유품의 이름은 ‘매그루더 장군에게 보내는 공개장’. 1961년 5·16 군사정변 직전, 정군운동(整軍運動)을 주도하던 김종필 당시 예비역 중령이 미국 카터 매그루더 장군에게 한국군의 부패상을 지적하고 정군운동의 당위성을 강조한 친필 서한 45장이다. 정군운동이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연루된 군 상층부 퇴진을 주장한 운동으로, 박정희 당시 육군 소장과 김종필 등 육사 8기생들이 주도했다. 매그루더 장군은 5·16 군사정변 당시 우리 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던 주한 유엔군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2019년 1월 아이옥션 경매에 나온 김종필의 ‘매그루더 장군에게 보내는 공개장’ⓒ운정 재단 제공 

이 경매엔 한국 정치사의 주요한 기록이 담긴 두 개의 유품도 함께 나와 주목을 받았다. 1988년 5월2일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김영삼·김대중 양김에게 쓴 회동 제안서와 이에 대한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의 답변 서신이었다. 이 서신이 오간 며칠 후 야3당 총재 회담이 전격 성사됐고, 그 자리에서 5공 청산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지금 정치권에선 볼 수 없는 ‘편지정치’의 묘미가 담긴 유품인 셈이다.

JP의 유족이 경매에 부친 것일까. 경매에 유품이 등장한 건 2018년 6월23일, 그가 향년 92세 일기로 세상을 떠난 지 불과 7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지난 6월18일, JP 3주기 추도식을 닷새 앞두고 기자와 만난 JP의 장녀 김예리씨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달 후, 아버지의 유품 몇 점이 경매 도록에 올라왔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나보고 ‘왜 아버지 유품을 경매에 올렸느냐’고 하길래 무슨 말인가 싶어 도록을 확인했는데, 분명 집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도록에 실려 있었다. 바로 아이옥션에 연락해 누가 올렸는지 물었지만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운정 재단 제공 

“A특보, 유품 가져다주겠다고 한 이튿날 심장질환으로 사망”

김예리씨는 20년 가까이 JP의 정치 활동을 보좌해 온 부녀간 이상의 각별한 관계였다. JP 역시 생전 딸을 향해 “예리는 대학생 때부터 항상 경호원이 따라다녀 미팅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사실은 때로 가족 구성원들에게 희생을 요구한다”며 미안한 마음을 밝히기도 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떠나시고 경황이 없어 내가 잘 못 챙긴 틈에 도난을 당했나 싶었다.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의심 가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하지만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해야 했다. 도저히 알 방법이 없어 패소할 걸 예상하면서도 아이옥션을 고발했다”고 말했다. 고발의 근거는 유족들이 모르는 유품에 대해 경매를 진행했다는 혐의였다. 이후 서울 종로경찰서의 조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이내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했다. 바로 JP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약 40년간 그의 곁을 지켜 온 특별보좌관(특보) A씨의 장남 B씨였다. 김씨가 마음속에 의심을 품던 그 사람이었다.

김예리씨가 전한 상황은 이러했다. “2015년 중앙일보 김종필증언록팀이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엮어 책 《김종필 증언록-소이부답》을 쓰는 과정에서 책에 실을 사진을 찍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주요 유품들이 바깥으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 중앙일보 회의실 등으로 옮기는 과정을 A특보가 담당했었다. 그런데 당시 워낙 다양한 유품이 활발히 오가다 보니 매일 갖다 주고 갖다 놓기가 번거로웠다. A특보가 자신의 집에 잠시 뒀다가 한번에 모아서 다시 집으로 가져다 주기로 했다. 그 후 경황없이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때 채 돌려받지 못한 유품 일부가 뒤늦게 떠올랐다. 모아 놓은 유품을 다시 우리 집으로 가져다 주겠다고 A특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이튿날, A특보가 병원에서 심장 시술을 받은 후 갑자기 사망했다.”

A특보는 자신이 보좌한 김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나고 약 5개월 후인 2018년 11월 숨을 거뒀다. 그리고 두 달여가 지나 A특보 집에 남아 있던 김 전 총리의 유품 82점이 경매에 나온 것이다. 김씨는 조사 과정에서 A특보의 아들 B씨가 경매에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에도, A특보를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특보님이 살아계셨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분은 아버지와 관련한 일에 굉장히 정확했고 정직했다. 갑자기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분명 나와의 통화에서 유품들을 가져다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특보가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분명하다. 아들과는 크게 교류가 없던 관계였다”고 밝혔다. 생전 A특보와 그 가족을 잘 알고 지낸 김 전 총리의 종중 관계자 역시 “A특보는 누가 봐도 충신(忠臣) 중 충신이었다. 한 번도 김 전 총리와 다른 말을 하거나 다른 의견을 전한 적이 없었다. A특보는 절대 생전에 JP의 유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을 리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1962년 10월28일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오른쪽)이 방미 중 매그루더 장군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운정 재단 제공
1962년 10월28일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오른쪽)이 방미 중 매그루더 장군과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운정 재단 제공

아이옥션에 나온 82점, 530만원 낙찰

JP가 생전 A특보에게 직접 해당 유품들을 증여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JP와 30년 가까이 왕래해 온 측근은 “생전 JP는 자신의 유품들을 박물관이나 재단에 주는 것도 단호하게 거부했던 분이다. 개인에겐 더더욱 주지 않으셨다. 그저 자신이 살던 집에 그대로 두길 원했다”며 “따라서 ‘아버지가 증여받은 유품’이라는 아들 B씨의 주장은 생전 JP의 확고했던 의지를 떠올렸을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현재 B씨는 자신의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앞선 종중 관계자는 “사건이 있고 B씨와 통화했다. B씨는 중요한 유품들은 유족들이 대부분 다 갖고 있고, 자신의 집에 있던 비교적 덜 중요한 유품들을 갖고 있던 건데, 이걸로 유족들이 법적 대응까지 나서는 건 너무한 처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시사저널은 B씨와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온 JP의 유품 82점은 총 530만원에 낙찰됐다. 정치사의 주요한 기록인 것치고는 너무 낮은 값이 책정됐다. 낙찰받은 인물에 대해선 현재 알 방법이 없다. 김예리씨는 “사실 B씨의 처벌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아버지의 유품이 누구에게 낙찰됐는지 알아내서, 그 값을 치르고 다시 돌려받고 싶은 마음뿐이다. 누가 가져갔는지만 알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통해 풀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을 것 같다”며 B씨에 대한 형사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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