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정복은 불가능…‘위험군’과 ‘조기암’에 더 집중해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6 08:3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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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권위자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의료·산업계 빅데이터 따른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이 세계적 추세”

올해 발표된 국가암정보센터 자료를 보면 신규 췌장암 환자는 1999년 2603명에서 2018년 7611명으로 늘어났고, 사망자도 6306명으로 집계됐다. 췌장암이 증가한 이유는 단순히 인간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3월 미국은 1975년부터 2016년까지 암 등록 자료를 토대로 연령표준화 암발생률(인구 집단의 나이로 발생하는 오류를 보정한 통계)을 분석했다. 전립선암·유방암·폐암·대장암 발병은 감소했으나, 췌장암만 증가한 결과가 나왔다. 췌장암은 인간 수명과 무관하게 증가세인 셈이다.

약 20년 동안 폐암과 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각각 10%포인트 이상 증가했으나, 췌장암의 생존율은 여전히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5년 상대생존율은 일반인과 비교해 5년 생존할 비율을 말한다. 한국인 10대 암 중 꼴찌다. 다른 암에 비해 진단과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췌장암 권위자인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와 췌장암 치료가 어려운 이유와 미래 치료 방향을 짚어봤다.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 시사저널 박정훈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이 송 교수와 췌장암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던 지난 2008년 이후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됐나.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약 25년 동안 개발된 췌장암 신약은 단 2개뿐이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약 2000건의 임상시험이 진행됐으나 모두 실패하고 2개 약만 상용화됐다. 지금도 이들 약을 조합하거나 투여 시기를 달리하는 방법이 췌장암 치료의 기본이다.”

수술 분야에서는 진전이 있나.

“그때나 지금이나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전체 환자의 20%로 변함이 없다. 이 비율을 높이려면 뚜렷한 종양표지자(체내에 암세포 존재를 나타내는 물질)를 발견하거나 전암(암은 아니지만 암이 될 확률이 높은 병변) 상태를 진단할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어떤 것이든 과학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5~10년 뒤에는 가능할 것 같다.”

조기 진단을 위해 종양표지자나 유전자 변이를 찾는 시도는 진화했나.  

“세계적으로 수백 종의 종양표지자가 제시됐으나 모두 실패했다. CA19-9라는 종양표지자가 있지만 정확도(민감도와 특이도)가 75%에 불과해 조기진단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또 세계적으로 유전자 변이에 대한 자료는 매우 많다. 그 가운데 췌장암뿐만 아니라 폐암과 대장암 등 다른 암과도 관련된 특정 유전자 변이(KRAS와 P53)를 발견했으나 이와 관련된 치료제 개발은 모두 실패했다. 이 말은 드라이버 뮤테이션(유전자 변이 중 암을 일으키는 변이)을 찾더라도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의미다. 또 유전자 변이가 있을 때 또 다른 유전자가 변이되면, 그러니까 동반 치사 유전자가 있으면 치료제가 듣지 않는다. 요새 빅데이터를 이용해 이런 유전자를 찾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도가 쌓이면 신약 개발이 빨라질 것이다.”

아직은 췌장암 정복이 어렵다는 얘기인가.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 췌장암이 폐암에 이어 암 사망률 2위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폐암 등은 새로운 치료제와 조기 진단법이 개발돼 생존율이 높아졌지만 췌장암에는 그런 진전이 없었다. 치료제와 진단법을 찾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신의 영역으로 느껴질 정도다. 환자와 그 가족에게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평생 췌장암 연구를 해오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췌장암 정복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특정 암을 잡겠다는 식의 항암제 개발은 이제 세계적으로 바보 취급을 받는다. 항암제 개발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췌장암을 잡겠다는 큰 틀의 시도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췌장암 환자 가운데 기존 약에 효과가 없는 사람을 찾아 어떤 유전자 변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환자에게 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세계적인 동향이다. 나는 2014년 11월 미국 췌장학회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초청으로 끝장토론에 참가한 적이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에서 온 세계 석학 10명이 모여 췌장암 치료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어떤 결론이 나왔냐면, 췌장암을 정복하겠다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가 치료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췌장암은 정상-전암 병변(위험군)-조기암-진행암-전이암 순으로 진행하는데, 이 가운데 전암 병변과 조기암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치료제 개발 방향이 바뀔 텐데 최근 트렌드는 어떤가.

