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체제 구축했지만 지배구조 개편은 숙제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21.11.10 10: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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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주주 반발 사태로 한 차례 진통 겪어…논란 없도록 합병비율 신중하게 접근할 듯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 총수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하는 인물로 꼽힌다. 다른 총수들 역시 해외를 찾거나 찾을 계획을 갖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올해 정 회장의 행보는 단연 돋보인다. 그는 뒤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본인이 직접 일선에서 진두지휘하며 현지 시장을 챙기는 ‘세일즈 총수’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과 로스앤젤레스 판매법인을 점검하고 6월엔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과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찾아 격려했다. 지난달엔 3주간 미국과 유럽, 인도네시아를 연달아 찾는 등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선 현지 전통의상을 입고 조코 위도도 대통령을 만나 전기차 사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세계 인구 4위인 인도네시아는 아직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현대차가 치고 들어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정의선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하이드로젠 웨이브(Hydrogen Wave)에서 그룹의 미래 수소전략인 수소비전 2040과 핵심 수소기술,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새로운 수소모빌리티, 연료전지시스템 등을 발표했다.ⓒ뉴시스

10월 회장 취임 전후로 광폭 행보

다만 이 같은 광폭 행보와 달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4대 그룹 중 가장 불안정하고 정리가 안 된 모습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 아직 회장 승진을 못 하고 있고 취업제한에 묶여 있지만 지분구조로 보면 어느 정도 안정된 모습이다. 증여세 이슈가 있지만 고(故)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절반을 받아 적어도 경영권은 안정을 꾀했다는 평가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고 구본무 회장이 갖고 있던 지주회사 지분을 받아 안정적으로 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안정적인 지분구조로 그룹 경영을 이끄는 데 문제가 없다.

반면 정의선 회장의 상황은 이들과 다르다. 인사 및 조직개편을 통해 겉으론 정의선 체제를 구축했지만 지분구조가 문제다. 현대차그룹은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취하던 구조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사실상 지배구조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적은 지분율을 떠나 순환출자 구조는 그 자체가 현대차가 해소해야 할 과제다.

현대차 역시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 AS 모듈 부문을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치고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을 지배구조 정점에 두는 개편안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헤지펀드 엘리엇을 중심으로 한 반대의 벽에 부딪혔고 결국 무산됐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은 “현대차가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오너의 역할과 일사불란한 그룹의 체질개선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조만간 이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한 차례 무산된 전력이 있는 만큼 현대차는 다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더라도 신중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주들과 충돌 없이 마무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개편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엘리엇은 없지만 최근 들어 주주들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은 현대차로선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우는 이와 다르지만 배터리 사업 분사 계획을 밝혔던 LG화학 역시 주주들의 큰 반발을 산 바 있다. 사모펀드뿐 아니라 일반 주주들도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면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고 있는 정황은 어렵지 않게 파악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9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미래에셋증권, KB증권, 골드만삭스증권이 대표 주관사를 맡았다. 업계에선 내년 상반기 안엔 증시에 입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될 경우 기업 가치는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사옥ⓒ시사저널 임준선

지배구조 개편 리스크 해법은 ‘정공법’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 매각을 통해 약 1조원의 현금 확보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정 회장은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노조가 상장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히지만, 이 과정에서 적어도 주주들의 심기를 건드릴 가능성은 낮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많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와 합치는 방식은 과거 주주 반발을 샀지만,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통해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정공법은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 방식만으로 충분히 지배력을 확보하긴 힘든 만큼, 결국 과거에 진행했던 현대모비스 분할을 통한 방법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한 차례 주주 반발에 부딪혔던 만큼, 이 방법을 진행하더라도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합병비율’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통합하는 방식은 현대차가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으로 앞으로도 유용하다”며 “다만 과거와 같은 논란을 피하고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사지 않기 위해 합병비율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의선 회장이 열심히 현금을 마련하려는 이유”라고 조언했다.

2018년 당시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를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을 추진하려던 방식은 그 자체보단 특히 합병비율이 문제가 됐다.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것인데, 이는 과거 논란이 됐던 삼성 합병 이슈와 유사하다. 결국 해당 지배구조 개편 방식을 재추진할 경우 현대차는 분할 및 합병비율을 정할 때 주주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카드를 꺼내야 한다. 즉, 합병도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정 회장은 현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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