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특별법, 국회통과…73년만에 ‘반란’ 오명 벗어
  • 정성환·박칠석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6.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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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비극 ‘여순(麗順)사건’ 진실규명·희생자 명예회복 ‘첫발’
73년 만에 이룬 성과…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 인정
국무총리 소속 진상규명위원회·실무위원회가 조사 맡아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픈 비극으로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여순(麗順)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을 위한 명예회복 길이 사건발생 73년 만에 열렸다. 국회가 29일 ‘여수·순천 10·19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과시키면서다. 이로써 지난 73년을 고통 속에 살아온 희생자 유가족과 ‘반란’이라는 오욕을 뒤집어쓴 채 평생을 살아온 여수와 순천 시민의 한도 어느 정도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이로 인한 진압 과정에서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여순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합동추념식이 사건 발발 70주기인 2018년 10월 19일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열렸다. ⓒ여수시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이로 인한 진압 과정에서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여순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합동추념식이 사건 발발 70주기인 2018년 10월 19일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열렸다. ⓒ여수시

‘73년 통한’ 풀 길 열려

전남도와 여수시 등에 따르면, 여순사건 특별법은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이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차원에서 법안 제정을 추진한 지 20년 만이다. 지난해 7월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 등 152명이 발의해 여·야 합의로 결국 빛을 보게 됐다. 

이번에 제정된 여순사건 특별법은 국가 차원에서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희생자와 유족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과거 진실과화해위원회의 활동과는 차원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국무총리 소속의 여수·순천 10·19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직접 나서 진상 규명에 나서게 된다. 위원회는 2년간 진상조사와 중요 증거자료를 가진 사람에게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전남도지사 소속의 실무위원회는 진상 규명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심사 결정과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집행 등의 실무 업무를 맡게 된다.

이번 법안 통과에는 전남 동부권 국회의원들의 노력과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소병철, 서동용, 김회재, 주철현, 김승남 의원 등이 주축이 돼 특별법 단일안을 제시했고,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52명이 공동으로 법안을 발의하는 등 힘을 보탰다.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소병철 의원은 “21대 국회는 여순특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화합과 통합의 위대한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며 “유가족분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여순사건의 아픔이 치유되는 마지막까지 신명을 다 바치겠다”고 밝혔다.  

여순사건 유족회와 시민단체도 숙원이었던 특별법의 제정을 환영했다. 여순사건 유족회는 이날 “특별법을 제정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법 제정이 늦어지면서 유족조차 고령이 된 상황을 고려해 신속하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추진해야 한다”고 반겼다. 당시 유복자였던 서장수 여수유족회장은 “하늘나라에 먼저 가신 부모님도 기뻐하실 것이라 믿는다”며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려 애써주신 모든 분께 한없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여순민중항쟁 전국연합회 등 시민단체 30여곳은 “기쁘기도 하지만, 너무 늦어 아쉬움도 많다”며 “국방부, 검찰청, 경찰청 등 국가기관이 여순사건과 관련한 모든 기록을 공개하고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신 희생자와 유족한테 다시 한 번 위로를 드린다. 진상규명 신고와 조사에 차질이 없도록 실무위원회를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여순(麗順)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이로 인한 진압 과정에서 당시 1만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여수시 제공
여순(麗順)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이로 인한 진압 과정에서 당시 1만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여수시 제공
여순(麗順)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이로 인한 진압 과정에서 당시 1만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여수시
여순(麗順)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이로 인한 진압 과정에서 당시 1만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여수시

현대사의 비극 ‘여순(麗順)사건’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이로 인한 진압 과정에서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는 1949년 11월11일 호남신문 기사에는 1949년 전남도에서 총 3차례에 걸쳐 피해 조사를 했으며, 마지막 조사 시점인 1949년 10월25일에는 무려 1만 1131명이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미뤄보면 피해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순사건은 전남과 전북, 경남, 경북지역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희생된 민간인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혀 남몰래 제사를 지내는 등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오랜 세월 침묵을 지켜왔던 유족들은 1998년에야 여순사건 50주기 행사를 했고 희생자들이 암매장당한 여수시 호명동과 장계골에서 발굴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반면에 여순사건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 제주 4·3사건은 지난 2000년에 특별법이 제정됐다. 2014년부터는 국가 추념일로 지정돼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6·25 전쟁 전후 발생한 거창사건, 노근리 사건 또한 특별법을 통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순사건은 발생한 지 73년이 지났지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이나 인명 피해 규모 파악,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2005년 12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돼 진실 규명에 착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실체적 진실을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진실과화해조사위원회의 조사 기간이 한정된 데다 관련 자료가 사라져 피해 신고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마무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도 16대 국회인 2000년부터 20대 국회까지 모두 4차례나 여순사건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모두 자동 폐기됐다. 총선에 출마한 정치인들 대다수가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순(麗順)사건 특별법이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차원에서 법안 제정을 추진한 지 20년 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픈 비극으로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을 위한 명예회복의 길이 사건발생 73년 만에 열렸다. 특별법 국회통과 직후 권오봉 여수시장이 오열하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여수시 제공
여순(麗順)사건 특별법이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차원에서 법안 제정을 추진한 지 20년 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픈 비극으로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을 위한 명예회복의 길이 사건발생 73년 만에 열렸다. 특별법 국회통과 직후 권오봉 여수시장이 오열하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여수시 제공

유가족 대다수 고령층…발 빠른 후속 조치 시급

여순사건 특별법은 공포 뒤 6개월 뒤에 시행되기 때문에 명예회복위의 활동은 내년 초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3년은 진상규명 작업, 이후 3년은 위령시설 건립이 단계적으로 이뤄지게 된다.이처럼 여순사건은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지만, 사건 발생 73년이 흘러 관련자 대부분이 생을 마감하거나 고령층이기 때문에 발 빠른 후속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유가족 대부분이 고령인 점 탓에 여수시와 순천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으며 정부도 법안과 관련해 시급하게 후속 처리에 나서 줄 것을 원하고 있다. 또 유족회 및 단체들도 더 이상의 많은 시간이 지체되지 않도록 빠른 조사와 지원 결정 등을 요구했다. 여수시는 특별법에 근거한 유가족들의 실질적 생계비 지원과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대국민 사과 등 유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해 건의 사항을 사전 확정하고, 정부와 적극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 3월부터 ‘(가칭) 여수시 여순사건 기념공원’ 조성 방향 구상 연구용역에 착수, 기념공원 명칭과 대상 후보지를 검토하고 공원 조성에 대한 전문가 및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또 환영 문화행사 개최와 위령비 참배, 전 시민 환영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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