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은 코로나로 분절된 세계를 잇는 유일한 소통 창구”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2 11:00
  • 호수 167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이훈 한국관광학회 회장
“위드 코로나 시대, 관광의 방향 달라져야”

코로나19는 관광업계에 피할 수 없는 재난이었다. 관광산업이 정점을 찍은 이후 맞닥뜨린 코로나는 지금까지 마주했던 어떤 위기보다 길었고 잔혹했다. 나라와 나라를 잇던 노선이 끊겼고, 지역과 지역을 잇던 정서가 닫혔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마치 금기어처럼 여겨졌다. 단 2년 만에 관광 수치는 30년 전으로 퇴보했다. 이제야 하늘길이 다시 열렸다. 백신 보급이 늘어나고 트래블 버블(안전막을 형성해 두 국가 간 여행을 허용하는 협약) 지역이 확대되면서 항공사는 국제선에 시동을 걸었다. 무급휴직과 구조조정을 강행하며 힘겹게 버텨오던 여행사도 비로소 기지개를 켰다. 관광의 지표는 언제 회복될 수 있을까. 절망에 빠져 있던 관광업계는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코로나19 이후의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처럼 여행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이훈 한국관광학회 회장을 만났다.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이자 국제관광대학원장인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 등의 관광정책 자문, 관광산업포럼위원장 등을 맡으며 학계와 산업 전반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우리나라 대표 관광 전문가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여행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지만, 관광은 20% 정도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전’과 ‘위생’뿐 아니라 ‘친환경’이라는 키워드 역시 관광산업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관광은 코로나19 이후 분절된 세계를 잇는 유일한 소통의 창구”라고 말하는 그에게, 한국 관광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코로나19로 인해 관광산업은 절망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광 수치가 정점으로 치달았던 2019년을 지난 이후, 관광산업은 계속 위기에 빠져 있다. 언제 다시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을까.

“관광 수치가 정점을 찍었을 때 코로나를 맞닥뜨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업계 피해액을 14조1000억원(2020년 기준)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아직도 피해 규모와 범위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현재는 관광산업과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후 ‘회복’과 ‘재도약’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여행에 대한 욕구는 큰데,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압박이 됐다. 보복 심리에 기반한 여행을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세계관광기구(UNWTO)는 그 시기를 2023~24년 이후라고 전망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스위스로 가는 단체여행도 진행됐고, 유럽 등에서도 해외여행을 환영하고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 상황에 비춰봤을 때 2022년 중반부터 회복 단계에 들어서고, 2023년이 되면 2019년의 수치에 근접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사이판, 싱가포르 등과 체결한 트래블 버블은 위드 코로나 시대가 사실상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트래블 버블은 긍정적 신호다. 닫혔던 국가 간 교류가 다시 시작되고, 국제관광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트래블 버블은 사람의 교류를 늘리는 것보다, 여행의 흐름을 지속하고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제도적으로 국가 간 이동이 계속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의미다. 향후 백신과 치료제의 확산 여부에 따라 여행상품은 더 많이 출시될 것이다. 초반에는 자유로운 개별여행보다, 관리가 가능한 단체객 여행 위주로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교통, 숙박, 음식, 서비스 등에 이르는 관광산업의 생태계가 한 번 멈췄던 상황이다. 여행을 재개하는 데 무리가 없을까.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국가 간 항공 노선이 많이 취소된 상태다. 항공 노선이 요건을 갖춰 인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관광객 유형별로 세분화돼 있었던 숙박과 음식 분야의 산업 역시 다시 정리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얼마나 빨리 복원하는지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인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유급휴가나 무급휴직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 여행사의 인력들이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다. 다시 인력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다. 트래블 버블 이후 하나투어 등 여행사 업무가 정상화되는 것은 다행스럽다. 여행이 재개되는 시점에 맞추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을 바라볼 수 있다.”

해외여행이 재개되는 초기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 변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점이 전제돼 있어야 할까.

“아직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안전이 최우선이다. 여행객은 방문 국가의 방역정책과 규정을 잘 알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행사는 규정을 통해 현지 여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와 방역에 대한 책임 소재를 마련해야 한다.”

시련을 겪은 관광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앞으로 더 필요한 지원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부의 지원은 많이 아쉽다. 여행업 등이 경영위기업종 정도로 낮게 지정되면서 지원의 규모 자체가 작게 설정됐다. ‘14일 격리’와 같이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출국 과정에서 봉쇄에 가까운 조치들이 있었음에도, 지원 규모가 작게 책정된 것은 안타깝다. 지원은 생존을 가르는 문제다. 산업이 생존해 있어야 관광이 재개될 때 회복할 수 있다. 지금 업계는 매우 어려운 극한의 상황에 몰려 있다.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더불어 향후 산업 혁신을 위해 빅데이터, AI, 로봇 등 기술과 접목되는 관광의 디지털 전환(관광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UNWTO는 관광업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관광학회 역시 코로나19가 50만 명의 관광업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 바 있다. 관광 관련 일자리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은 뭔가.

