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법꾸라지·갑질… 쿠팡과 김범석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5 08: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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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성공신화만큼 이미지 추락도 초스피드…전문가들 “시장과 소통 강화해야”

2021년 3월11일 오전 9시30분. 세계 최대 유가증권 거래소인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명물 오프닝벨 발코니에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강한승·박대준 공동대표, 거라브 아난드 쿠팡 CFO(최고재무책임자) 등 회사 관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 의장이 상장을 알리는 ‘오프닝벨’을 누르면서 쿠팡은 설립 11년 만에 ‘뉴욕증시 상장’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CPNG’라는 티커를 받은 쿠팡 주식은 이날 35달러로 거래를 시작해 49.25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언론들은 중국 알리바바 이후 최고의 성공작이라며 쿠팡의 NYSE 상장을 일제히 뉴스로 내보냈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쿠팡이 시장에서 끌어모은 돈은 45억 달러(약 5조1700억원)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쿠팡을 향한 찬사가 비난으로 바뀌기까지는 채 4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6월17일 발생한 덕평물류센터 화재 사건은 그 서막을 알린 신호탄이다. 비록 이날 쿠팡 직원들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화재진압 과정에서 간부급 소방대원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회사 설립자인 김 의장의 쿠팡 사내이사 사임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한국 유니콘의 쾌거(홍남기 경제부총리)”라던 찬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6월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쿠팡 창업자와 이사회 임원들에 대한 형사 처벌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7월1일 오전 9시 현재 2787명이 지지 의사를 보냈다. 4개월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 일러스트 정찬동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 일러스트 정찬동

“물류센터 화재사고 났는데 사내이사 그만둬?”

쿠팡 신화의 중심에는 김범석 쿠팡아이엔씨(Coupang Inc.) 이사회 의장이 있다. 김 의장을 뺀 쿠팡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일단 스펙부터가 화려하다.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의장은 13세 때 현대건설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사립 명문 디어필드 아카데미, 하버드대 정치학과, 동 대학 비즈니스스쿨(MBA)을 졸업했다. 하나같이 엘리트 코스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의 영어 이름은 범 킴(Bom Kim)이다. 하버드 재학 시절 비영리 시사잡지 ‘커런트’를 창간해 2001년 뉴스위크에 매각한 이후 취업한 그의 인생 첫 직장은 글로벌 경영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이다. 그리고 쿠팡을 창업한 것은 2010년 8월 무렵이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김 의장은 남이 도전하지 않는 길을 걷는 ‘혁신가 스타일’은 아니다. 창업 과정만 봐도 그렇다. 2010년 초기 쿠팡의 사업모델은 소셜커머스(Social-Commerce)였다. ‘한국판 그루폰(Groupon)’이라고 보면 된다. 2013년 8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 기자는 “2010년 포브스가 그루폰을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했을 때 하버드대에 재학 중이던 범 킴(김 의장)은 ‘한국에서 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경쟁자로 꽉 찬 미국보다는 차기 소설커머스 시장으로 부상하던 한국을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솔직히 쿠팡은 소셜커머스 시장 진입시기조차 빠르지 않다. 당시 한국에는 티켓몬스터,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경쟁자들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양강(兩强) 체제에서 쿠팡이 승부수를 던진 것은 바로 로켓배송이다. 이 로켓배송이 성공하면서 쿠팡은 소셜커머스 기업에서 이커머스(e-Commerce) 기업으로 변신했다. 비슷한 시기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가 이뤄지면서 ‘쿠팡발(發) 대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초기부터 김 의장은 쿠팡의 롤모델은 그루폰이 아닌 아마존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김 의장은 아마존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광팬이다. 그래서일까. 직급 체계도 아마존 것을 그대로 따라 했다. 또 쿠팡의 물류센터 자회사인 ‘쿠팡 풀필먼트서비스’는 주문에서 집적, 포장, 배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하는 아마존의 ‘풀필먼트 바이 아마존(Fulfillment By Amazon·FBA)’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5년 넘게 쿠팡에서 근무한 한 전직 임원 A씨의 말이다.

“이 분야에서 아마존이 가장 성공한 기업이다 보니 철저하게 따라 했다. 쿠팡이 전기차 쿠팡카를 개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마존이 우주선이면 쿠팡은 전기차를 하겠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쿠팡이 아마존의 AWS(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를 따라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에 진출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김 의장은 회의시간에 다섯 번이나 반복적으로 아이디어·사업의 타당성을 묻는 제프 베이조스의 전매특허 ‘파이브 와이(Five Why)’도 사내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럴 정도로 제프 베이조스에 홀딱 빠져 있다.

6월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검게 그을려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6월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검게 그을려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대형 로펌 대동해 ‘법대로’ 소송 남발

쿠팡은 신비주의로 포장돼 있기도 하다. 기업 내부는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다. 그나마 지배구조와 관련해 알려진 것도 지난 3월 상장을 앞두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상장신청서가 공개되면서다. 물류 쪽에서 근무한 직원 B씨의 말이다.

