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론’ 등에 업고 친문 각개격파 시동
  • 김태은 머니투데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2 10: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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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지사, 친문 상당수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여
이해찬·양정철 등도 지지로 돌아서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 9인이 6월30일 예비경선 후보등록을 마치면서 대선 경선 레이스가 본격화됐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1강 체제가 굳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어느덧 경선 구도는 ‘이재명 대 비(非)이재명’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선거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던 ‘친문계’의 단일대오는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다. 당 대표 경선 때 친문계 핵심인 홍영표 의원이 송영길 대표에게 간발의 차로 패배한 후 친문계는 구심점을 잃어 대선을 앞두고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민주주의4.0 연구원’은 친문계 의원 50여 명이 참여한 싱크탱크로 향후 대권지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당초 전망됐다. 그러나 친문 유력 대선주자가 배출되지 못하자 일차적으로 갈피를 잃었고, 결정적으로 홍영표 의원의 경선 패배로 당내에서 입지가 대폭 축소됐다.

친노·친문의 좌장 격인 이해찬 전 대표가 이재명 지사 쪽에 무게를 실은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지사의 측근으로 통하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전 대표의 이 지사를 향한 지지는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지사가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거쳐 이 자리에까지 오른 근성을 이 전 대표는 대단하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18년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전 대표와 김진표 의원이 치열하게 맞붙을 당시 경기지사 유력 후보였던 전해철 의원은 김 의원을 밀었지만, 이 지사는 이 전 대표를 밀었다는 것이다. 이후 당 대표가 된 이 전 대표는 이 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됐을 때 당내 일각에서 제명 주장이 제기됐지만, 재판으로 확정된 사안이 나온 이후 판단할 문제라며 제명에 반대하기도 했다.  

5월21일 경기도가 주최한 ‘2021 DMZ 포럼’에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첫줄 왼쪽 셋째)가 참석해 이재명 경기지사와 나란히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21일 경기도가 주최한 ‘2021 DMZ 포럼’에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첫줄 왼쪽 셋째)가 참석해 이재명 경기지사와 나란히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이·친박이 사라지듯 친문도 사라지는 수순

이 지사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 속에서 당내 주류인 친문 상당수도 이 지사를 앞세워 정권 재창출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친문 세력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수순에 들어갔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권 시절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가 친박계와 비박계로 재편된 것처럼 민주당 역시 그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상당수 친문계 의원은 이미 이 지사 캠프에 참여하거나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 지사에 대한 지지를 결정한 상태다.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한때 문 대통령의 최측근 ‘3철’ 중 한 명이었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행보를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지난해 4월 총선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당을 떠났으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귀국한 그는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말을 아끼다가 최근 이 지사와 만남을 가져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양 전 원장은 민주당이 4·7 재보선에서 대패하자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과 청와대 참모진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친문 주류와는 결이 다른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차기 대선을 위해 현 정권과 차별화된 모습을 주문하는 등 현 정권 인사로선 하기 힘든 조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양 전 원장이 이 지사에게 힘을 실어주며 대선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기 위한 의도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양 전 원장이 공개적으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 필요성을 주장해 줌으로써 이 지사의 부담을 덜어준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양 전 원장은 이 지사를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안팎에선 양 전 원장의 행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한 재선 민주당 의원은 “전체 판을 읽고 선거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실행하는 테크니션으로선 내가 아는 한 최고”라며 “지난해 총선에서도 최강욱과 김의겸을 잘라낼 수 있어서 이긴 것이다. 그건 양정철이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여론을 읽는 감과 두 사람을 잘라낼 만한 힘, 두 가지가 다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민주당 모 대선주자 캠프의 한 관계자는 양 전 원장에 대해 “이 지사의 지지율이 정체돼 위기감이 감도는 시점에 딱 맞춰서 인터뷰해 자신을 마케팅하는 것 아니냐”며 깎아내리는 모습이었다. 이 지사의 측근으로 통하는 한 의원 역시 “양 전 원장에겐 별로 관심 없다. 우리 쪽도 그렇고 청와대도 그렇고, 양 전 원장을 크게 주목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7월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서 추미애(오른쪽부터 기호순), 이광재, 이재명, 정세균, 이낙연, 박용진 후보가 박수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7월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서 추미애(오른쪽부터 기호순), 이광재, 이재명, 정세균, 이낙연, 박용진 후보가 박수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청와대의 ‘이재명 비토론’도 실현 가능성 떨어져

7월1일 대권 출사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캠프를 띄운 이 지사 측이 자신의 텐트 안에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첫 과제는 역시 친문을 끌어안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지사가 직접 친문 핵심을 향해 적극적인 관계 모색에 나서는 듯한 움직임도 포착된다. 이 지사 측근에 따르면 최근 이 지사는 대표적인 친문 의원으로 통하는 의원들과 술자리를 통해 스킨십을 활발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을 이재명 지지로 돌려세우기보다는, 적극적인 반대를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위해서라도 이 지사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인사들과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친문 진영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여전히 지지율 40%대를 유지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뜻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친문계의 분화로 이른바 ‘문심(文心)’이 실릴 친문 후보가 사실상 경선에 전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이 지사를 견제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문 대통령의 뜻은 절대 이재명에게는 정권을 넘길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비토론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친문계가 사실상 집단으로서 의미가 없는 상황에선 영향력이 크지 않은 시나리오란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과거 노무현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 여당 대선 경선에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게 친문 핵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시절 정권재창출 실패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가장 뼈아프게 지켜본 당사자”라며 “결코 친문계 정권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정권을 야당에 넘겨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해찬도, 양정철도 그런 점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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