“국가는 수출산업처럼, 국가의 ‘미래’에 이바지하는 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해 왔다. 이제는 ‘일자리’에 기여하는 산업을 우선 지원해야 하는 시대다. 로봇과 AI가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지만 서비스 분야, 특히 관광은 사람의 일자리를 가장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이다. 현재 관광 분야의 인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 인력 고용과 관련해서도 세금 공제 등 인센티브를 기업에 제공함으로써 일자리 붕괴를 막아야 한다. 관광을 전공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학회 차원에서는 정부가 현재 하고 있는 ‘두레사업’(주민 주도 관광사업)을 확장해 학생들이 고향에서 지역 관광 콘텐츠 개발과 신규사업을 할 수 있는 기초 자금과 지원금을 제공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사실상 해외여행의 빗장이 잠기면서 국내여행이 해외여행의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자체도 국내여행을 본격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관광객들이 국내여행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만큼 서비스와 품질이 구축됐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국내 관광의 품질과 서비스는 충분하다. 숙박, 음식, 서비스, 관광자원 등 요소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개별적인 몇몇 업체의 바가지나 불친절이 문제로 제기되고, 이것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지역 전체의 이미지가 하락하는 경우가 있다. 지역 상인연합회 등을 통한 자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감염 우려 때문에 여행을 자제해 달라고 읍소하기도 했다. ‘과잉 관광’ 문제가 제기된 곳도 있었는데.

“서울 종로구는 서울 북촌한옥마을의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특별관리지역 진단지표를 개발했다. 방문객이 집중돼 감염병 확산 우려나 소음 등 민원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정주권 보호가 필요한 곳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법률개정안을 건의했고, 관련 법률이 지난해 6월 시행됐다. 이렇게 관광이 잠시 쉬어가는 시점에, 코로나19 이후 관광객 유입이 다시 늘어날 것을 사전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민들과 관광산업이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지속 가능한 관광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서산 ‘머드맥스’ 등 한국관광공사의 홍보영상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국내 유명 여행지 외에 숨어있는 다른 곳들을 발굴했다는 의미로도 회자됐다.

“공사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관광지를 홍보해야지, 대체 무엇을 알리려고 하는 건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장면과 음악에 집중하게 해 흥미를 갖게 만든 것이 주효했다. ‘머드맥스’ 영상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갯벌은 세계 4대 갯벌이다.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그 갯벌이 한국이 가진 훌륭한 자원이라는 것을, 영상은 ‘힙’하게 알렸다. 거기서 무엇을 할지는 그다음 문제다. 흥미를 자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뭐 하고 놀지에 대한 과제는 잠재 관광객에게 직접 맡기면 된다. 너무 친절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그럼에도 여행객들이 결국 선택하는 여행지는 이름난 관광지인 경우가 많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을 실제 관광지로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까.

“국내여행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지역별로 불균형한 것은 사실이다. 강원도 동해안, 제주도, 부산 등 일부 여행지가 활성화됐다. 자연환경과 안전한 숙박이 공존하는 곳을 찾으려는 경향이 컸다. 어려운 시국이라 이해는 하지만 정부의 일방적 제재에도 아쉬움이 있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을 억제하는 정책이 강제됐다. 국내관광이 활성화될 수 있는 시기에 매력을 발산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전체 지역 축제를 하지 못하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행정 체계보다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고 그중 가능한 것을 인정해 주는 방식이 필요했다. 각 지역들이 자체적으로 안전과 방역을 고려해 소규모 분산형 관광상품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감동과 재미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지역이 특1급 호텔과 같은 서비스와 부대시설을 갖추기는 어렵다. 숙박, 동네 식당, 마을회관, 상점 등을 호텔 부대시설처럼 연계하고 지원하는 ‘마을호텔’처럼, 매력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관광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 보나.

“이제 관광은 안전과 관련된 여러 키워드를 고려해야 한다. 코로나19를 마주하면서 안전과 위생을 보장하는 관광, 바이러스-프리형 자연 중심 관광 등이 떠올랐다. 비대면 관광 서비스 기술도 확대되고 있다. 친환경도 중요한 화두다. 코로나19를 마주하면서 오히려 하늘은 푸르러졌다. 전 세계의 빈번한 이동을 만들어낸 것이 관광이었다. 그렇다면 관광이 친환경 산업이었는가. 그에 대한 물음표가 달렸다. 이런 면에서 관광의 패턴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짧게 여러 번 여행하며 많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방식에서, 한 번 갔을 때 오랫동안 체류하는 형태의 여행으로 전환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여행을 위해서는 여행자도 패턴을 바꿔야 하고, 사회도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책적으로 장기휴가와 장기여행을 지원해야 한다. 이미 유럽은 대체로 한 달씩, 러시아는 2주씩 휴가를 보낸다. 관광의 성과 지표 역시 사람 수가 아니라, 체류 일수나 지출액 등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어떤 여행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SNS에 올리기 위한, 과시하기 위한 여행은 아니었는가. 코로나19를 통해 쉬어가는 지금이, 실존적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관광정책과 산업을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