“그동안 신약 개발을 위해 기초 연구와 임상 연구에 수조원을 쏟아부어도 신약 한 개가 나올까 말까였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오래전 그 이유를 찾았다. 기초 연구와 임상 연구가 따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70년대 탄생한 것이 기초 연구와 임상 연구를 연결하는 중개 연구다. 췌장암처럼 난치 질환에는 중개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중개 연구도 잘 안되는데, 미국은 중개 연구에서 한발 더 나가서 새로운 대전환을 시도 중이다. 기초 연구, 과학 발전, 임상 정보, 유전체 정보, 생물학적 실험 등 각종 실제 데이터(real world data)를 공유한다. 이를 활용해 약을 개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약에 효과가 없는 사람에게 어떤 유전자 변이가 있는지를 분석한다. 그것이 신약 개발의 방향성이다. 기초 연구, 실험, 시제품, 실용화, 산업화를 하나의 서클(circle)로 보는 이른바 변혁적 접근법(transformative approach)이다. 연구가 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개념이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주도한 에릭 랜더 MIT(매사추세츠공대) 교수를 임명했다. 과거 방식으로는 신약 개발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시장이 작더라도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환자를 선별해 맞춤형 치료제 개발에, 즉 니치 마켓(틈새시장)에 올인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치료제 틈새시장의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나.

“간암은 간의 80~90%를 차지하는데, 췌장암은 췌장의 약 20%다. 그런데 췌장암은 돌처럼 딱딱해서 치료제가 들어가지 못한다. 물리적 장벽이 있는 셈이다. 나머지 80%는 섬유조직(TME)인데 면역을 억제한다. 면역 항암제를 써도 면역세포가 침투하지 못하는 면역학적 장벽이 있는 것이다. 최근 TME 환경을 개선해 항암치료 효과를 배가하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영역은 초기 단계여서 우리나라도 차별성이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면 선점할 수 있다. 특히 췌장암은 누구도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분야이므로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 

플랫폼이란 무엇을 의미하나.

“의학 연구란 궁극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데 목표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각각 진행하는 기초 연구, 의료 정보, 제약산업을 융합해야 한다. 국가가 산재한 연구를 결합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에 ‘국가 바이오빅데이터 구축사업’이 시작됐다. 이를 통해 환자의 유전자 데이터를 모으고 임상 정보 등을 융합하면 기존 치료제에 효과가 없는 환자의 유전자를 분석해 신약 개발의 목표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제약산업의 협업이 안 된 상태다. 빨리 의료계와 산업계가 연계돼 외국 제약사의 신약을 임상시험해 주는 수준을 벗어나 우리 독자적으로 신약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나도 최근 4가지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마쳤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일반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하자면, 우선 유상철 전 감독처럼 비교적 젊은 나이에 췌장암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췌장암이 걸리는 이유는 대부분 유전 때문이다. 미국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변이(BRCA)를 발견해 예방 차원에서 유방을 절제했다. 그 유전자 변이가 50대 췌장암 환자의 3분의 2에서도 발견된다. 또 직계가족 중 2명 이상에서 췌장암이 있으면 암 발병 가능성이 크다.”

일반인이 췌장암을 의심할 신호는 무엇인가.

“뚜렷한 증상은 없지만 그나마 췌장암의 3대 증상은 통증·체중감소·황달이다. 명치·옆구리·허리에 통증이 생기거나 잘 먹는데도 체중이 (기간과 관계없이) 3~4kg 빠지는 현상이 생긴다. 또 췌장암 환자 가운데 절반은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50대 이후 갑자기 당뇨병이 생겼다면 췌장암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당뇨병을 오래 앓았더라도 갑자기 약으로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도 위험신호다.”

위험신호 다음에 취할 행동은 무엇인가. 

“허리 통증으로 정형외과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정상이 나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소화불량으로 내과에서 내시경검사를 받아도 이상이 없으면 안심한다. 의사나 환자 모두 그런 증상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몇 개월 후 증상이 심해진 다음에야 췌장암을 발견한다. 의사와 환자 모두 평소 없었던 증상이 생겼고 일반 검사에서 발견하지 못할 때 췌장암을 의심하고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와 같은 조치를 해야 한다. 즉 증상은 있는데 이유가 없을 때 CT 검사를 추천한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 CT 검사를 추가로 받으면 더 좋겠다. 과도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으나 관심과 의심을 가져야 췌장암을 하루라도 빨리 발견할 수 있다.”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 시사저널 박정훈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 시사저널 박정훈

송시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1983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과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세브란스병원에 재직 중이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밴더빌트 의대 부속 암센터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대한소화기암학회 이사장(2013~17년), 대한의용생체공학회장(2015년), 대한췌담도학회장(2017년)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가 바이오빅데이터 구축사업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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