“초창기 회사에서 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한두 시간 후에 언론에 기사화되는 걸 보면서 경영진이 보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기업 비밀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몇몇 경영진을 빼고는 회사 조직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조차 잘 모를 거다.”

쿠팡에 근무했던 전직 임직원들은 쿠팡의 기업문화를 가리켜 ‘100% 실리콘밸리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실적을 강조하되, 그에 걸맞은 성과만 내면 3~4단계 뛰어넘는 파격 승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기업 정서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가 많다.

설립 이후 1~2곳을 빼고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 거의 나선 적이 없다는 점도 김 의장에게 불통 이미지를 쌓은 원인이 됐다. 에델만코리아 대표를 역임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이커머스 업계 선두주자라는 명성에 걸맞으려면 노동 등 여러 사회적 이슈에도 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쿠팡과 같은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곳은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목표를 직원들이 공유하는 게 중요한데, 쿠팡 소개 자료 등에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쿠팡은 ‘법대로’ 식의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언론도 예외 대상은 아니다. 한 일간지 유통담당 기자는 “3월 IPO 때 뭐 하나 물어봐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평상시에도 쿠팡은 언론의 사실관계 확인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들의 보도자료는 일방적으로 보낸다. 그게 지금 쿠팡의 언론 대응방식”이라고 꼬집었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은 “잇따른 쿠팡의 대언론 소송전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처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마케팅 분야에서 근무한 한 전직 직원 C씨는 “김 의장은 사업 초기부터 기사를 쓰는 조건으로 광고, 협찬을 요청한 국내 언론들의 행태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언론과의 관계도 좋지 못하다”고 털어놓았다. 국회에서 대관(對官)업무를 담당하는 한 대기업 임원은 “김앤장과 같은 대형 로펌을 통해 법대로 대응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되는 기업문화”라고 지적했다. 경영관리 총괄 사장을 맡고 있는 강한승 공동대표는 서울고법 판사,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거쳐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공정위 동일인 지정 논란을 거치면서 쿠팡과 김 의장에게는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려는 ‘법꾸라지’ 이미지가 덧칠해졌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올 5월1일 기준으로 쿠팡을 공시대상 기업집단(대기업)으로 지정하면서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인물을 뜻하는 ‘동일인’으로 김 의장이 아닌 ‘법인 쿠팡’을 지정해 논란이 일었다. 공정위는 이런 결정을 하면서 설립자인 김 의장이 한국 쿠팡 법인의 지분을 직접적으로 보유한 것이 아니고,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예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현재 한국 쿠팡 지분은 미국 델라웨어에 본사를 둔 쿠팡아이엔씨가 100% 보유하고 있는데, 김 의장은 이 쿠팡아이엔씨의 의결권 76.7%를 갖고 있다. 최근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것 또한 동일인 제도 개정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선 내년 1월 시행이 예고된 중대재해법과 연결 짓기도 한다. 쿠팡은 지난 6월17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 의장이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쿠팡 이사회 의장과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고 밝힌 바 있다. 쿠팡은 SEC에 제출한 상장신청서에서 “고위 경영진의 역할을 잃게 되면 사업 전략을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중략) 일부 업무는 한국 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한국 계열사 임원 중 일부는 형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중 일부는 구체적이고 복잡한 공정거래, 노동, 고용 및 작업장 안전 법률 및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이는 운영 및 재무 성과에 영향을 미치며 경우에 따라 벌금도 부과된다”고 명시했다.

 

2015년 국회 출석 요구에 “농구하다 다쳤다” 거부

실제로 로켓배송을 책임지는 물류 노동자들이 잇따라 숨지자 진상조사 차원에서 국회가 여러 차례 회의 출석을 요청했지만, 김 의장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지난 2015년 9월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 대표들을 국정감사에 불러 갑질 횡포 등을 추궁했으나 김 의장만 출석하지 않았다. 당시 김 의장은 한 달 전 농구를 하다 부상을 당한 것을 불출석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 국감 때도 증인 출석이 논의됐지만 막판에 자회사 임원이 대신 나오는 것으로 정리됐다. 올 2월 환노위가 주최한 산재 청문회에도 쿠팡은 김 의장 대신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를 증인으로 내보냈다. 국회 환노위 소속 강은미 의원실(정의당) 관계자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국회에 와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형식적인 답변만 늘어놓았다”고 비판했다.

국회를 담당하는 또 다른 대기업 대외협력팀 간부는 “쿠팡은 2016년부터 대관 조직을 꾸려 정치권 공세에 대응했다. 평소에는 이들을 통해 회사 입장을 설명하지만,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대형 로펌이 나서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며 대응해 빈축을 사고 있다”고 밝혔다.

사태를 거치면서 ‘반(反)쿠팡’ 정서 또한 커지고 있다. 일각의 의견이지만 제2의 남양유업 사태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최철규 HSG휴먼솔루션 대표는 “위기가 닥치면 자신을 객관화하고 소통 채널을 다양화해야 하며, 의사결정이 빨라야 한다”면서 “위기에 빠지는 많은 기업들은 ‘억울하다. 내부 사정을 너무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내 관점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말단 직원의 의견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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