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도시 매력 잃어가는 《태양의 후예》 촬영지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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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리탄탄파크’ 조성으로 고유 매력 되찾아가는 강원도 태백

태백은 석탄으로 성장한 도시다. 1930년대부터 시작해 수십 개의 탄광이 개발됐고 광업소 주변으로 마을이 만들어졌다. 나라에서 석탄산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80년대의 태백은 지나가던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던 도시였다.

그랬던 태백시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은 1989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때문이었다. 사양길에 접어든 석탄산업을 체질적으로 개선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상황은 정부 예측과 다르게 흘러갔다. 많은 광산들이 문을 닫으면서 태백시를 포함한 중부 산간지대의 탄광 도시들은 극심한 침체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도박을 할 수 있는 카지노까지 세우며 극약 처방을 했지만, 폐광지역들의 앞날은 ‘석탄만큼 새카맣기’만 했다.

태백시 통동에 위치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 드라마 촬영 후 철거됐으나 태백시가 2016년 복원했다. ⓒ김지나
태백시 통동에 위치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 드라마 촬영 후 철거됐으나 태백시가 2016년 복원했다. ⓒ김지나

어설프게 남아있는 《태양의 후예》 세트장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시행된 지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태백시는 아직도 ‘폐광지역’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상태다. 새로운 산업이 들어와야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산줄기로 둘러싸여 석탄산업에 제격이었던 환경이, 관광객이나 다른 공장을 유치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됐다. 주말에 서울에서 태백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꼬박 4시간이 걸리는, 접근성 면에서도 불리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태백시는 꾸준히 관광지 개발에 투자했다.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 세트장을 복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장소는 옛 한보탄광 자리로, 처음에는 슬로우 레스토랑 컨셉의 관광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크게 히트를 하자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드라마 세트장 복원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태백시 입장에서는 ‘한류 관광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폐광을 활용하는 좋은 사례로 남을 가능성도 있었다.

옛 한보탄광의 저탄장 시설. 2017년경 철거됐다. ⓒ김지나
옛 한보탄광의 저탄장 시설. 2017년 철거됐다. ⓒ손원천 서울신문 기자

하지만 놀이공원 입구를 연상시키는 국적 불명의 새 건물과, 건조한 광장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가짜 군 시설들의 풍경은 보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 듯한 몰입감은커녕, 이걸 보러 태백까지 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현실 자각 타임’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처음부터 태백시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었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류 관광지의 원조인 춘천 남이섬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태백에 《태양의 후예》 촬영지가 있었어?’라며 놀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나마 태백의 장소성이 드러나는 저탄장 시설은 이미 철거돼버린 후다. 이 저탄장은 드라마를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던 광업소 건물로, 전쟁터를 연상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아우라가 엄청났던 장소다. 폐광지역만이 가질 수 있는 문화적 잠재력을 품고 있던 공간이었고, 드라마와 상관없이 태백시의 경쟁력이 될 수 있었던 관광자원이었다. 이 사실을 간과한 태백의 《태양의 후예》 세트장 복원은 드라마 인기에만 편승한 채 지역 특색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대로 현실이 된 사례로 남고 말았다. 폐산업시설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태백시의 실책이 컸다.

7월 초 개장한 '통리탄탄파크'에서는 옛 한보탄광의 갱도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콘텐츠 전시시설을 볼 수 있다. ⓒ김지나
7월 초 개장한 '통리탄탄파크'에서는 옛 한보탄광의 갱도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콘텐츠 전시시설을 볼 수 있다. ⓒ김지나

탄광도시만의 역사와 장소성 지켜야

최근 드라마 세트장은 한보광업소의 남아 있던 갱도를 활용한 전시시설이 완성되면서 ‘통리탄탄파크’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태양의 후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탄광도시 태백의 역사와 장소성에 좀 더 집중한 모습이다. 역사의 산증인이 될 수도 있었던 건물의 부재가 아쉬웠지만, 이제라도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는 듯 보였다.

폐광지역처럼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이 절실한 도시들은 ‘요즘 유행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민감하다. 최근에는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인터랙티브아트 같은 첨단 콘텐츠들이 단연 돋보인다. 통리탄탄파크의 갱도 역시 화려한 미디어아트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태백시가 이런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보다는 탄광도시로서 현재에도 가치가 이어질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 그 단초는 옛 광산의 특수한 건축물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어떤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오직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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